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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Nee Feb 25. 2022

21년 8월 <환상의 빛>, <태풍이 지나가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210828

< 환상의 빛> (1995,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최근  < 어느 가족>을 너무 감동적으로 봐서 그런지.. 비교되는 면이 컸지만, 그래도 어딘가 구석구석에 그의 느낌이 묻어난다. 

일단, 감독이 좋아하는 주인공 마스크를 알 것 같았고. 30년 동안 추구한(?). 어딘가 서구적이고 시원한 느낌의 마스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무도 모른다>와 <어느 가족>의 아역 주인공. <기적>에서 여자 아역.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 <걸어도 걸어도>의 남자 주인공. 그러나 그와 반대로 릴리 프랭크 배우는 독특한 매력을 풍기며 쌀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 있다. 키키 배우님 역시도 한 번 보면 뇌리에 선명히 박히는데, 선하다 악하다 어느 쪽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함이 있다. 


히로카즈 감독도 다큐만 찍다가 극으로 넘어오는 시기에 어떤 강박감이 들었나 싶었다. 극영화에 대한 강박.

'히로카즈가 콘티를 모두 그린 것 같은데 그래서 살아있는 느낌이 없다'라고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꾸중(?)을 했다고 한다. 같은 맥락일지 모르겠지만,  인물과 카메라가 너무 거리 두기를 하고 있어서 인물의 삶에 파고들어 갈 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자 주인공이 아무리 웃고 있어도, 울고 있어도 딱 거리를 지켜준달까..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서는 거리감 있는 카메라지만 다른 종류의 느낌이다. 확실히 인물들에게 순간적으로 포착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래서 카메라는 현장에서 리허설을 하고 나서 정해진다고…?!!! ( 히로카즈와 셀린 시아마의 공통 언어??) 어디까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다큐멘터리적으로 이해되는 순간들이 있다. 카메라와 인물이 주고받는 케미. 그것의 포착.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현장에서 그 순간에 알 수 있는 것이다.


95년도 작품이면 25년이 지난 것인데.. 그래서 호흡이 다르다. 시간을 쓰는 방식이 다르다. 그것은 히로카즈의 최근작과도 다르다.

카메라와의 거리가 공간을 상당히 조망하는데 그에 상응하는 미학이 충분하긴 하다.

볼록볼록한 도시와 다시 볼록볼록한 섬마을. 바다. 논길. 언덕길과 구불구불한 찻길.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다. 

그것만 보는 것도 기분을 젖어들게 만드는 것이 있다. 하물며 1995년도라면 전 세계가 이렇게까지 인터넷으로 엮이지 않았으니 오리엔탈리즘을 일으키기 충분한 풍광이었을지도.


원작이 있었다고 하니 어디까지가 원작이고 각색인지 모르겠지만, 

남편보다 여자가 좀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시대적 상식이 달라서 이겠지…?


<태풍이 지나가고> (2016,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를 보고 나서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란 에세이를 읽고 있다.

히로카즈 감독도 작가로서의 고민과 흥행 작품을 해야만 하는 비즈니스 사이에서 고민을 해왔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디나 비슷한 감독들의 고민이랄까. 그리고 신기하게도 영화 산업구조 안에서 감독이 제일 가난한 축에 든다.  몇몇 네임드 감독을 제외하고.

영화 산업계에서 감독이 남의 돈으로 투자를 받아 계약할 때 감독은 어느정도 입찰경쟁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히로카즈 감독은 봉준호 감독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20년 전에 자기가 운이 좋아서 두 번째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그리고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운이 좋은 감독이라고. 

셀린 시아마 감독은 얼마 전에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 자유가 좀 더 생겼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쁘띠 마망>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쁘띠마망>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좀 더 재밌었다. 

이와 비슷한 얘기가 또 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SF영화를 만들기 위해 조폭영화를 만들어야만 했다. 계약조건 때문에 억지로 만든 게 <대부> 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과 조지 루카스 감독이 그렇게 만들기 원했던 SF 영화도 완성됐다. <THX-1138>.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목조차 생소하다.  영화감독은 재능만 있어선 절대 할 수 없는 분야다. 엄청난 운도 필요하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나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흥행을 고려한 흔적이 있다. 각색도 하고 유명 배우랑 작업하며 스토리텔링에 집중한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저 세 편의 영화를 재밌게 봤다.

< 태풍이 지나가고>는 본인이 작가적 관점으로 만들고 싶어서 만든 영화라는데.. 그래서일까.. 나에겐 지루했다.  '아버지 되기’나 ‘이혼남’ 얘기가 나에게 흥미를 끄는 요소가 아니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단순히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요 며칠 히로카즈의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30년간 끌고 온 그를 지탱해 온 굵은 테마는 ‘아버지 되기’인 것 같다. 다만 다른 작품에서는 ‘부모 되기’, ‘가족 되기’, ‘언니 되기’ 등 이렇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던 듯하다. (이런 게 대중성인가..?)  <태풍이 지나가고> 이 작품은 오롯이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그럴 자세가 안돼 있는 남자' 얘기라 못 따라간 것 같다.

그렇다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왜 재밌게 봤을까? 그 작품은, ‘신생아가 뒤바뀐 후 6년 뒤에 내 아이가 아닌 걸 알게 되었다면?’이라는 사건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사건에 휩쓸려서 인물을 탐구했던 것 같다. 전형적 대중영화의 끔찍한 사건적 콘셉트로 시작됐지만 점점 인물에게로만 집중한다. 


히로카즈 감독이 대단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업적 연출, 작가적 연출, 다큐멘터리, 방송 드라마 등. 하다 보면 더 실력이 느니까, 더 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환상의 빛>은 어딘가 강박이 강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 나머지를 다 못 본 것 같았다면, 점점 노련해지고 있는 느낌은 확실하다. 특히 <어느 가족>을 보면 이게 극인지 다큐인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배우들과의 케미...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놀라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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