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킹 에세이 #0011
11월 중순이지만 여전히 봄바람이 분다. 계절을 기억하는 것은, 모니터 화면 귀퉁이를 차지한 날짜뿐이다. 여전히 알리칸테는 푸르다.
지난달에 찍은 동네 사진 몇 장을 올려본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응답하라 1988>을 요즈음 바다와 함께 보고 있다.
88 올림픽 한 달 전에 전역한 내게, 1988년은 대한민국 남자의 큰 짐(군 복무)중 하나를 내려놓았으므로 꽤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군부독재의 검은 뿌리가 사회 전반을 짓눌렀던 시절. 드라마에서, 정봉이 백담사에서 전두환과 마주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잠시 드라마를 멈추고, 바다에게 그 시절의 암울한 시대상을 들려준다.
하지만 스페인에도 전두환과 비슷한 독재자가 있다.
장장 39년이라는, 역사상 가장 오래 집권한 독재자 <프랑코>.
그리고 그의 잔재는 아직도 스페인 정계에서 막강하다.
바다는 바르셀로나를 주도로 한 카탈루냐 인이다. 스페인어와 다른,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엄연히 다른 민족. 프랑코는 카탈루냐인의 배척과 탄압에 정점을 찍은 인물이다. 그러니 바다가 스페인을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독립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이곳과 같을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두 개의 언어 (스페인어, 카탈루냐어)가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늘 독립의 열망이 묻어있다.
음악을 튼다.
Ólafur Arnalds & Nils Frahm - Life Story
https://youtu.be/_sBHzqDJZCU?si=CIbYtNGYh_EIMSr2
그리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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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놀라운 이면의 진실은, 우리가 가까운 관계지만, 그 생각과 상태의 호환성이 그다지 보편적이지 못한 상태로 녹아내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붙어있다.
너무도 친밀하여 마치 하나같이 보이고 같은 속성을 유지하고, 둘의 관계를 쪼갤 외적, 사회적, 역사적 존재가치 또한 지니지 못하였다.
게다가 친밀성을, 무시로 일관하는 이웃들에 대한 가벼운 조소를 우리는 섞어줌으로써, 종국에는 하나라고 정의하기에 이르는 시간이 옆에 드리워져 있다는, 생경한 판단이 나를 더욱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거였다.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아내는, 내가 머무는 공간에 속해있지만, 그 반대편 속성은 애써 못 본 척하거나 애써 가벼이 여기려고 하고 애써 반항하고 충고하고 두려워함으로, 결국에는 내가 가까이 접하지 못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도록 심하게 다그치거나 침묵으로 항변하거나 불편한 식사를 만들거나 상황을 맞춘 분위기를 온통 벽지에 어둡게 발라 놓거나 흐릿하거나 검은빛으로 공간을 채우거나 마지못한 억지웃음을 드러내놓고 표현함으로써, 민감하거나 둔감한 나의 시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우울한 감성에 비수를 꽂는 간 큰 행동을 두둔하고 나섬으로써, 나는 이런 곳에 적을 두는 고통과 침울한 결과에 한없이 비참하게 흘러내리는 물질로 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