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왓 위민 원트>
일단 나는 재미가 없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면 이유가 있겠지.
내가 거슬리는 건 온갖 종류의 혐오였고. 인종혐오, 여성 혐오, 소수자 혐오 등 내가 아는 모든 게 다 들어 있는 듯했음.
데이트 강간 약을 먹고 기억이 안나는 상태에서 엄청난 일이 있었을 것 같은 정황들이 웃기고, 궁금증을 만드는데.. 그 궁금증을 해소하러 가면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인다.
마지막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사진은 별로 임팩트 없고, (나에게는) 별로 효과도 없다.
어쨌건 본편이 히트했기 때문에 2,3편이 만들어진 걸로 예측됨. 2편 3편은 별로 안 궁금하다.
2009년 감성인가.. 이것이..
2009년 영화임. 보고 나서 관람객 평점을 보니, 2014년 이후 관객들의 평점은 10점을 아우르며 다 재밌었다고 하고.. 그러나 극장 개봉 당시 평점은 낮은 듯하다.
평점과 상관없이 내 개인 흥미도는 매우 재미없었는데…
굉장히 섬세한 얘기를 할리우드 스타일로 만들어 내고, 시종일관 진지함이 재미없었는데… 사람들은 할리우드 스타일이 이해하기 쉬워서 좋았었을 수도 있겠다.
<테이크 쉘터>처럼 한 마을의 한 가족의 얘기로 더 좁혀 서스펜스와 불길함을 계속 드러냈다면 좋았겠지만, 사람들은 선명한 것을 좋아할 테니..
물론 나 역시 영화에 두세 번 나오는 스펙터클은 좋았다. 비행기 폭파와 화염, 지하철 전복 장면. 이걸 보여주려고 시나리오를 통과시켰나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제작자는 스펙터클한 장면이 나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래도 이 영화는 나중에 숫자가 많이 나온 영화로 기억할 수 있다.
<더 해프닝>은 바로 얼마 전에 봤는데도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사람들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자살한다’는 콘셉트는 이제 너무 많은 영화에서 봐서 특징이 없으면 기억을 할 수가 없다.
<버드 박스>는 '보면 죽는다'를 기억하기 때문에 보면 죽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영화 각본가의 고통을 말하는 메타 영화.
찰리 카우프만의 내면은 보통 복잡하지 않다.
어떤 면에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닿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우프만의 영화는 대박 흥행하기는 어렵다. 복잡해서. 복잡하니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맴돈다. 사실 이 영화를 일주일 전에 보다 멈췄는데.. 다시 이어서 보는데도 기억이 거의 다 난다. …(라고 믿고 있는 거겠지만)
<82년생 김지영>은 영화 시작 4분 만에 불편함이 시작돼서, 영화 1시간 지점까지 내내 불편했다. 관객에게 ‘그 불편함’을 일으키는 것이 감독의 목표였을까..? 그러나 '그 불편함'과 '감독이 의도한 불편함'은 다른 종류의 것 같다.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자.
영화가 목표로 하는 불편함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을 관객에게 인식시키려는 것이다.
내가 느꼈던 불편함은, 영화 작법적으로나 연출적으로 어긋났다고 느껴서 불편했던 것 같다.
예민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매우 예민하고 디테일한 연출이 필요하다. 관객들의 몸안으로 스며드는.
최근에 회자된 <로마>라든지 <콜미 바이 유어 네임> 등과 같은 영화들은 할리우드식 작법에 빗나가 있다. 3막 구조 안에서 프로타고니스트가 안타고니스트에 대적하여 뭔가를 성취하는 과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갈등하는 주인공의 감정을 어떻게 관객에게 링크시킬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은 프로타고니스트인 김지영이 안타고니스트인 ‘한남’들과 싸우는 전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한국의 남성들이 이 전투의 안타고니스트를 보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며, 나 역시 이 전술이 너무 선명함에 민망했다.
이런 방식의 전략을 취할 때는 차라리 코미디의 옷을 입히는 것이 쉬운 선택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왓 위민 원트>는 훌륭한 전략이 된다. 벌써 20년 전의 영화라는 걸 생각하니.. 감독이 현재 70세인 걸 감안하면 감독 나이 50세에 나온 영화이다.
이 작품이 그녀의 최전성기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녀는 남성 중심의 사회와 영화계, 광고계 및 자본주의 사회가 너무 싫었던 것 같다. '그 자식들에게 진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란 생각으로 임해서 말 그대로 '마초남에게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면?'이란 설정을 입힌다. 거기에 로맨스 코미디의 옷을 입혔다. 관객들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라는 설정을 재미 요소로 취하고, 두 남녀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란 로맨틱 코미디 문법을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감독과 작가가 추구한 것은 설정 그 자체이다. 설정이 주제가 된다.
나아가서 <겟 아웃>을 본다면, 설정은 ‘백인 여자 친구의 집에 방문했는데 자꾸 묘하게 기분 나쁜 이상한 일이 생긴다.' 이것은 흑인들에게 벌어지는 현 상황을 말하는 주제다.
<스탭 포드 와이브스>를 보면 설정은 ‘이 마을의 여자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남성들이 자신의 부인들을 순종적인 로봇으로 바꿨기 때문에. 6,70년대 미국에서 나올 법한 영화이다.
‘마초남에게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설정이 바로 주제와 연결되는데… 그것이 재미 포인트가 된다.
설정이 재미 포인트가 될 것. 그리고, 그 재미 포인트는 주제와 직결된다.
하지만, 관객들은 주인공의 목표에 정신이 팔리기 때문에 주제와 설정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관객에게 묻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