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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06. 2024

죽이고 싶지만 섹스는 하고 싶어 #5

“정말 미안해요. 정말 죄송해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그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예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저는 심인자님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지금이야 이렇게 잡혀 있으니까 그저 빠져나올 요량으로 하는 거잖아요. 내가 가고 나면 당신은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가겠죠.”     


“아뇨. 절대로 그러지 않을게요. 그냥 없었던 일로 할게요. 절대로 절대로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걸 어떻게 믿죠? 당신이 신고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어떻게 제가 확신할 수 있나요?”     

“제가 미쳤어요? 당신을 신고하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저의 집에 이렇게 불쑥 나타났는데 제가 신고를 하면 저는 평생 보복의 두려움 속에 살게 될 거잖아요. 제가 왜 그러겠어요?”     

“그건 아니죠. 생각해보세요. 제가 당신 집에 무단 침입한 순간부터, 이전 성추행은 이제 사건도 아닌 것이 된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제 제가 잡혀가면 저는 강도죄가 성립되는 거예요. 감옥에서 수십 년을 썩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발 뻗고 편안하게 잘 거고요.”     


“하지만 언젠가는 교도소에서 나올 거잖아요?”     

“당신은 세월의 속성을 모르는군요? 세월이 약이라고도 하잖아요. 게다가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텐데…. 과연 당신을 찾아 복수할 의지가 있긴 있을까요? 그리고 다시 그 끔찍한 교도소로 돌아갈 용기는요?”     

“그럼, 조필호님. 당신이 저의 집에 찾아온 이유는 저를 죽이기 위함인가요?”     


“네. 그럴 생각이었어요.”     

“뭣 때문에? 겨우 성추행범이잖아요.”     

“겨우 성추행범이 아니니까 문제죠. 우리가 지하철에서 싸우고 있을 때 주위를 한 번이라도 봤어요?”     

“주위요?”     

“네. 우리 주변 말입니다. 하나같이 휴대폰으로 우리를 찍고 있었어요. 아마 지금쯤 온라인상에 우리의 동영상이 끝없이 번지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죄인으로 몰지는 않을 거예요.”     

“심인자님, 우습네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를 추잡한 성추행범으로 몰아 콩밥을 먹이려고 길길이 날뛰지 않았어요? 게다가 당신이 주위 사람들을 부추겼잖아요. 그들이 우리의 영상을 찍고 인터넷에 퍼트리도록 당신이 미끼를 던진 거잖아요.”     


“정말 정말 미안해요. 제가 요즈음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아 그냥 정신이 나갔는가 봐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며칠 전 우연히 전 남친을 봤어요. 레스토랑에서.”     

“그런데요?”     

“어떤 외국 여자와 밥을 먹고 있었어요. 여자의 배는 남산만 하더군요.”     

“그런데요?”     


“그놈의 표정이…. 그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연신 웃으며 그 여자의 배를 쓰다듬는 모습이 마치…. 행복에 겨워 죽겠다는….”     

“얼마나 사귄 거였어요?”     


“오래되었죠. 대학 과 커플이었어요. 스무 살에 만나 서른셋에 헤어졌어요.”     

“그럼 13년?”     

“네. 그런 셈이죠.”     

“왜 헤어진 거예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남자 집안이 가난했어요.”     


“그게 헤어진 이유라고요?”     

“네. 그냥 반지하 월세방에서 출발하고 싶진 않았어요.”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게 출발하는 거잖아요?”     

“무슨 소리예요?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제 친구들은…. 그래도 코딱지만 한 아파트라도 다들 장만하고 시작했어요.”     


“남자가 무직이었어요?”     

“아뇨, 대기업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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