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킹 에세이 #0004
선명하고 푸른 하늘. 구름도 없는 텅 빈 하늘. 하지만 여름이 떠날 준비를 하는지 며칠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베란다에서 밝은 쪽으로 눈을 돌리면 지중해가 손톱만큼 보인다.
여기서 다리가 살짝 무거워질 만큼 걸으면 나타나는 순한 바다. 심심한 파도. 지나치게 넓은 하얀 백사장 – 못해도 광안리 해수욕장 10개 정도는 합쳐 놓은 길이 – 따스한 수온.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물속. 주위를 둘러보면 풍성한 가슴을 드러내고 일광욕을 즐기는 유럽 아줌마가 제법 눈에 띈다.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나의 성장기 대부분을 보낸 곳도, 언덕을 하나만 넘으면 늘 바다가 반겨주는 곳이었다. 비록 직장을 따라 서울 및 경기도, 유럽의 한복판을 돌고 돌았지만 결국은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그러므로 내 안에 바다가 산다.
나는 음악을 튼다.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https://youtu.be/b_YHE4Sx-08?si=Iy2qi_RJ-y2RwfYE
그리고 글을 계속해서 쓴다. 문장 한 줄 한 줄마다 느끼는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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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시리고 아픈 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고 하얀 모니터에, 흐릿한 끝자락으로 남아 있는 느낌과 상상을, 혼재하는 기억을, 시간순으로 나열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흑백의 작은 집. 부엌은 좁고, 연탄 아궁이에는, 이글거리는 연기를 타고 오르는 오렌지색 구진이 짧은 생을 끝내고 사라진다. 방과 문지방을 지나면 마당. 돌멩이를 품은, 흙에 새겨진 빗질을 따라가면, 비걱거리는 문이 떨어질 듯 위태로운 변소. 그것을 에워싼 시멘트 블록은 낮은 담벼락을 제공하고, 거북스럽게 벽에 붙은 구기자나무는, 타원형 잎을 건들거리며 보라색 꽃을 담는다.
검붉은 혈관을 따라, 다섯 개 팔을 활짝 펼친 작은 꽃. 붉은 열매는 지독하게 어둡고 거친 한여름의 폭풍을 따라 심하게 흔들린다. 후덥지근하였다. 바람이 민소매 속 겨드랑이를 살살거리며 지나가고, 춤을 추는 빗줄기는 위태롭게 비행하는 새들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심하게 푸른 바다가 눈앞을 가득 채운다.
나
나는 늘 혼자였다. 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늘 어머니와 나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대학을 간 그 해에 어머니는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이후 나는 완전한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그때, 정의했다. 내 직업은 나를 더욱 홀로 만들었다.
나는 프로그래머였다. 근무 시간은 무척 길었다. 보통 하루 15시간쯤 된 것 같았다. 나는 늘 모니터에 나의 모든 정신을 박은 채 시간 대부분을 때웠다. 담배도 술도 하지 않았다. 회식이 있으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피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한 가지는, 멍청하니 식당에 앉아 시답잖기 짝이 없고 늘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꽉 틀어막고 내 상상 속에 빠졌다. 나는 자신에게 만족하게 되고 안주하게 되었으며 이기려고 달려드는 세상에서 비켜 나와 천천히 걷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여자를 만나 섹스하는 것에만 몰두할 뿐이다. 그뿐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속을 채우고 있는 온갖 혼란을, 불명확하고 불안하고 단순하지만, 그런대로 명료한 언어로 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즉, 나는 음악을 들으며 돌아다니기, 글쓰기(일기), 글 읽기(도서관), 섹스하기가 내 삶의 전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련의 행동을 최소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꺼리는 지방 파견 근무를 즐거이 했다. 나의 조건은 딱 하나였다. 작더라도 독방을 달라는 것뿐이었다. 나의 삶은, 단조로운 울음으로 신세계를 연주하는 목관악기로 여겼다.
그렇게 25년 동안, 수혜의 꿀을 빨아 먹고 있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앞으로 겪게 될 두 개의 마음 - 쾌락과 절망, 행복과 고통, 구원과 파괴 - 을 향한 구멍으로 기어들어 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 나와 관계한 최소한의 사슬도 거추장스러워 끊어버렸다. 그저 끝없이 펼쳐진 푸른 대양으로 훌훌 날아가고 싶었다.
폴란드
늘 긴장과 설렘은 같이 한다. 푸른 하늘과 투명한 햇살. 멍멍하게 들려오는 쇳소리가 멈추고 사람들은 머리 위 선반에서 각자의 짐을 끄집어낸다. 약간의 웅성거림. 분주한 손놀림. 서로에게 마주치는 눈빛에는 안착의 편안함과 좁고 불편한 좌석에서 벗어난 해방감으로 들떠있다.
트랩을 내려오자 강한 햇볕이 달려든다. 찌푸린 눈살 속에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건물이 보였다. 파도 모양을 한 부드러운 곡선의 지붕. 브로츠와프 코페르니쿠스 공항. 지동설로 유명한 폴란드 과학자의 이름을 딴 곳. 나는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이곳으로 왔다. 하루를 꼬박 걸려 마침내 도착했다.
공항 출구를 벗어나자마자 나는 까까머리 청년의 어색한 미소를 마주하였다. 그는 A4 용지에 수기로 적은 내 이름을 들고 있었다.
“킴?”
“예스.”
“팔로우 미.”
그는 나의 캐리어를 덥석 쥐고는 제법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간다. 나는 잰걸음으로 그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공항을 벗어나자 듬성듬성 차들의 무리가 보였다. 그는 도로를 가로질러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낯선 도로에 향긋한 바람이 속삭인다.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처음은 늘 그렇듯, 과도한 긴장이 나를 지배한다. 첫사랑, 첫 관계, 첫 직장, 첫 외국….
나는 태어나서 50년 만에 외국으로 왔다. 그냥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싶었다. 나와 다른 사람, 다른 도시, 다른 음식, 다른 문화….
일 년 전에 나는 프로그래밍을 그만두었다. 나는 전혀 관심도 없는 요리학원에 다녔다. 6개월 뒤, 나는 한식, 일식,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차례로 취득하였다. 그리고 외국에 있는 모든 한인 식당에 이력서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폴란드에서 연락이 왔다. 전화상으로 간단한 인터뷰를 하였다. 나는 끝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