서툰 요리가 알려준 인생의 레시피

배가 고팠다 그저 배가 고픈 것

by 인성미남

모든 것의 시작은 배고픔이었다.

정확히는, 마음의 허기.

아무도 없는 집, 냉장고를 열면 유통기한 지난 우유와 말라비틀어진 파 몇 조각이 나의 저녁을 맞이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스레인지 불을 켜고 라면 봉지를 뜯는 일.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면발 위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뿌옇게 겹쳐 보였다. 참, 한결같다. 한결같이 초라하다.

언제부터였을까. 밥을 '먹는다'가 아니라 배를 '채운다'는 말이 더 어울리게 된 것이.

어머니가 가끔 전화해서 물었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나는 늘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걱정 마세요. 나도 이제 요리사 다 됐어."

전화를 끊고 나면 싱크대에 쌓인 라면 봉지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요리사라니. 거짓말도 참...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텔레비전 채널을 무심코 돌리다 한 요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젊은 요리사가 나와 세상 간단하다는 표정으로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었다. "자, 이렇게 노란 달걀물을 살살 달래가면서..."

달래가면서. 그 말이 왜인지 마음에 콕 박혔다.

그래, 나도 나를 좀 달래야겠다. 이 지긋지긋한 라면 말고, 따뜻한 무언가로.

다음 날, 나는 마트에 갔다. 목적지는 달걀 코너. 생전 처음 내 의지로 달걀 한 판을 샀다. 파 한 단, 작은 식용유 한 병도.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비장했다. 꼭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결전의 장소는 부엌. 먼지 쌓인 프라이팬을 꺼내 닦고 유튜브에서 '세상에서 제일 쉬운 계란말이'를 검색했다. 수많은 스승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란 네 개를 깨서요, 소금은 두 꼬집..."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릇 가장자리에 계란 껍데기가 들어가고 소금은 두 꼬집이 아니라 두 숟갈쯤 들어간 것 같았지만. 음... 괜찮아, 처음이니까.

문제는 프라이팬에 달걀물을 부었을 때 시작됐다. '약불'로 하라던 스승의 목소리를 잊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달걀물이 순식간에 익어버렸다.

돌돌 말 시간도 없이 그것은 계란말이가 아니라 계란 전, 아니 계란 튀김이 되어가고 있었다.

허둥지둥 뒤집개로 말아보려 했지만 옆구리는 다 터지고 모양은 무슨... 추상화 작품처럼 변했다.

결국 접시에 담긴 것은 정체불명의 노란 덩어리. 한쪽은 새까맣게 타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이 나이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라면이나 끓일걸.

탄 부분을 떼어내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짰다. 그리고 퍽퍽했다. 눈물 나게 맛이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 완벽했던 아내의 계란말이.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던, 아이들이 서로 더 먹겠다고 다투던 그 부드럽고 폭신한 계란말이.

그건 그냥 요리가 아니었다. 사랑이었고, 정성이었고, 우리 가족의 따뜻한 시간이었다.

나는 늘 식탁에 앉아 당연하게 그것들을 받아먹기만 했다. 아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 불 앞에서 계란을 달래 가며 그 따뜻함을 만들었을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에게도, 그리고 이런 형편없는 요리를 첫 끼니로 맞이한 나 자신에게도.

"처음으로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지난번 일기장에 썼던 문장이 떠올랐다. 그래, 미안하니까. 미안하니까 제대로 된 걸 먹여주자.

나는 남은 계란 덩어리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릇에 계란을 깼다. 이번엔 여섯 개.

다시 유튜브를 켰다. 이번엔 다른 스승이다. 좀 더 친절해 보이는 분으로.

"불 조절이 생명이에요, 여러분. 아주 약한 불로..."

숨을 참고, 스승의 말에 집중했다. 달걀물을 붓고, 살살 달래 가며, 조심조심 말아 올렸다.

터질 것 같으면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말고, 또 말고.

어설픈 솜씨지만 아까와는 분명 달랐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상하게도, 그 집중하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마침내, 접시에 옮겨 담긴 두 번째 계란말이.

여전히 한쪽은 조금 탔고, 모양도 삐뚤빼뚤했지만 그래도 이건 누가 봐도 '계란말이'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오롯이 나를 위해, 나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내 인생의 첫 요리.

썰어서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이번엔 짜지 않았다. 조금 싱거웠지만, 놀랍게도 부드러웠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계란말이는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제일 뿌듯한 맛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반찬은 오직 계란말이 하나였는데도 진수성찬 부럽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의 부엌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된장찌개를 끓이기 시작했고, 김치를 볶아보기도 했다. 물론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다. 찌개는 짰고, 볶음은 탔다.

하지만 이상했다. 실패가 더는 두렵지 않았다. 망치면 또 하면 되니까. 내일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요리는 나에게 새로운 것을 알려주었다. 인생에는 정해진 레시피가 없다는 것. 같은 재료를 써도 불 조절에 따라, 소금 한 꼬집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정성껏 차린 밥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서툰 요리는 나에게 인생의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일단, 나를 위해 뭐든 해볼 것. 실패하면, 다시 해볼 것.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를 달래고, 나를 아껴줄 것.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을까. 냉장고를 열자 제법 풍성해진 재료들이 나를 반긴다. 음, 오늘은 꽤 근사한 걸 만들어봐도 좋겠다.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