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킹 에세이 #0010
발렌시아를 다녀온 지 어느덧 일 년이 흘렀다.
무척 더운 9월의 하루였지만 아름다운 도시. 박쥐 도시. 그저께 챔피언스 리그 이강인 축구 보면서 발렌시아가 생각났다. 사실 내가 아는 유럽의 도시 이름 대부분은 축구 때문이다. 축구를 하는 것과 보는 것. 그다지 사건 사고가 없는 심심한 유럽 생활에 최고의 선물임이 틀림없다.
이젠 한국에 많이 알려진 빠에야. 해물을 넣은 빠에야는 우리 입맛에 제법 맞는 편이다. 토끼 고기를 넣은 빠에야가 제법 유명하긴 하지만.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며 다시 쓰기 시작한다.
Mari Samuelsen – Einaudi: Una Mattina (Arr. Badzura)
https://youtu.be/pgBELZ5z4T0?si=jl6L56aSoik4Xr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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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그녀를 천사의 옷을 입은 순백의 사랑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비친 첫 여자와 첫사랑, 첫날밤과 첫 관계를 수식하는 대단한 정열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그러한 시기에 나타난 상상은, 내가 두 번째의 초라한 로맨스 소설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나는 사랑을 정의하는, 보편적이고 우수한 장점을 지적한 책들을 도서관에서 가져와 분석하곤 하였는데, 그나마 비극이 희극을 웃도는 사랑은, 그 종국의 세련되지 못한 우둔함으로 비치는 상황에 빚어지는, 활자의 모자람에 대한 대가를 극복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늘 전개되어 나를 아프게 하였다. 그렇기에 나의 로맨틱 소설은 비극과 희극, 염세와 환각, 사물과 정념의 의지와 관계에서 비롯되는 적나라한 섹스를 주로 탐닉하고 정변의 감각을 구걸하는 것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쳤으니 결국, 나는 나의 마지막 버전이 무엇이고 그 처음과 끝의 사고는 무엇으로 이어졌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머릿속이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나의 로맨스는 출판과 동시에 그 누구도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다는 흡족한 단평을 접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내 소중한 추억을 깊은 수렁에 묻을 수 있는 우둔함에 경의를 표하며 나는 비로소 나의 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