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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mo Kang Mar 11. 2019

봄날의 부산을 좋아하세요?

여행도 사람의 일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가 심술을 부릴 때가 특히 그렇다. 이번 부산행에서는 아침 햇살에 흩날리는 벚꽃비와 푸름이 올라오는 바닷빛을 만나고 싶었는데 봄은 뭐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아침부터 비를 품은 두터운 구름을 보내더니 늦은 오후엔 비까지 뿌리기 시작했다. 어찌할 것인가. 이번 여행의 시작은 비 내리는 부산이 되었다.



부산에도 벚꽃 명소가 많지만 광안리 남천동 아파트 사이에 있는 오래된 벚꽃터널 길을 굳이 찾은 까닭은 이 아파트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오래 늙은 나무들이라 옮길 수도 없다니 재개발이 시작되고 베어지면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꽃길이다. 나이 든 경비원은 무심하게 꽃잎을 쓸어 담고 있지만 아직 통보를 받지 않았을 뿐, 예정된 헤어짐을 기다리는 헛헛한 마음이 비질하는 뒷모습에 아련히 배어 있는 듯하다.



KTX를 타고 내려와 부산역에서 시작하는 여행을 반복하긴 괜히 싫어서, 시외버스를 타고 해운대 터미널에 내렸다. 몰아치는 바람에 어두운 하늘. 어제 생각했던 계획은 이미 지웠다. 바람을 맞으면서 파도를 보고 싶어졌다. 사람 없는 광안리 바다의 외로운 서퍼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졌고, 태종대 바위에 미친 듯이 부딪히며 속절없이 스러지는 파도 소리도 듣고 싶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하늘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얼굴이 되는 바다의 경이로움을 다시 보고 싶었다. 태종대에서 멀리 보이는 오륙도도, 그 너머 아련한 해운대 센텀의 마천루도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속에 다 하찮아 보인다. 어느 지나가던 여행자가 사진을 부탁하지 않았다면 아주 한참 그렇게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 모두가 힘겨운 피난의 삶을 버텨내던 시절에도 태종대에서 이렇게 바다를 보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어쩌면, 오십 년은 긴 시간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사람들은 이렇게 태종대 바다에 넋을 빼앗기고 있으니.



피난(避難). 고향을 떠나 낯선 남쪽 항구까지 밀려온 사람들은 그래서 산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거칠게 만든 집들이 빽빽하게 모여 마을이 생기고 길이 놓였다. 부산에 특히 산복(山腹) 도로가 많은 이유다. 그 산허리에 1964년 처음 개통된 망양로는 이제 부산을 찾는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초량동에서 영주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초량 이바구길을 걷는 사람도 많아졌고 중앙공원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닥밭골 벽화마을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찾는 사람도 생겼다. 그 너머 옛 태극도마을은 이제 감천문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부산의 대표적인 여행지가 되었다. 서면을 출발한 86번 버스는 그 산복도로를 구불구불 천천히 달려 남포동에 닿는다. 오십오 년 남루한 삶의 고단함이 켜켜이 쌓인 길은 이제 알록달록 예쁘게 단장되어 사람들의 카메라에 담긴다. 오십 년은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 길은 그 자리에 있지만 이제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난다.



오랜만에 동래에 갔다. 금정산 트레킹을 포기하고 찾은 곳은 오래된 온천과 파전집이다. 누룩으로 이름난 양조장의 막걸리와 두툼한 동래파전을 위해 구름과 비가 안내한 곳이다. 그 날 만들어진 산성막걸리에는 신선한 시큼함이 있다. 이름난 맥주 양조장도 많이 생겼다. 광안리는 가히 부산의 비어 로드라 불려도 될 만큼 좋은 크래프트 비어 펍들이 많아졌다. 비가 그친 늦은 밤, 인적 드문 자갈치시장의 작은 ‘두투’ 노점에서 마지막 소주 한잔을 기울인다. 상어 내장이나 껍질, 개복치 속껍질, 장어껍질 묵 등을 쪄서 ‘두툼’하게 썰어 초장에 찍어 먹는다. 영덕이나 울진 쪽에서 건너온 음식이라 하지만 파는 이도 정확한 내력은 모르고 그저 시어머니한테 전수받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처음 먹어보는 낯선 맛. 그 위에 차가운 대선을 붓는다. 아. 여행이다.



여전히 사직야구장에서는 ‘부산갈매기’와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울려 퍼지고 있지만 요즘의 부산 노래는 최백호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부산에 가면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로 시작하는 ‘부산에 가면’이다. 볼 수 없는 걸 알기에 가객은 노래로 그리움을 토한다. 매년 부산에 가지만 항상 같은 부산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봄의 부산은 조금 무겁고 쓸쓸했다. 그래도 어느 밝은 봄날에 분명 나는, 오늘의 부산을 뒤돌아볼 것 같다. 모든 지나온 청춘이 그러하듯, 빛나지 않아도 봄날은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2018년 5월, 어느 회사 사보에 실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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