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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08. 2024

착한 남봉근 사장의 슬픔 #1

남봉근은 살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한마디로 종합병원입니다. 남봉근님”     


의사를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고혈당…. 지금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나이 서른아홉. 신체 나이는 이미 예순아홉입니다.”     


봉근은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의 퇴사 소식에 회사 전체가 들썩였다. 그도 그럴 것이 봉근은 억대 연봉의 잘나가는 게임 개발자였다. 조만간 개발 이사 자리가 내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곧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봉근은 입사 후 대부분을 회사에서 살았다.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게임 프로그래머의 숙명이라고 그는 자위했다. 하루 대부분을 푹신한 의자에 박혀 손가락만 까닥였다. 줄담배에 폭음, 야식을 즐겼다. 회사에서 그의 가치는 점점 올라갔지만, 그의 사랑은 멀어져갔다. 결국 작년에 이혼 도장을 찍었다.     


텅 빈 아파트. 그는 의사의 충고대로 온라인 게임을 끊고 앞동산, 뒷동산, 강변 산책 도로를 홀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날이 저물고 집에 돌아오면 외로움이 그를 짓눌렀다. 뭔가를 해야만 했다. 몸을 움직이는 직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차례로 한식, 일식, 중식조리기능사를 취득했다.  

    

남봉근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있는 한인 식당에 주방보조로 취업했다. 브로츠와프는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공업도시다. 모 대기업의 전기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근로자의 삼시 세끼 식사를 준비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의 힘든 노동 환경과 적은 급여지만 그는 만족했다.     


우선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좋은 성품의 한국인 쉐프가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대부분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된 직원들도 친절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자 그는 몰라보게 건강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쭉 이렇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끝이 보였다. 공장 건설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 식당을 이용하던 150명에 달하던 건설 인력이 어느새 절반으로 줄었다. 그에 맞추어 식당 직원들도 절반이나 감소했다. 남봉근은 조만간 자신도 잘리게 될 것을 직감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향후 대책이 필요했다. 그때, 30년 경력의 쉐프가 그에게 제안했다.     


“봉근 씨,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단 하나의 음식이 뭔 줄 알아요?”     

“단 하나의 음식요?”     

“네, 그건 튀김입니다. 튀김 싫어하는 민족은 없어요. 그러니 여기서 장사를 하려면 튀김집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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