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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07. 2024

죽이고 싶지만 섹스는 하고 싶어 #6

“그럼? 뭐가 문제에요? 번듯한 직장 있겠다 둘이서 열심히 벌면 언젠가 경제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 괴로운 거예요. 알겠어요? 그땐, 바보같이…. 제가 뭔가에 단단히 홀린 것 같았어요. 대학 시절 나보다 훨씬 못났던 친구들이 잘사는 거에 그냥 심통이 났어요.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고요.”     

“지금이 어떤데요?”     


“아저씨! 보면 모르겠어요! 단칸방 원룸에 혼자 초라하게 살고 있잖아요. 내일모레면 서른여섯인데….”     

“그래서 남자에 대한 적개심이 생긴 거예요?”     

“그런 셈이죠. 하지만 어제처럼 아저씨에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드러낸 적은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하참! 아저씨 아니라니까!”     

“네, 죄송해요. 조필호님. 아무튼 저는 무작정 생떼 쓰며 막무가내로 모르는 남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그런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조필호님. 그러니 제발….”     

“그런데 어제는 왜 그랬어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회사에서.”     

“무슨 일인데요?”     


“그저께 눈이 많이 왔잖아요. 그런데 남자 신삥이 왜 남자들만 제설 작업해야 하냐고 위에다 따진 게에요. 그래서 뜬금없이 여직원들도 제설작업을 같이 한 거예요. 6년 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회사에서 제설작업을 시켜요?”     

“네, 공무원이거든요.”     

“그런데 제설작업은 같이 하는 게 맞잖아요?”     


“네. 맞죠. 그러니 분통 터진다는 거예요. 제 아까운 청춘을 쏟아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여성의 차별을 반대하며 살았는데…. 지금 그 결과를 한번 보세요…. 예전 같으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알뜰살뜰 살림하며 오순도순 아기 키우며 느긋하게 살면 되었는데 지금 저를 보세요! 남자는 다 떠나가고 저는 죽을 때까지 직장생활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젠 그 직장에서 누리던 작은 배려도 다 사라지고 있잖아요! 도대체 이놈의 페미니즘은 누구를 위한 건가요?”     

“자업자득이군요.”     

“네. 그러니 그냥 심통이 난 겁니다. 조필호님. 그러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심인자님.”     

“어떻게요?”     


“우선 당신이 나를 무고했다는 영상을 남기는 겁니다. 즉, 조필호가 성추행한 사실이 없는데 단지 세상 남자에 대한 적대감으로 즉흥적으로 했다. 뭐 이런 내용의 동영상을 남기는 거죠.”     

“그러면 저를 살려주시는 건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뭔가요?”     

“저와 섹스해야 합니다. 그것도 그냥 수동적인 그런 섹스가 아니라 구구절절 너무너무 사랑하는 연인의 뜨거운 정사 장면으로 연기를 해야 합니다.”     

“네? 섹스를요? 그건 왜요?”     


“만일을 위한 거죠. 당신이 절대 신고 못 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그러니까…. 그게….”     

“또 뭐죠?”     

“저는 그러니까…. 아직 여자하고 한 번도….”     

“아직 한 번도 못 해봤어요?”     

“네. 아직…. 한 번도….”     

“이상하네요…. 조필호님 얼굴정도면 여자들이 꽤 따랐을 것 같은데요….”     

“헤헤헤.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사실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있다가 6개월 전에 나왔어요.”     

“왜요?”     


“우울증이죠. 자살 시도를 몇 번 했거든요.”     

“왜 그랬어요?”     

“알잖아요. 한국 사회. 모두 경쟁에 지쳐 우울하잖아요.”     

“네. 그건 그렇죠. 그런데 얼마나 오랫동안?”     

“3년 있었어요. 병원에.”     

“지금은 다 나았어요?”     


“아뇨. 하지만 많이 좋아졌어요. 마음을 비웠거든요. 쇼펜하우어 덕분에. 그냥 지금은 덤으로 사는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런 행동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어차피 삶은 무의미하니까.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이러는 거예요. 즉,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뜻이죠.”     

“그래서 저와 같이 죽을 생각을 한 거예요?”     

“네. 그런 셈이죠. 그런데 당신과 섹스할 생각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럼 우리 같이 살아요! 섹스하면서!”     


*************     


나는 일주일 뒤 그녀의 원룸으로 거처를 옮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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