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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킹 Feb 29. 2024

장미와 이빨 #4

2. <이름 없음>으로 방문하는 곳

”극복의 과정은 거치고 있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다양한 방법을 적용합니다. 이미 인간의 해동 프로세스는 100년 전에도 확립이 된 상태였으니까요. 다만 그 정밀성과 우수성, 안정성을 좀 더 확보하는, 지나 한 방법들이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입니다.“     

”주된 방법은 무엇인가요?“     

”독서입니다.“     

”독서라고요?“     

”네. 그것도 인간이 쓴 책들만 해당합니다.“     

”맙소사! 인간의 글을 읽으신다고요? 그건 찾기도 힘들 텐데…. 거의 다 전통 박물관에만 처박혀 있었을 텐데. 전쟁 때 소실된 것도 엄청날 거고.“     

”그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사님의 거의 유일한 취미가 인공지능 시대 이전에 행한 인간의 예술 행위 작품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즉, 거의 모든, 과거 인류가 <위대한>이라는 명찰을 붙였던 책 대부분을 디지털로 보관하셨습니다. 물론 음악과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사님은 어떤 책을 읽으셨나요?“     

”박사님이 오랜 동면에서 깨시고 처음 접한 책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라만차의 기발한 신사 돈키호테>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247번째의 작품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계십니다.“     

”맙소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미나이 울트라가 무려 4만 군데의 오류를 지적한 소설입니다.“     

“제미나이 울트라?”     

“아! 아마 못 들어봤을 겁니다. 최초의 멀티모달 집합체로 알려진 구형 AI입니다. 정교한 추론이라고는 했지만, 여전히 미성숙했던 개체고요. 만약 당신이 채택했다면 지금 당장 뒤로 가다 빌딩에서 떨어져도 그 타당성을 인정하는 얼토당토않은 미련함을 보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우습군요. 그런 시대가 있었다니.”     

“재미있죠. 그런 시대에 내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짧은 생을 견디며 살았으니까요. 왜 산다는 것은 관념에 접어 둔 채로….”     

“박사님의 책에 대한 취향은 아주 엄격하고 편협합니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소설에 대해서는 여간해서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 정도뿐입니다. 박사님이 구사하시는 모호한 표현에 의하면…. 그분을 사로잡은 일종의 공복, 허기, 텅 빈 가슴, 공허한 심장에 대해 모질도록 귀중하고 섬뜩하게 이상해서 그 자체로의 혼란을 지속해서 이성적 판단이 아닌, 섬광적, 감각적, 본능적인 광폭함으로 번지도록 추론할 수 있는 갈망 같은 것을 선호한다고 하셨습니다. 즉, 그는 그러한 부족이 채워지므로 이어질 때까지, 어찌 보면 괴상한 정보를 집어넣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의미심장할 수도 있군요.”     

“어떤 면에서?”     

“혼란과 무지, 앎과 죽음의 비밀과 모순적 생, 소용돌이치는 생명력 말입니다. 어쩌면 박사님은 죽었다 살아왔을 수도 있으니까요. 보이는 것과 적혀 있는 것, 기억나는 것과 생각나는 것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과 다변적인 마음의 상태,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다고 여기는 이런 모든 것들이, 독서라는 행위에 기이한 결과와 연결되고 뿌리 내릴 수 있고 가지로 뻗칠 수도 있으니까. 무엇도 간과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즉, 어느 한 형태도 소홀히 할 수조차 없겠죠.”     

“네. 박사님도 그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물론 차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으면서 하는 농담과도 같은 것들이지만 제가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는 이상, 그것이 어쩌면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주위의 사물과 펼쳐지는 사건들의 늪들, 지엽적인 행위들을 헤치며 하나로 합쳐지고 해석되고 결론되면서 얻게 되는 의미와 생각, 관념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느꼈으니까요. 물론, 이건 그분과 나눈 가벼운 시간에 한정되어있습니다만….”     

“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육체의 눈으로 광채의 두드러진 특성을 이해하지만, 사실 내면의 세상은 드러내지 않으려는 욕구 적 사고에 맺혀서 마치 어떤 감정은 소담스럽게도 나의 행동에 처한 갖가지 속삭임에 다분히 반항적으로 맺혀지기를 소원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인간의 반항이라고만 편리하게 판단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이해하도록 설계되었으니까요.”     

“그들에게 비롯되었으니 당연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유사 동음이의어에 사로잡히면 뭔가 모를 것들…. 말하자면 헛된 것에 대한 자긍심 같은…. 그 왜 그러니까…. 뭐랄까…. 20세기 인간들의 특징 같은 거 말입니다…. 남에게 보이는 것들…. 정말이지 너무 하찮은 것들…. 그런 것에 빠질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인간은 믿지 못한 존재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이름을 두지 않았습니까? 미스터 이름없슴님.”     

“하하하. 재밌군요. 이름을 차지하지 않음으로써 사라지고 있다는 편안함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마저도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습니다만, 뭔가 모를 비밀스러운 구덩이로 빠져들어 가는 위화감은 없앨 수 있다고 한 번씩 자부하기는 합니다. 타인들의 세상에 살기는 싫으니까요.”     

“그들의 시선 위에 놓이기는 싫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내가 벌거벗은 채로 잘못된 곳으로 옮겨졌다는 기분을 전적으로 다른 이의 시선 속에 숨은 해석에 따라 변동되는 의견에 불과하니까요. 저는 그런 의미에 무감각하고 뻔뻔하며 어느 곳이든 그 형식과 격식, 차림과 형태, 표정과 행위의 결과에 거리낌이 없다고 보면 될 겁니다.”     

“제가 보기에 박사님은 당신을 반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박사님이 비로소 인간적인 것으로 재생되는 데 필요한 다소 허황하지만, 왠지 정돈되지 않은 결을 따라 비정형의 인간이 내포한 역사가 펼쳐 보일 다양성에 꽤 흥미를 느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봐주신다니 고맙기 나름입니다. 다만 저는 오늘, 저의 방문은 다른 뜻으로 온 것임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 뜻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나중에 박사님께 직접 드릴 예정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어차피 인간의 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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