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공포를 먹고 자라는 것들
‘비바리움’은 관찰, 연구를 목적으로 테라리엄 속에 소동물을 함께 넣어 감상하는 원예 활동을 뜻하는데, 라틴어 원래 의미는 '삶의 공간'이다. (출처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오프닝에서 뻐꾸기 새끼가 다른 종의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내고 입을 쩍쩍 벌린다. 다른 새 어미는 자기 새낀 줄 알고 먹이를 물어다 준다.
설마… 이게 이 영화 내용의 전부일 줄이야..
만약에 이 오프닝을 삭제했었다면 영화를 좀 더 풍부하게 읽을 여지가 있었는데.. 오히려 이 점이 안타깝다.
젊은 두 남녀가 집을 구하러 와서 ‘아이를 길러라’라는 미션을 받고, 인간보다 빠른 성장을 하는 괴생명체 혹은 AI 같은 아이와 같이 사는 모습은 ‘부모 되기’의 고통을 은유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부모 되기. 양육과정에서 인간은 아이라는 괴생명체 혹은 외계인과 공존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중간지점에서 부모가 이 괴생명체를 다른 종족의 자식 같다고 하는 모습은 입양해서 키운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두려움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버지 역할의 남자는 이 아이를 아이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그것’이라고 부르고 죽이려 까지 한다. 그 아이가 너무 소리를 질러대고, 말을 안 들으므로. 엄마는 그 종족이 점점 사람으로 느껴져서, 진짜 엄마처럼 대한다. 마지막에 엄마 역할의 여자가 성인이 된 괴생명체를 죽이려 하자, 오프닝 씬에 나오는 뻐꾸기 새끼였다는 실체를 보여준다.
내용이 이해 가능한 수준이라 좋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영화는 생각의 폭을 열어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물론, 북유럽 정서가 나와 딱히 맞지 않아서 일수도…. 아냐.. 북유럽 문제가 아닐 것 같다. <렛 미인> 은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너무 좋았었으니까.
내가 처음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체 뭔데 저렇게 열광하는지 궁금해서다. 대중성 없는 내가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빠져있는지 체감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재미로 사 보기 시작했다. 처음 한 동안은 게임하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다. 모바일 게임 같았다. 그리고 두 달 정도 동안, 나는 계속 손실만 보고 있었다.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주식 시장이나 그날그날의 종목보다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 읽지 못했던 경제 신문을 읽을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이 좋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 (예를 들면 반도체나 2차 전지 등 )을 친절한 유튜버와 증권맨들이 칠판에 그려가며 설명해 주는 게 좋았다.
그리고, 차츰 나는 주식시장은 (자본주의로 이뤄진) 이 세계가 망할 때 가장 마지막에 망할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된다. 사실 이 믿음은 옛날부터 있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주식을 언젠가 꼭 사보고 싶긴 했다.
어차피 망하면 모든 게 사라지겠지만,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보다 돈을 주식시장에 넣는 것이 이 세계의 낙관적 미래를 그리는 행위라 여겨지는 면도 있다. 요즘은 가장 마지막에 망하는 것은 주식시장의 변종처럼 탄생한 코인마켓 일지도 모르겠다만.
주식의 섹터와 종목은 사람들의 사주팔자와 기질 같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종목마다 성질이 다르고, 섹터마다 특징이 있다. 사람마다 대운이 있듯이 섹터의 순환매가 있다.
주식 시장은 변종 괴생명체와 같다.
‘공포’를 먹으면 크게 커진다. 코로나, 월가의 패닉, 브렉시트, 911 등 큰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고, 주가가 폭락하고, 바로 뒤이어 시장은 폭등해서 원래의 주가에 몇 곱절을 달린다. 이것은 <스위트 홈>의 괴물이 사람들의 욕망을 먹고 자라는 것과 같다. 이 괴물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있는 동안, 차근차근 그 공포를 씹어 삼킨다. 그리고, 서서히 소화를 시킨다. 요즘에는 이 소화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사람들이 공포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욕망의 분출’로 이어진다.
공포는 욕망과 등가교환을 하고, 사람들의 욕망이 커지는 만큼 이 괴물은 미친 듯이 커진다.
원래의 욕망 수준이 아니라, 정신이 나가서 광적인 거품이 되면 주식시장은 그 종목 자체의 실체가 중요하지 않다. 거대한 거품을 뒤집어쓴 괴물이 탄생된다.
<스위트 홈>이 흥미로운 점은, 괴물의 모습은 타자의 욕망을 따르는, 라캉의 a에 근거한 다양한 괴물 외연을 지닌다. 그래서 괴물의 외모가 단조롭지 않다. 이 얼마나 신자유주의적인가.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팔아먹으려면 이제는 좀비 하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좀비든 에일리언이든 생긴 게 똑같으면 이제 재미없는 수준이 되었다.
관객이 원하는 소문자 a를 <스위트 홈>이 채워주고 있다.
괴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고, 그 밑바닥에는 타자의 욕망을 기반으로 괴물의 외연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주식시장을 배경으로 괴물 영화나 드라마 만들 수 있을 텐데… 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