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킹 에세이 #0003
밤의 찬 기운이 어느새 사라졌다. 나는 붉은 커튼을 드리운다. 이럴 때마다 햇살에 미안하다.
점심에 리틀 대구 튀김, 밥, 적양배추 조림을 먹었다. 이어폰을 다시 꽂으니 Ghostly Kisses의 Where Do Lovers Go? 가 귓속을 흐른다.
https://youtu.be/LM0uWS5AIwk?si=_hoEVWK6mMBukJBv
Ghostly Kisses - Where Do Lovers Go?
Meet me where all wrongs turn to right
Meet me where the light greets dark
Where the lovers go when they are tired
Keep me where you hide your second sight
Deep inside where secrets start
Where the lovers go when they are tired
Let’s watch the last rays fading out
Entwine our bodies on common ground
Will you hold on my love?
Even in a time of trouble
I want to hold on my love
Even in times of trouble
Will you hold on my love?
Even in a time of trouble
I want to hold on my love
Even in times of trouble
Meet me where you can break the silence
Meet me where the light greets dark
Where the lovers go when they are tired
Meet me in the gentle afterlight
Where your world falls apart
Where do lovers go when they are tired?
Let’s watch the last rays fading out
Entwine our bodies on common ground
Will you hold on my love?
Even in a time of trouble
I want to hold on my love
Even in times of trouble
Will you hold on my love?
Even in a time of trouble
I want to hold on my love
Even in times of trouble
리틀 대구는 바다와 내가 통용하는 이름이다. 스페인어로 pescadilla.
어릴 때 내가 즐겨 먹던 노가리와 비슷하다. 우리는 리틀 대구를 즐겨 먹는다. 싸고 맛있다. 불과 며칠 전, 지중해 바다에서 뛰어놀던 그들의 살은 지금 내 배 속에 누워 위산에 천천히 분해되고 있다.
나는 식곤증을 느낀다. 하지만 자지 않을 생각이다. 집에만 있다 보니 자꾸 눕게 된다. 그러니 배가 더 나오고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나는 오늘부터 참기로 했다. 그냥 이렇게 흰 책상에 앉아 음악 들으며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아무 글이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쓸 것이다.
카프카처럼, 남들에게 보여주는 스토리가 아니라, 내 안의 이야기를 나를 위해 뽑아낼 것이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바람이 없다.
변함없이 맑은 하늘. 스페인 오기 전 머물렀던 독일 코블렌츠는 비가 자주 와서 투덜거렸는데...
오늘 같이 따가운 날에는 그곳이 살짝 그립다.
<알리칸테는 언제나 맑음>
예전에 즐겨 봤던 미국 시트콤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에서 따왔다.
어딘가 좀 모자라지만 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밉지 않은 캐릭터들. 나도 언젠가 이런 코미디 소설을 쓸 작정이다.
베란다로 향하는 창의 절반은 열려있다. 나는 웃통을 벗고 반바지만 걸쳤다. 그리고 찜 볼을 의자 삼아 앉아있다. 바다는 책상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다.
나는 이제 나의 글 속으로 빠져들려고 한다. 눈을 감으면 텅 빈 어둠 속에 화자가 나타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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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에 하늘거리는 멋진 제복을 입은 여자가 나를 보더니 방긋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내가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 앞에 마주 서게 되자 내게 물었다.
“무엇이 두려운가요?”
건조되어 오그라든 장미 꽃병이 눈에 들어왔다. 당당한 그녀의 미소에서 왠지 모를 자부심에 대한 흔적이 느껴졌다. 나는 눈을 돌렸다. 머릿속이 늪에 빠졌다. 삶을 이는 괴팍한 상상이 펼쳐진 공간에, 여인과 마주 선 나는, 이미 속단할 수밖에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궤도의 이탈에 순응하였고,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고, 알 순 없지만, 그저 걸을 수 있는 길들이 여기 이렇게 펼쳐져 있지 않은가? 음울한 허탈감이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목적이 없으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 무엇을 바라지도 않고 무거운 짐도 원하지 않는다. 안일하고 허영심을 충족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참으로 멋지게 그리고 보기 좋게 세상의 옆으로 비켜나 있다고, 자신에게 항상 다짐했다.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말이다.
타인의 생각이 창조한, 세상이 바라보는 인격을, 나는 본능적으로 회피하며 살아왔다. 느긋한 나의 중심은, 아주 찬찬히 지상의 피조물과 인간의 산물들을 두루두루 살피며 지나갔다. 그러다 담배가 피고 싶으면 피우고, 배고프면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먹고, 목마르면 콜라를 마셨다. 자는 여자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여자와 보낸 지난밤은 지난주와 비슷했고, 지난주 밤은 지지난 주와 거의 흡사했다. 그저 섹스를 위한 약간의 돈만 필요했다.
풍요의 세대지만 여전히 살아가는 일은, 내가 덧붙인 욕망만큼 수고스럽다고 느꼈다. 그러자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 안 전체를 가르며 이 구석에서 저 구석으로 긴 갈증이 드리웠다. 천장에 어룽진 오솔길에 아로새겨진 작별 인사. 선명한 아쉬움이 덧없이 길게 매달려 있다. 희망과 좌절 혹은 설렘과 같은 감정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그 짧은 만남 속에 그녀는, 내게 그리움이라는 첫 페이지를 쓰게 만든 바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어 붙여야 할지 모르는 상념의 조각들. 어떤 연유로 파편이 되었는지? 차갑게 식어버린, 무작위적인 끌림의 연대기. 야릇한 불안. 가슴은 기억을 새겨두라 하고, 정신은 후드득 몸을 흔들어 거칠게 고개를 저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는 것이 팍팍할 때면, 늘 그 쓸쓸함이 빼곡하게 들어차 웅성거렸다.
아무튼, 나는 이제 익숙하기까지 한 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마치 갈라파고스의 거북이 마냥, 넘쳐나는 시간만큼 딱딱해진 등껍질을 천천히 질질 끌고 있을 뿐이었다. 그저 아쉬움이라면, 지난밤의 아련하고도 아늑한 혼란스러움을 반추할 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낮은 눈으로 바라보기 위한, 작은 생각을 기획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준비하였는데, 그것은 어느 날, 불현듯, 하루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거리로, 마침내 자리 잡고 말았다.
나는 이 일을, 부조리의 세간을 채우는 나의 의무와 권리로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