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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 Mar 07. 2024

마땅한 욕망

엄마가 저물어간다

“엄마는 어차피 안 먹는다고 할 테니까…”


당연한 판단이었는데 당황스러웠다. 옥이 깎아주는 사과 하나를 아버지에게 먼저 드리고, 다음 하나를 내 입에 가져다 놓았을 때 아버지가 대뜸 물었다. “엄마는?” 짧은 질문에 깊은 침묵이 따랐다. 나는 내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한 후 솔직하게 대답 했다. 어릴 적 찰나의 기억인데 꽤 혼란스러웠던 감각이 강렬하게 남았다. 혼란스러움은 이내 미안함이 되었고, 죄책감 정도로 변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 같다. 옥은 말없이 웃음을 지었던가.


옥은 요구가 드물다. ‘가뭄에 콩 나듯’이란 표현이 딱이다. 옥의 마음을 떠올리면 어슴푸레한 슬픔이 자주 스몄다. 나는 아마도 요구가 드문 옥의 마음이 가뭄일까 늘 신경 쓰였던 것 같다. 살다 보니 마음속의 가뭄을 마주하게 되었고 가까이에 닮은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은 쉬웠다. 취향과 결심이 분명한 편임에도 관계 속에서 요구가 서툰 나는 자주 슬펐다. 요구하지 않는 아이는 자라서 욕구가 낯선 어른이 되었고, 욕구 없이 욕망이라는 단어를 품는 일은 가뭄에 콩을 기다리는 일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무의미가 무기력이 될 때쯤 서른 가까이 다다랐고 마음은 낭떠러지에 닿고서야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상담 치료는 내가 욕망이라는 단어를 비로소 마주한 계기가 되었다.


욕망이라는 알록달록한 세계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원해도 되나’라는 질문이 나를 멈춰 세웠다. 먼저 배운 조심스러움과 자기 검열의 언어는 제자리를 맴돌게 했고, 행여 내가 내는 발걸음이 소음이 될까 발꿈치를 들어 발가락으로만 버텨온 시간도 있었다. 까치발로 찾아 나서기엔 욕망이라는 세계는 너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고갈된 자아에서 길어낼 욕망의 언어는 없었다. 어쩌면 언어의 고갈인지 자아의 고갈인지 분간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오랫동안 나를 방치했을지도 모른다. 욕망을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욕망의 부재가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요구하기보다는 요구받는 일이 익숙한 나는 옥을 많이 닮아 있었다. 자신을 닮은 나를 발견할 때마다 옥은 씁쓸한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육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때 가장이 되었고, 남편을 일찍 잃은 아버지의 엄마는 남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사람마다 최선은 너무나 다른 모양새를 가졌다. 옥이 시집가서 시어머니로 만나게 된 아버지의 엄마는, 당신의 엄마와는 전혀 다른 최선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 차이는 옥이 쉽게 소화하고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며느리의 도리라는 명목으로 최대한 맞추고 참아냈다. 요구는 요구를 끝없이 낳았고, 불편한 요구를 억지로 삼켜내며 옥은 옥의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30년쯤 하고 나서야 시어머니와의 단절을 선언했고 비로소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엄마 선물은 없냐?”


할머니는 특유의 너스레로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아버지가 준비한 선물을 나에게 건네주던 상황이었다. 평생 배를 타고 해외 생활을 하느라 생일을 챙기지 못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랐는데 이날은 아버지가 일부러 챙겨 와 준 선물에 나는 기분 좋은 놀라움을 느끼고 있던 순간이었다. 애석한 타이밍은 불쑥 나타난 할머니가 던진 한마디에 증발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익숙하다는 듯 웃으며 할머니의 ‘농반진반’을 살갑게 달랬다. 선물을 받은 감동보다 할머니의 눈치가 보여 나도 아버지를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혼자 있을 때 조용히 포장을 뜯어보니 만년필이었다. 만년필을 가방에 챙겨 넣다 별안간 옥이 떠올랐다. 보란 듯이 요구하는 일이 수월한 아버지의 엄마 앞에서 나의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나는 옥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자주 묻는다. 버릇처럼 튀어나오는 “다 좋지”라는 대답은 원천봉쇄 하기로 했다. 대답대신 침묵이 길어질 때면 이것과 저것을 던져 본다. 둘 중에 어떤 걸 덜 원하는지를 답하는 것이 그나마 편해 보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옥의 ‘콩’을 수확해 본다. 콩을 수확하는 즐거움 너머로 커다란 나무 한그루도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 알록달록한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욕망의 나무를. 이번 주말에는 옥이 좋아하는 자몽을 한가득 사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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