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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Oct 25. 2023

Mazzy Star - Fade Into You

남킹 에세이 #0009

알리칸테에서 시월을 느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상쾌한 바람과 지천으로 널려 있는, 까맣게 익어가는 올리브.      


점심 먹으러 가다 발견한 재밌는 표지판.      

바다가 말한다.      

“키스해야만 갈 수 있는 길이야!” (사실은 초등학교 앞 표지판)     


담벼락에 그려진 도깨비? 친근하다. 우리의 각시탈이나 양반탈이 떠오른다.     



마침내 도착한 햄버거 전문 식당. 그런데 신제품이 <김치 햄버거>.     


맛을 안 볼 수가 없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김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변함없이 느끼한 햄버거 맛. 


바다가 말한다.     

“이 집 주인장에게 김치 좀 갖다 드려야겠어.”     


오다 만난 아주 작은 예배당? 소박한 마음. 


오래전, 한국의 유명한 수필가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보며 다음과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를 한 게 기억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이렇듯 화려한 자기 집을 보며 마음이 편할까?’     


그런 의미에서 유럽 곳곳을 가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작은 교회에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다시 유튜브 음악을 틀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속박과 자유의 시간.     


Mazzy Star - Fade Into You     

https://youtu.be/MCtn3j_xYzw?si=6HfGUQKzBbL2dcTj

I wanna hold the hand inside you

I wanna take the breath that's true

I look to you and I see nothing

I look to you to see the truth     

You live your life, you go in shadows

You'll come apart and you'll go black

Some kind of night into your darkness

Colors your eyes with what's not there     

Fade into you

Strange you never knew

Fade into you

I think it's strange you never knew     

A stranger's light comes on slowly

A stranger's heart is out of home

You put your hands into your head

A million smiles cover your heart     

Fade into you

Strange you never knew

Fade into you

I think it's strange you never knew     

Fade into you

Strange you never knew

Fade into you

I think it's strange you never knew

I think it's strange you never knew   

  

**************     


나는 글쓰기에 대해서, 가끔 내가 이 행위를 지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왜냐하면 심하게 자유를 갈구하는 내가, 책상 틀에 박혀 속박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 속으로, 깊게 어둡게 심연의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는 장비를 갖추었다는 실상의 욕망에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에,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며 나를 담금질할 수 있는 노력 대비 우수한 가성비를 지닌 결과물을 가져온다는, 희망에 찬 낙관론적인 앎에 대한 투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 가지 장르의 소설을 두루두루 파고들어, 그 어두운 촉매의 무수한 가르침에 반기를 드는, 혁신적인 문장 만들기로 이어지는 어떤 행위의 지속성과 영속성에 따른 책임감을 감당할 수 있는 결의를 새기곤 하였다.     


나는 판타지(Fantasy)에서 우선시하는 마법과 용에 대한 심심한 용기와 내면적 두려움에 대한 반감을 서사적으로 쓰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대표하는 죄스러움에 대한 나의 부족한 상상력이, 현란한 입놀림으로 끝나가는 아픔을 궁극적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나는 쓴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나의 책을 추종자들에게 읽힌다.      


그들이 나의 책을 들고 한자씩 읽을 때면 나는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눈에 뵈진 갈망과 호기심이 종국에는 인생의 시간을 잡아먹고 그들이 정작 무엇인지 모르고 끝나버리는 허망함을 깨우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실 나는 허언증 환자와 다를 바 없다.     


지식을 쌓고 내면의 불공정과 외면의 생활고에 빗대어, 불어오는 혁명의 불씨를 키우고자 당당히 데모 선열에 동참하고, 그 피해를 도도한 감옥에서 보내고 있는 안경 낀 내면의 자아는 나의 소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을 내렸다.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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