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서사
'<본 아이덴티티> 보고 따라 했나?'라는 생각이 스쳐감.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력은 상당히 상업성이 있다. 혼을 쏙 빼놓는다. 한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런 연출 방식이 이처럼 무거운 아이템과 주제에 어울리는가 의문이 들긴 한다. 말하고 싶은 주제의 무게에 비해 연출 도구들이 어딘가 가벼워서 균형감이 적절히 실리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일부러 다른 톤으로 무게감을 줄여내어 상업성을 갖추려는 의도가 보이기도 한다. <쉰들러 리스트>를 봤을 때는 이렇게 까지 연출이 튄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분쟁 얘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의 소재가 됐다.
현재 시점에 봐서일 수 있지만, 너무 특별하지 않은 얘기를 가볍게 다뤄내서.. 크게 감정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면 스필버그 감독이 유태인의 정체성으로 풀어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일까. <쉰들러 리스트>도 그렇고 너무 무겁게 다가가야 하는 것들은 스필버그 특유의 통통 튀는 흡입력 있는 연출과 균형감을 갖기 어렵다.
얼마 전에 다시 본 <그을린 사랑>은 너무 좋았었다. 그에 어울리는 연출 방식과 구성 방식이 좋았다. 어찌 보면 <뮌헨>과 비슷한 소재와 비슷한 주제이다. 끊이지 않는 복수가 얼마나 사람들의 실체적 삶을 파괴하고 보여준다. 끊이지 않는 복수의 연쇄 고리. <그을린 사랑>은 어찌 보면 선정적일 수 있지만 관객에게 전쟁의 상흔과 참상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에 비해 <뮌헨>을 볼 때는 에릭 바나 배우가 몸이 좋다는 것이 주로 보인다.
FBI 여성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암살자가 진정한 주인공이다. 처음에 주인공의 조력자처럼 등장해서 나중에 안타고니스트로 끝난다. 예전에 이 영화가 재미없다고 생각한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었다.
내가 FBI와 CIA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고/
주인공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당하는 위치에 있고/
주적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서 좀 더 독특한 재미를 느낀다.
마지막에 마약 카르텔의 수장을 만났지만, 그를 죽이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숨겨진 마약 카르텔의 보스를 찾아내는 게 CIA의 목표지만, CIA가 공식적으로 뭔가를 할 수가 없다. 마약 보스를 제거하는 자는 멕시코의 전 검사 출신으로 마약 보스에게 가족들을 제거당한 남자이다. 그 남자의 사적 복수 서사가 된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늑대들의 세계에 정의 따윈 존재할 수 없다'로 볼 수 있다.
그것을 말하려 초반에 아주 끔찍하게 사체들이 등장한다. 벽 속에 시체를 나란히 세워서 시멘트를 발라버렸다던가, 도시 한 복판에 시체들을 주루룩 공중에 걸어둔다든가. 여자 FBI 형사의 초반 대담성은 영화 뒤편에 가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돼버린다.
드니 빌뇌브의 끔찍한 것을 아름답게 그릴 줄 아는 변태적 연출은 너무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