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를 느껴야 하는 영화
원제가 concussion 이면 뇌진탕인데, 한국 제목을 이렇게 바꾸니 느낌이 정말 다르다. 어떻게든 소프트하게 포장하려 한 마케팅 전략이 엿보인다. 사실 주된 소재가 '조건만남'이지만, 대낮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보기 괜찮은 영화이다. 그만큼 일상의 얘기를 일상적 톤으로 표현하고 있다.
근데.. 제목보다 내가 문제적으로 느낀 건 네이버에 영화 검색할 때, ‘청소년 부적합’ 어쩌고 뜬 걸 본 적이 없는데, 왜 이 영화는 네이버에 저런 문구가 뜨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상당히 반감 든다.
성매매는 다수의 영화에서 나오고.. 지난번에 본 <이 투 마마>는 성기 노출이 영화의 절반인데도 불구하고 영화에 저런 문구가 없었는데..
저렇게 밝은 톤으로 성매매를 성기노출 하나 없이 찍었는데…
부부가 동성이란 이유 때문에? 여성 상대 조건만남이라..?
아무튼 영화에서 레즈비언 부부 중 한 명은 섹스리스인 것 같고, 다른 한 명은 욕구불만 상태인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설정.
계기적 사건- 주인공 애비가 맘에 안 드는 창녀와 자고 나서 괴로워하자,
구성점 1 - 동료 저스틴이 매력적인 창녀를 소개해 주고, 대낮에 자신의 작업공간에서 밝고 산뜻하게 아름다운 섹스를 마친다. 매력적인 그녀는 애비가 이 일을 해도 될 것 같다는 얘길 하고 저스틴도 부추기자 한 번 시작하자고 맘을 먹는다.
2막 - 애비는 어린 친구를 처음에 보고 기겁을 하고, 먼저 커피를 마신다는 룰을 정한다.
성에 아직 눈을 못 뜬 대학생, 까다로운 유부녀 등등을 상대하면서 오히려 결혼 생활도 편안해진다.
중간점 - 동네 주민을 만나서 섹스를 하게 되면서 현타가 온다.
밀착점…
쓰다 보니 이런 구조가 이 영화에 그렇게 중요할까.. 의문이 든다. 물론 구성점은 존재하긴 하는데...
약간은 수다 떨듯이 편안하게 봐야 할 영화 인 듯하다.
시나리오, 평론, 대담으로 구성된다.
1. 시나리오
<벌새> 시나리오는 은희의 감정 결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 감정선은 각각의 관계 속에서 미세하면서도 거세게 요동친다.
하나 - 가족과의 관계
둘 - 학교 생활 관계
셋- 친구와 연인 사이 관계
넷 - 선생님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폭력과 일상이 함께 공존하고,
학교 생활은 모범생은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아라고 하기엔 소소한데 선생의 폭력 안에 놓여있다
숨구멍인 교우관계도 일희일비를 일으키며 기뻤다 화났다 하는 삶을 만들고.
이 모든 게 언제 폭발할지 모를 아슬아슬한 상태를 만든다.
이 감정은 나에게 찰랑찰랑한 불안과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한 동안 찰랑찰랑했던 그 마음은 내 개인 이유인지, 세상의 공기에 영향을 받은 건지 나 역시 모든 게 뒤섞여 있었고, 영화에서 은희가 느끼는 감정은 어릴 때의 폭력들을 떠오르게 해 다시금 또 찰랑찰랑해진다.
현재의 나에게 그 간의 상흔을 한 자리로 불러들이는 효과를 지닌다.
왜 이 작품과 함께 에드워드 양 감독이 자주 언급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대단한 사건이 없지만, 대단한 감정의 요동침을 겪어내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벌새>와는 절대 비슷하다고 하기 어렵다.
2. 앨리슨 벡델과의 대화 관련
자신의 경험을 서사화하는 것에 대한 고민들이 오고 간다.
영화 <벌새>를 처음 봤을 때, 감독의 일기장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대담을 읽다 보니 한 편의 에세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의 경험을 일반화시켜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도 사적 다큐멘터리가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감독에게는 엄청난 괴로움을 안겨준다. 처음에 찍기 편해서 시작했다가 편집할 때 후회한다는 농담처럼, 사적 다큐는 감독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넘어서야만 작품이 완성된다. 그 시간이 고통스럽고 힘들기 때문에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씩 붙들고 있게 된다.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어려움과 더불어 사적인 얘기가 어떻게 공적인 자리에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다.
아마도 엘리슨 벡델과 김보라는 이런 지점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까.
너무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지질해 보이고, 너무 남의 일처럼 객관화하면 공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영화를 뭐라 불러야 할까. 공기 중심 영화?
작가들이 영화를 분류할 때 편하게 '인물 중심'이냐, '사건 중심'이냐라고 말을 하는데,
이 작품은 이것도 중심이 아니고, 저것도 중심이 아니고, 둘 다 중심이 아닌 것 같다.
그 시대 속에 내가 함께 들어가 있도록 그 공기를 체감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을 오래 들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러닝타임이 짧게 나올 수가 없다. 감독은 이 작품에 어울리는 러닝타임을 찾았다. 요즘의 관객이 공기 밀도를 느끼려면, 절대로 몇 배속으로 돌려보면 안 된다.
만약 이 영화에서 '사건 중심'이나 '인물 중심'이런 걸 따오면,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영화가 될 수도 있다. 그 작품들은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공기 밀도 중심'은 아니잖아.
1961년의 실화를 기반으로 구성했다고 하지만, 그게 핵심이 아니다.
중국에서 피신 온 사람들의 시간을 그림 폭에 담아 그 공기를 느끼게 해주려 한다.
영화의 층위가 너무 깊고 복잡해서 하나씩 나누는 건 의미가 없지만..
국가의 분열로 누가 희생되는가를 대변하는 것 같은 인물은 샤오쓰의 아버지이다.
그 국가들을 은유하는 것만 같은 덜 자란 애들 무리. 애들 무리의 싸움질. 그 속에서 누가 희생되는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샤오쓰가 시대의 희생양처럼 보이지만 (주인공이기 때문에 관객이 가장 공감할 인물이기도 함), 사실 제일 밑바닥엔 밍이 있다. 밍은 남학생들 중 누구에게라도 잘 보이지 않으면 길바닥의 삶에 놓일 처지이다. 그녀는 남자들을 이용하여 카멜레온처럼 살아가야만 한다.
미중일에 껴있는 한국은 어떤가? 우리의 역사도 대만과 닮아있다.
밍의 대사
“네가 날 바꾸겠다고? 난 이 세계랑 똑같아. 이 세계는 변하지 않아. 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구성이 있긴 하지만 그게 절대적 가치가 있는가 모르겠고,
<공포분자>도 그렇고, 에드워드 양 감독의 정서가 너무 좋다. 희한하게도, 일상적이면서 서스펜스를 지속시킨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단순하게 추앙하고 싶진 않다.
이유를 찾고 싶다.
하지만 나는 뭐라 표현할 방법을 잘 못 찾겠다.
대신, 이 분의 글이 너무 좋다는 건 알겠다.
"송경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착각하지 마라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씨네 21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8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