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테니스 상금을 동일하게 만든 세기의 대결
빌리진 킹과 바비 릭스 세기의 성 대결
프로와 아마추어의 벽이 허물어진 오픈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많은 것이 변한 테니스 판에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남녀 선수들에 대한 오랜 차별이었어.
1970년대에 들어서도 남녀 상금엔 큰 차이가 있었는데 1970년에 열린 이탈리아 오픈에서
남자 단식 우승자인 일리 나스타세는 3500달러를 받은 반면 여자 단식 우승자였던
빌리진 킹은 단 600달러만 상금으로 챙길 수 있었어.
오픈시대 이전 2.5:1 수준이었던 남녀 상금 격차는 1970년대에 들어서 12:1 수준까지 벌여졌지.
심지어 남자 대회에 밀려 여자 대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여자 선수들은
생존의 위협을 느꼈고,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했던 빌리진 킹을 주축으로 총 9명의 여자 선수들이
상징적인 1달러 계약을 하며 오리지널 9를 결성해.
그들은 담배회사였던 버지니아 슬림스의 후원을 받아 새로운 토너먼트를 개최할 수 있었고
USLTA(United States Lawn Tennis Association) 반대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슬림 시리즈는
미 전역에서 19개 대회까지 확장하며 큰 흥행을 거두게 돼.
여성 인권운동의 상징이 된 빌리진 킹
빌리진 킹은 1971년 테니스 역사상 최초로 한 해 상금으로만 10만 달러 이상 벌어들인
최초의 여자선수이자 단식에서만 10번의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 올린 위대한 선수였어.
하지만 선수로서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 스포츠계에서 만연했던 여성에 대한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항했고 오리지널 9의 주축이 되어 버지니아슬림 시리즈를 출범시켰어.
빌리진 킹은 스포츠계에서 여성인권을 위해 싸운 선구자이자 WTA(여자프로테니스)를 출범시킨 장본인이야.
여자의 자리는 부엌과 침실이다 남성우월주의자 바비 릭스
스포츠계의 오랜 남녀 차별을 끝내기 위해 남녀임금평등을 주장했던 그녀와 달리 한물간 테니스 선수였던
바비 릭스는 누구보다 강하게 킹이 주장한 남녀임금평등을 희화화하며 비판했어.
릭스는 선수 시절 1939년 2번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은퇴 후에는 도박에 빠지며 재산을 탕진했고 전세를 역전할 수 있는 한방이 필요했어.
그래서 당시 55세였던 릭스는 전성기였던 빌리진 킹을 도발하며 남녀 성대결을 제안하게 돼.
빌리진 킹은 여성인권운동이 남성우월주의자라 불리는 바비 릭스와의 대결로
희화화될 거라 생각해서 이 제안을 거절했어.
하지만 릭스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역대 최다 그랜드슬램 우승자인 마가렛 코트와 대결을 성사시켜.
출산 후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마가렛 코트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릭스에게 2:0으로 완패했고,
경기 후 기세등등한 릭스의 제안을 킹이 받아들이며 마침내 세기의 대결이 성사돼.
참고로 마가렛 코트는 여성인권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릭스와의 대결로
그랜드슬램 2번 우승한 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됐어.
“It’s a battle of the sexes and the gladiator of the men happens to be me, a 55-year old man with one foot in the grave.”
(바비 릭스)
1973년 9월 20일 휴스턴의 애스트로돔에서 열린 세기의 대결
바비 릭스가 판을 키우며 열린 두 번째 대결은 마가렛 코트와의 첫 번째 대결을 훨씬 뛰어넘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였고 ABC 방송국은 중계권을 따내기 위해 무려 70만 달러를 써야만 했어.
릭스와 킹의 대결은 승자독식 방식으로 진행됐고 이긴 사람이 상금 10만 달러를 모조리 가져갔어.
화려한 언변을 가진 바비 릭스는 경기 전부터 끊임없이 킹을 도발하며, 여성을 비하하는
트래쉬 토크를 남발했어. 그는 연습을 할 시간에 흥행을 위한 마케팅에 더 힘썼고,
킹은 반대로 그의 도발에 대응하지 않은 채 묵묵히 훈련에 임했어.
"I underestimated you" 난 널 과소평가했어
경기 당일 애스트로돔에는 세기의 대결을 보기 위해 무려 3만 명의 관중이 몰려들었어.
빌리진 킹은 클레오파트라를 연상시키는 금빛의 드레스를 입고 고대 이집트의 여왕처럼 등장했고
바비 릭스는 금색 바퀴가 달린 인력거를 타고 노란색 재킷을 입은 채 광대처럼 등장했어.
일반적인 테니스 경기가 아닌 서커스처럼 특별한 이벤트 경기 같았지.
릭스는 캔디회사인 슈가대디의 로고가 쓰인 재킷을 입고 나왔는데
그는 이 옷을 입는 조건으로 경기 상금의 절반인 5만 달러를 받았다고 해.
첫 세트에서 킹은 먼저 브레이크를 당했지만 26개의 위너샷을 기록하며 1세트를 따내.
55세의 릭스는 확실히 체력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고, 그가 상대하기에 킹은 너무도 견고했어.
세기의 대결은 킹의 6-4, 6-3, 6-3 승리로 일방적으로 끝나게 돼.
경기 후 릭스는 인터뷰에서 킹을 너무 과소평가한 게 패배의 원인이라 밝혔어.
킹은 승리에 도취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에게 테니스란 스포츠를 알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어.
그녀의 소감처럼 이 경기는 서커스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전 세계에서 무려 9천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봤을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줬고 테니스의 위상을 높인 그야말로 세기의 대결이었어.
바비 릭스는 두 번의 성대결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었고 빌리진 킹은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써
본인이 주도한 스포츠계 여성인권운동에 큰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어.
"Thank you Billie," Gauff said. "For fighting for this."
US오픈 우승 후 코코 고프가 한 말
2023년 US오픈 결승전에서 사발렌카를 꺾고 우승한 코코 고프는 우승 후
미국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빌리진 킹을 바라보며 감사함을 표현해.
선수 시절 네 차례나 US오픈에서 우승했던 빌리진 킹은 1972년 우승 이후
다음 해 동일 상금을 주지 않으면 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마침내
1973년 US오픈은 그랜드슬램 대회 중 최초로 남녀동일상금을 도입해.
빌리진 킹 덕분에 지금처럼 남녀 우승자는 똑같은 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됐지.
코코 고프 뿐만 아니라 모든 여자 선수들이 킹에게 감사한 이유지.
키리오스와 사발렌카의 세기의 대결?
세기의 대결이 열린 지 52년이 지난 2025년 또 한 번의 세기의 대결이 열렸어.
두바이에서 여자세계랭킹 1위인 아리나 사발렌카와 악마의 재능 닉 키리오스가 맞붙었는데
경기는 키리오스가 손쉽게 2:0으로 승리했어.
아무리 세계랭킹이 600위권대까지 떨어졌지만 투어 최고의 서브를 가진
2022년 윔블던 준우승자 키리오스를 사발렌카가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어.
17000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고 BBC에서 생중계했지만 자칭 세기의 대결로
불리길 원하는 이번 대회를 비판하는 여론이 심상치 않아.
사발렌카는 키리오스에 비해 9% 정도 축소된 코트를 사용했는데 이는 여자 테니스가 남자 테니스보다
경쟁력이 없다는 걸 암묵적으로 인정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어.
현역 선수인 닉 키리오스가 100% 로 서브를 넣었다면 경기를 조금 더 빨리 끝냈을 거야.
1973년 세기의 대결을 떠올리기엔 다소 아쉬운 결과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