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단편집 : 맑은 날들] 초여름

by 원망

맑은 아침.

2000년 여름, 뉴욕 롱 아일랜드 2층 주택 뒷마당.

아흔 살의 할아버지가 낡은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호스를 들었다. 잔디에 물을 뿌리다 물이 안 나오자 동작을 멈추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나무 데크 위에 호스를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든여섯 살의 할머니는 아이스티 두 잔을 따랐다. 얼음이 청명하게 부딪히는 소리만 울렸다. 할머니가 잔 하나를 건넸다.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돌렸다. 할아버지가 더 가까이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할머니를 멈추게 하고는 수화기를 들었다.

“브라이언?”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잘못 걸려 왔나 보네?” 할머니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창가로 가 버티컬 블라인드를 젖혔다.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비가 온다고 했는데.” 그는 말했다. “하늘이 참 맑네.”

할머니는 주방 아일랜드 식탁에 기대 차를 마셨다. “우리 밖에 나갈까?“

그가 돌아섰다. 참 단순한 제안이었다.


뒷마당 수영장 옆에 나란히 앉았다. 수면은 고요했다. 울타리 너머 이웃집에서는 아이들이 웃고 물장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일의 소리였다. 그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도 맞잡았다. 그가 몸을 숙여 키스하려 하자, 할머니가 웃으며 그를 밀어냈다.

“어머, 그만 좀 해." 할머니가 말했다.

“왜, 뭐 잘못됐나?” 그가 말했다. 그는 일어섰다. “그럼 옛날 생각하면서 춤이라도 한 번 춰봅시다.”

할머니는 웃으며 손짓으로 거절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혼자 왈츠를 췄다. 할머니는 그의 몸짓에 소리 내어 웃었다. 수영장 수면에는 춤추는 그의 모습과 박수 치는 할머니의 모습이 비쳤다.

그는 다시 앉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오늘 정말 날이 맑네.”

할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정말 맑은 날이야."

그가 다시 손을 내밀자, 할머니가 손을 잡았다. 그들은 눈을 감았다. 나란히 앉아 잠이 들었다.



1940년대. 뉴욕 센트럴파크 북쪽, 아무도 없는 외딴 숲속.

젊은 연인이 서로를 쫓아다니며 장난치다가,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아래 깔린 담요 위로 넘어졌다. 그녀가 그를 밀어냈다. 그가 말했다.

“나랑 결혼해 줄래요?”

“뭐라고요?” 그녀가 놀라서 되물었다.

“나랑 결혼해 줄 거냐고 물었어요.“

“어… 네?” 그녀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나와 결혼해 줘요.”

그녀는 입을 가리고는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들은 나무 아래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맑은 하늘 위로 흰 구름이 흘러갔다. 그들은 담요 위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손을 들어 반지를 바라봤다. “슬플 거예요.”

“뭐가요?” 그가 물었다.

“우리 둘 중 한 명이 먼저 죽으면, 너무 슬플 거예요.”

그가 그녀에게 몸을 돌렸다.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거에요.“

그들이 일어났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아주 오래도록, 아주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거예요. 아이를 낳고, 손주들을 볼 거요. 증손주까지도 볼 거예요. 그리고 오늘처럼 맑은 날, 손을 잡고 평화롭게 잠들 듯… 같이 죽을 거에요."


그녀의 표정에는 복잡한 감정과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글쎄… 모르죠. 그냥 알 것 같은데요.”

“그럼 우리 같이 기도할까요?”

“기도? 나는 기도할 줄 모르는데.”

“내가 가르쳐 줄게요.”

그녀가 무릎을 꿇고 그를 이끌었다. 그도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그의 두 손을 모아 잡았다. “자, 이렇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아요.”

가장 커다란 나무 아래, 그들은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이제, 당신이 소원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말해 보세요.” 그녀가 속삭였다.



2000년 여름. 수영장 옆. 집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


한참을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할머니가 잠에서 깼다.


그녀는 일어나 할아버지를 흔들어 깨우려다가 멈췄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댔다. 할머니는 그를 올려다보더니, 조용히 끌어안고 흐느꼈다.


전화벨 소리는 자동응답기로 넘어갔고,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 할머니? 거기 계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저 브라이언이에요. 딸이… 딸이에요, 딸! 너무 예뻐요. 할아버지, 할머니께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요. 정말 너무 예뻐요…”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