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자이언트 킬러 인도의 테니스 선수 비제이 암리트라지
나마스테! 인도 테니스의 부흥
1970년대 테니스는 여전히 상류층만 즐기는 엘리트 스포츠란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유럽과 미국 등 영미권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어. 대부분의 국가가 경제성장기에 진입한 개발도상국이었던 아시아는 세계테니스 무대에서 철저하게 변방이었지. 이 시기 가장 주목받았던 아시아 국가는 인도야. 인도는 현대 테니스의 발원지인 영국에게 오랜 기간 지배를 받으며 스포츠 문화도 그대로 흡수했어. 인도를 점령한 영국인들은 가장 먼저 인도 전역에 잔디코트를 만들었고 인도의 엘리트 가문들은 사교를 위해 필수적으로 테니스를 배웠어.
인도 테니스의 왕 라마나탄 크리슈난
인도 테니스의 왕이라고 불린 라마나탄 크리슈난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받았는데 1954년 17세 나이로 주니어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세계무대에서 통할 가능성을 보여줬어.
그는 1960년 윔블던 대회에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냈지만, 대회 우승자인 닐 프레이저에게 아쉽게 패배해. 이듬해 다시 한번 크리슈난은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호주의 전설적인 선수 로드 레이버에게 패배하며 2년 연속 4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어. 세계랭킹 최고 3위까지 오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던 크리슈난 이후 인도에서는 그 누구도 그랜드슬램 4강 이상에 진출하지 못했어. 크리슈난은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서도 미친 활약을 이어갔는데 6번이나 팀을 결승에 진출시켰고, 통산 단식 50승을 달성하며 인도 선수 중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선수로 역사에 남았어.
1973년 혜성같이 등장한 자이언트 킬러
라마나탄 크리슈난과 같은 인도 마드라스 출신인 비제이 암리트라 지는 크리슈난의 후계자로 불리며
인도 테니스의 부흥을 이끌었어. 그는 형제 중 막내였지만 가장 성공적인 테니스 커리어를 이어나갔고
투어 단식에서 통산 15회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어. 그랜드슬램에서는 8강이 최고 기록이었지만
강자가 즐비했던 1970년대 로드 레이버, 캔 로즈웰, 지미 코너스, 비외른 보리, 존 매캔로 같은
선수들에게 승리를 거두며 자이언트 킬러로 명성을 얻었고 세계랭킹 18위까지 올랐어.
1973년 암리트라지는 선수 생활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돼.
윔블던 대회에서 8강에 올랐고, 기세를 몰아 US오픈에서도 8강에 오르는데 그 과정에서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로드 레이버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유명세를 탔어.
35세의 로드 레이버와 19세 비제이 암리트라지의 경기 중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기도 했지만
경기는 지속됐고, 로드 레이버는 징이 박힌 스파이크로 갈아 신으며 투혼을 발휘했지만 정교한 암리트라지의
공격에 결국 패배하게 돼. 1973년 미국에서 열린 볼보 인터내셔널 대회 결승에서는 스무 살 혈기 넘치는 지미 코너스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하며 첫 ATP 투어 우승컵을 들어
1974년 US오픈에서 세계 최강 비외른 보리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또 한 번 8강에 진출했지만
호주의 백전노장 캔 로즈웰에게 발목을 잡히며 크리슈난이 보유한 준결승 진출 기록을 깨지 못했어.
9전 10기 천적 존 매캔로에게 승리
비제이 암리트라지는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로드 레이버, 비외른 보리, 지미 코너스, 스탠 스미스
, 일리에 나스타세, 존 뉴컴 등 당대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다 이겨봤지만 단 한 사람
존 매캔로에게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며 1979년 로테르담 대회에서 첫 패배 후 9전 9패를 기록해.
심지어 9번의 경기동안 암리트라지는 단 2세트밖에 따지 못했는데 훗날 그의 자서전에서
존 매캔로의 약점을 찾는 건 불가능했고, 내 마음대로 공략할 수 없었다고 밝혔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81년 몬트리올에서 둘은 다시 조우하게 돼.
고양이 앞에 생선처럼 매캔로에게 약한 암리트라지는 또 다른 테니스의 전설
로이 에머슨에게 조언을 구하게 돼. 에머슨은 2가지의 조언을 해줬는데 첫 번째는 강력한
매캔로의 왼손 서브에 맞서 세컨드 서브 시 네트 대시를 하라는 거였고 두 번째는 서브 시 매캔로의 포핸드를 공략하라는 거였어. 서브 앤 발리 작전은 성공적이었고 결국 2:1로 매캔로에게 첫 승을 거두게 돼.
9번 패했지만 동료 선수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승리하고 싶은 열망이 강했기 때문에
인간 상성이라 불렸던 존 매캔로에게 승리할 수 있었어.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흘러 1984년
존 매캔로는 시즌 전적이 무려 59승 1패로 선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어.
이미 윔블던 결승에서 난적 지미 코너스를 쉽게 요리하며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지.
세계랭킹 70위까지 밀려난 암리트라지가 상대하기에 매캔로는 버거운 상대였어.
하지만 이미 매캔로를 상대로 이기는 방법을 깨우친 암리트라지는 또 한 번 자이언트 킬러라는
명성에 맞는 플레이를 펼쳤고 7개의 서브 에이스를 기록하며 2:1 역전승을 거두게 돼.
인도를 이끌고 데이비스 컵 결승 진출
비제이 암리트라지의 업적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데이비스 컵이야.
그는 1970년부터 1988년까지 인도 대표팀으로 데이비스컵에 출전하며 통산 45승 28패 중 단식 27승 18패, 복식에서는 형인 아난드 암리트라지와 팀을 이뤄 통산 18승 10패를 기록했어.
1974년 비제이 암리트라지는 인도 대표팀을 이끌고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 상대였던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정책에 항의하며 경기를 보이콧하게 돼.
암리트라지 007로 영화 데뷔
1980년대 초 성공적인 ATP 투어 생활을 이어가던 암리트라지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돼.
인기 영화 시리즈였던 007 제임스 본드의 13번째 작품 옥토퍼시의 감독은 영화에 출연할
인도 배우를 찾고 있었는데, 영화에 관심이 있던 암리트라지가 기회를 잡게 돼.
그는 영화에서 로저 무어를 돕는 M16요원을 연기했고 이후에 스타트랙에도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만들어나갔어.
은퇴 후에는 경력을 살려 TV 해설자로 활약했고 그의 목소리를 통해 전 세계 수억 명의 인구가
테니스를 처음 접하게 됐지.
비제이 암리트라지의 형제인 아난드와 아쇼크 모두 테니스 선수였고
그들의 자녀 또한 테니스 선수로 성장하며 암리트라지 가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니스 가문이 돼.
테니스 선수뿐만 아니라 배우, TV 해설자 그리고 유엔평화대사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테니스 대중화에 기여한 그는 2024년 또 다른 인도의 레전드이자 후배선수인 리엔더 파에스와 함께
인도출신으로는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