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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Dec 14. 2023

Blue Eyes Unchanged

남킹 에세이 #0015

Michelle Gurevich - Blue Eyes Unchanged


                                                                                                                                                                            



“그녀의 이름은 외우기 힘들었을 정도로 생소했습니다.”          

“류예나 씨 말이죠?”          

“네, 발음하기도 까다로웠고.” 나는 천성적으로 발음 흉내 내기가 약했다. 즉, 상대방이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발음 알아듣기도 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척 말이 빨랐어요. 그래서 제가…. 잘….”          

나는 생각나는 대로 대충 두서없이 지껄였다. 다만 형사가 만족하기를 원했으므로 중간중간 말을 끊으며 그의 표정을 살펴보곤 했다.           

약사를 알게 된 건 정오가 지난 무렵이었다. 세 개의 전철이 교차하는 지점. 낡은 건물과 좁은 방이 무정형으로 엮어진 그곳은 동네 유일한 약국이었다.          

나는 비아그라를 요구했다. 그녀는 빤히 쳐다보며 웃을 뿐이다. 약간의 오만함이 묻어 있다. 그녀는 처방전을 요구했다. 처방전이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애초에 그녀를 수긍할 만한 어떤 것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나는 경박한 바람둥이였다. 나는 여자와 하는 이상한 줄다리기 같은 것에 쭉 빠져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내게 넘어오는 순간, 나는 자기 삶에 대한 당위성을 얻는 착각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          

초인종 소리에 잠을 깼다. 잠시지만 꿈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두 번 더 울렸다. 날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를 방문하는 이는 그동안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택배 물품을 문 앞에 두고 가며 한 번씩 벨을 누르는 게 다였다. 그마저도 요즈음에는 경비실에 맡기고, 문자 메시지만 남긴 채 그냥 가버리곤 했다.     

나는 누운 채 잠시 망설였다. 궁금하지만 귀찮기도 하였다.     

‘똑똑’ 이번에는 문을 손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의 불을 켰다. 별안간 쏟아지는 불빛에 눈을 찌푸렸다. 지나치게 형광등이 밝았다. 당최 익숙해지지 않는다. 방의 모든 곳에 빛이 반사되었다. 공간은 선명하고 두드러져 보였다.          

피로가 몰려왔다. 머릿속은 흐릿하고 정처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보이는 것은 분명 그 전날보다 열악한 상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 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나는 늘 어둡게 지냈다. 광채 없는 적막을 즐겼다. 반사되지 않은 곳에 스며든 은은한 흔적.      

흑백 모니터에 여자가 보였다. 문을 열자 쓸쓸한 미풍이 흘렀다.          

그녀는 평범한 얼굴이었으나 잔주름이 많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무척 늙었거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봉긋한 드레스 자국에 축축한 시선이 머문다.          

등허리를 침대 가장자리로 밀어 올렸다. 연한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광채가 일정하게 피어나는 투명한 액체가 담긴 크리스털 잔을 내려놓은 듯하였다.          

그녀는 술을 마셨다. 웃음이 많아지고 손동작이 빨라졌다. 그녀의 취한 모습은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무엇인가에 닿고 싶어 하는 본능을 억제하기 힘들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의 볼과 이마, 입술에 루주 자국이나 가끔 상처를 내기도 하였다. 무의미하거나 반복적인 장난도 이어지고 이따금 감정의 큰 변화에 휘둘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과 본인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지나치게 빠르기도 하다.           

그저 삶이 뒤틀리는 과정에서 꿈틀거리며 유영하는 그녀는, 일찍 폭력의 바다에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친척, 친구, 동네 양아치 모두 연관되었다. 놀랍게도 그러함 속에 느긋하게 헤엄치는 그녀는 나빠질 수 없는 인생의 정점을 헤쳐 나갔다.          

나는 나를 감싸는 욕망을 이야기한다. 나의 정신은 그녀의 탐스러운 피부에 꽂혀있고, 여자는 내가 늘어놓는 말속에 편안함을 표현하고 있다.          

늘 비슷한 유형의 단색 옷만 보다가 몇 가지 기교가 들어간 드레스 느낌의 옷을 보니 절로 성욕이 솟아올랐다. 몸의 기능들이 한 곳으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입고 있던 옷들이 답답해질 정도로 부풀어진 것 같다.        

나는 거칠게 그녀의 젖가슴을 만졌다. 여자는 혼곤한 저항으로 나를 밀쳐내고만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진정 바라는 파멸의 고리는 이것이라는 것을.          

약사는 말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여자의 가슴을 내게 밀착한다. 납작하지만 감촉은 전해진다. 얇은 천이 전해주는 유혹은 강렬하고 뜨겁다. 발기가 되고 걸음이 어색해지기 시작한다. 발정 난 성기를 좀 더 간편하게 감출 수 있는 진화된 동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거친 호흡이 검은 하늘에 흩뿌려지듯 날아갔다. 나의 행위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슬프고 우습다. 욕정에 사로잡힌 고깃덩어리. 약사는 으르렁거리며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한다.          

“미친 새끼!” 파고드는 나의 얼굴에 여자의 증오가 매달렸다. 어깨에 깨알 같은 소름이 돋았다. 거친 손찌검이 이어진다. 여자는 공포에 차서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이 북받치는 듯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역정을 억지로 삼켜버리고 있다.      

모든 삶은 그냥 들쭉날쭉하다.           

여자는 초췌해진 모습으로 물러선다. 얼굴에는 선혈이 묻었다. 전신에 차가운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내 옆에 앉은 채로 속을 모두 게워냈다. 수챗구멍에서 나는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그녀는 나자빠졌다.         

검은 눈은 초점을 잃은 채, 눅눅한 천장을 줄곧 응시했다. 설핏 의식이 나간 듯하였다. 하지만 푸르죽죽해진 입술은 쉼 없이 움찔거렸다. 목에는, 막 곪기 시작한 종기 같은 멍울이 몇 개 보였다. 선명히 드러난 쇄골 아래로 절망이 흐른다.          

다들 불행하므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세상이다.          

고통과 번뇌가 쭉 뻗쳐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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