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53마일 불꽃서브, 로켓이라 불린 로스코 태너

그랜드슬램 우승자에서 범죄자가 된 비운의 스타

by 원리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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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coe T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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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윔블던 결승 태너 vs 보리

1979년 스웨덴 출신의 비외른 보리는 디펜딩챔피언이자 윔블던 대회 1번 시드로 출전해

4 연속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어. 대회 준결승에서 라이벌 지미 코너스를 3:0으로 제압한 보리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지.

하지만 단 한 사람 무적의 보리를 상대하게 된 로스코 태너만큼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인

윔블던 결승에서 3연패를 노리는 보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미국 출신의 로스코 태너는 나무라켓 시대에 믿을 수 없는 153마일 (240km)의 서브를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였어. 위력적인 강서브는 잔디코트에서 더 빛을 발했고 태너의 유일한 그랜드슬램 우승 또한

또 다른 잔디코트 대회인 호주오픈이었어. (1979년엔 호주오픈이 잔디코트에서 열림)


로스코 태너의 자신감은 단순한 허풍이 아니었어.

냉철하고 기술적인 "아이스맨" 비외른 보리를 상대로 시작부터 강력한 서브를 꽂아 넣었고,

보리의 리턴게임을 어렵게 만들며 경기를 대등하게 이어갔어.

5세트까지 이어진 경기에서 보리가 먼저 브레이크에 성공하며 최종스코어 3:2로 승리했고

윔블던 4연패와 8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해.


경기 후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4 연속 우승자인 비외른 보리에게 쏠렸지만,

위대한 패배자인 로스코 태너도 테니스 선수로서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대회였어.

단순히 빠른 서브만 가진 선수가 아니라 그랜드슬램 결승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선수란걸 증명했으니까


로스코 태너는 그 해 US오픈 8강에서 다시 한번 보리를 만나게 됐어.

윔블던의 뼈아픈 패배가 채 가시기 전이었지만, 다시 한번 보리를 만난 태너는

전보다 더 강력해진 서브를 코트 위에 꽂아댔고, 마침내 보리에게 윔블던 결승의 패배를 갚아줘.

비록 4강에서 비타스 게룰라이티스에게 패배했지만 197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라는 걸 각인시켜 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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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태너의 유일한 그랜드슬램 우승

당시 호주오픈은 지금과 같이 4대 그랜드슬램의 대단한 위상은 아니었어.

수년에 걸쳐 개최지를 옮겨 다녀야 했고 1972년에서야 멜버른에 정착해 쿠용 스타디움의 잔디코트에서

대회를 치르게 됐어. 개최시기 또한 12월 초에서 1월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한 해 2번의 대회가

열리는 경우도 있었어. 1970년대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비외른 보리는 커리어 대부분을

호주오픈에 출전하지 않았고, 다른 정상급 선수들 또한 호주오픈을 스킵하는 경우가 많았어.

비행시간도 길고 상금도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1977년 호주오픈은 비외른 보리, 지미 코너스, 일리에 나스타세 등 세계랭킹 5위 안에 드는 선수들이

모두 불참했기 때문에, 기예르모 빌라스와 로스코 태너가 1,2번 시드로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어.

빌라스와 태너는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었는데 승리 시 둘 다 첫 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이었어.


다른 스타일을 가진 두 왼손잡이 선수의 대결에서 강력한 서브를 가진 태너가 좀 더 우세했고

빌라스는 장기인 네트 플레이를 평소보다 잘 보여주지 못하며 경기를 태너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게 돼.

1977년에 열린 두 번의 호주오픈에서 태너는 1번의 우승과 1번의 1라운드 탈락이라는

정반대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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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이란 불린 남자 로스코 태너

로스코 태너는 1951년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태어났어.

로스코 태너는 성공한 변호사였던 레너드 로스코 2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를 시작했고,

미국의 명문대 스탠퍼드에 입학하며 전국적인 인기를 가진 테니스 스타로 성장했어.

로스코 태너는 프로에서 엄청난 기록을 써 내려간 지미 코너스와 어린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는데

로스코 태너의 인터뷰에 따르면 주니어시절 대부분의 경기를 그가 승리했다고 해.

스탠퍼드 출신으로 좋은 집안환경에 준수한 외모까지 갖춘 그는 당내 수많은 여성 테니스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플레이보이로도 꽤 명성을 날렸어.


비외른 보리와 지미 코너스 등 정교한 기술을 가진 선수들이 대부분이던 그 시절

로스코 태너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불꽃 서브였어.


1978년 미국의 팜스프링스 토너먼트에서 태너는 무려 153마일 (240km)의 서브를 기록했는데,

26년이 지나서야 광서버로 불린 앤디 로딕에 의해 깨지게 돼. 지금도 153마일의 서브를 넣을 수 있는 선수는

투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기록이야.


태너가 친 공은 네트에 맞아 부러진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고 강력한 서브와 네트 앞

간결한 플레이를 로스코 태너의 상징이 되었어. 태너의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당시에도 독보적이었고

그는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함께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어.

현시대에 로스코 태너와 가장 비슷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는 올해 신시내티 오픈에서

4강 신화를 쓴 프랑스의 테렌스 아트만을 뽑았어. 아트만 또한 태너와 같은 왼손잡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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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 태너의 몰락과 재기

1979년 윔블던 준우승 이후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게 된 로스코 태너 특히 치명적인 팔꿈치 부상은

서브가 강점인 태너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어.

부상 이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태너는 1985년 은퇴를 선언해.

은퇴 후 태너의 삶은 급속도로 바뀌게 되는데 그는 더 이상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논란의 대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게 돼.


자녀에 대한 양육비 미지급 사태와 부도수표 발행 등은 그를 더 나락을 빠뜨렸고,

테니스 선수로서 몇십 년 동안 쌓은 명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렸어.

그는 지나친 낙관주의로 사기, 위조, 절도, 부도수표발행,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해 기소당했고

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테니스 선수로서 몇십 년 동안 쌓은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졌어.

태너는 빛나던 선수시절 얻은 우승 트로피를 팔아야 할 정도로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정신을 차렸고 현재는 테니스 코치로서 재능기부를 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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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빠른 서브 속도

로켓이라 불린 로스코 태너는 비공식적으로 153마일 약 240km의 서브를 기록한 걸로 알려져 있어.

하지만 현시대와는 사용하는 라켓의 종류와 서브 속도 측정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ATP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진 못했어. 로스코 태너의 기록은 오랜 기간 깨지지 않다가 2004년 미국의 광서버 앤디 로딕이 시속 155마일 약 249.4km를 기록하며 26년 묵은 기록을 경신했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서브 속도

1. 샘 그로스 164마일 (263.4km) : 2012년 부산오픈 챌린저

샘 그로스의 서브 속도는 챌린저대회 기록이라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진 못함


2. 알바노 올리베티 160마일 (257.5km)

챌린저 대회 기록이라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함


3. 존 이스너 157마일 (253km)

2016년 데이비스컵에서 기록한 속도


4. 이보 카를로비치 156마일 (251km)

2011년 데이비스컵에서 기록한 속도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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