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개념 수정과 인생

by 임풍

우리는 흔히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래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따라 그 불확실성의 성질은 달라진다. 만약 미래를 내일, 한 달 뒤, 혹은 일 년 후의 일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분명 알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미래를 지금 다음 순간으로 이해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 미래는 이미 내 손안에 있으며,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즉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뜬 사람이 있다. 그는 잠시 망설인다. 스트레칭을 하고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실 것인가, 아니면 어제를 후회하거나 내일을 걱정할 것인가. 이 짧은 망설임의 끝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그의 미래를 바꾼다. 스트레칭을 선택하면 다음 순간의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정돈된다. 이어서 또 다른 건강한 미래를 선택할 힘이 생긴다. 그러나 후회나 걱정을 선택하면 생각의 늪이 다음 순간의 미래를 끌어당긴다. 이처럼 인간은 <먼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가까운 미래>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연속이 결국 먼 미래의 모습을 결정짓는다.

자동차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할 때, 운전자는 한 번에 부산까지의 모든 도로를 볼 수 없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눈앞의 100미터다. 그러나 그 100미터의 연속이 모여,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게 한다. 인생도 그렇다. 우리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다음 구간뿐이다. 그 구간을 성실히 지나가면, 멀리서 보던 완성된 인생이 어느새 눈앞에 도착해 있다.

문제는, 우리는 미래를 너무 멀리 두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너무 먼 시공간을 미래라고 착각한 나머지, 지금 내 손에 쥔 가까운 미래를 경시한다. 마치 작은 돈을 하찮게 여기며 억 단위만을 큰돈으로 생각하는 사람처럼, 작은 선택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인생이란 결국 작은 미래들의 누적이다. 작은 퍼즐 한 조각이라도 빠진 그림은 완전하지 않다. 우리의 매 순간의 선택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작품의 한 퍼즐 조각이다.

감옥을 탈출한 죄수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단지 숟가락 하나로 10년 동안 벽을 파서 탈옥했다. 하루에 단 한 숟가락 분량의 흙을 퍼내서 버리는 일, 그것이 그의 가까운 미래였다. 그 작은 미래의 선택이 10년 후, 자유라는 거대한 미래를 만들어냈다. 인생의 변화란 거창한 결심보다, 바로 그 한 숟가락의 시간을 지속할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미래의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
미래란 내가 지금 직접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범위, 즉 감각과 의지가 닿는 가까운 시공간이다. 그 바깥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향한 운전자가 1분 후 부산의 교통상황을 걱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가 할 일은 지금 앞의 길을 선택하고 주의 깊게 달리는 것이다. 미래를 이처럼 재정의하면, 불확실성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언제나 지금의 선택이 곧 미래이기 때문이다. 먼 미래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늘 문제를 보지만, 가까운 미래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해결책을 본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가까운 미래만이 지금의 모든 자원, 지식, 감각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무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이란, 지금 내가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의 연속이다. 그 선택들을 통해 인간은 예측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하는 존재가 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의 선택이 바로, 나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