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 발췌
- 추리 소설의 기본구조는 범죄와 수수께끼다.
- 왓슨은 우리 마음에서 저 뒤에 모든 걸 아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빼앗거나 그 사실을 잊게 하는 핵심 역할도 맡는다.
- 홈스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 마음속에는 자각하지 못하는 다수의 가설이 있다. 한 가지 가설은 이렇다. ‘왓슨의 판단을 완전히 믿을 수 없어. 스스로 생각해야 해. 최대한 홈즈의 추리 방식으로.’ 동시에 우리는 다시 가정한다. 홈스는 이렇게 생각할 리 없다든가….. 우리는 홈스와 왓슨의 사이에서 서서 한편으로는 홈스를 숭배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가 적어도 왓슨처럼 바보는 아니라며 몰래 자축한다.
- 일류 작품만 읽으면 안 된다. … (이류 작품은) 작가가 일부러 핵심 증거를 말하지 않았거나 사실의 일부를 왜곡해서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하자. 작가는 독자가 결론을 알아맞히지 못하도록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는 독자가에게 열고 싶지 않은 문을 열게 함으로써 작가가 이야기의 창조자이며 이야기를 짓고 싶은 대로 지을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여다보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독자는 추리로 수수께끼를 푼다는 즐거움을 얻기는커녕 극도의 불쾌감과 불만을 품게 된다.
- 좋은 추리소설에는 반드시 엄격한 서사 규칙이 있다. 작가에게는 일정한 서술 제한이 있어야 하고 독자와 그 제한을 준수한다는 암묵적인 협정을 맺음으로써 신임을 얻는다.
- 멋진 의혹과 추리 수법으로 마쓰모토 세이초는 수많은 독자를 끌어들였지만, 추리는 애초부터 그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추리를 미끼로 삼아 이후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엄숙한 사회 메시지를 전하고 독자에게 ‘정의’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사고하도록 요청하고 심지어 강요했다.
- 세이초 혁명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이런 동기로 이런 죄를 지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보시겠으며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에서 범죄 동기는 범죄 사실과 똑같이 중요하며 심지어 범죄사실보다 더 중요하기도 하다. 추리에는 추측과 조사가 필요하고, 그에 따라 범죄 사건의 경과뿐 아니라 범인이 누구고 어떤 수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조사에서 도망치는지, 더욱 중요하게는 범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추론해 내야 한다.
- ‘세이초 혁명’의 핵심 의미는 이렇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인이 전쟁 후 느낀 가치관의 혼란을 변화시켰고, 일이십 년간 새 세대의 정의관을 다시 세웠다.
- 그 사람은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본격파 추리소설의 의혹은 ‘누가 범인인가’, ‘누가 했는가’, ‘어떻게 했는가’ 같은 문제로 걸린다.
사회파는 ‘이 사람이 어째서 살인을 하게 되었는가’ ‘ 왜 꼭 살인을 해야 했는가’ ‘어째서 이런 수단으로 살인을 했는가’… 일단 사건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고 나면, 범인을 대하고 처벌하는 방법이 바뀔 수 있을까?
- 나는 범인을 동정하는가? 나는 범인을 동정해야 하는가? 범인을 동정하는 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내게 범인을 처벌한 권리가 있다면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 본격파에서 범인을 찾으면 범인은 그저 범인일 뿐이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범인을 찾는 일은 ‘이 사람은 어떻게 범인이 되었는가?’라는 또 다른 의혹의 시작이다.
# 국민 작가에 관해
국민작가는 그 시대의 일본 사회에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수립한다.
‘모방범'은 전통 일본 사회에는 없었던 ‘거품 경제’ 이후에야 나타난 새로운 현상, 전혀 다른 정신 상태에 대해 말한다.
- 미야베 이유키가 이룬 최대 공헌과 성과가 숨어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원칙에 따른’ 추리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는 단 한 가지 의혹만 있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모방범’의 제1부, 제2부, 제3부는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의혹을 드러내 보여준다.
제1부는 전통적인 수수께끼와 의혹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누구인가’..’ 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제2부의 시작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할 사이도 없이 의혹이 해결돼 버린다. 범인은 구리하시 히로미와 피스다. 2부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그들이 어째서 그렇게 했는지를 제1부에 서술된 갖가지 이상 현상과 범죄 행위와 대조해 설명한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삶에서 이 사건의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당연하게 제3부를 읽는 동기이자 제3부가 존재하는 튼튼한 바탕이다.
제3부의 의혹은 우리의 독서에 던지는 시험이다. 즉 정의에 대한 의혹이다... 우리는 나중에 정의가 실현되는지에 관심이 있다.
- 미야베 미유키는 두 갈래의 인물을 그린다.
한 갈래는 피해자 가족으로 구성되고, 다른 한 갈래는 가해자의 가족이다.
-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주인공이 없다는 뜻과 같다. 추리하는 주인공이 없는 소설.
- 소설의 기교는 표현이나 묘사뿐 아니라 독자의 반응, 즉 독자가 누구에게 이입할지, 누구를 반대할지, 누구를 탓하고 이해할지를 예상하고 조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