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윈저 왕실 가문의 모습을 다루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어느 숨 막힌 시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미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녀가 찰스 왕세자와 어떤 관계를 거쳐 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 아마 영국 등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런 연출 문법이라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누군지 모르는 관객이라면 이런 연출법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주인공 다이애나를 중심으로 한 타이트한 샷은 그의 불안한 정신상태를 묘사하고, 자니 그린우드의 불협적 현악 하모니는 그녀의 숨 막히는 심리와 정신적 교란 상태를 잘 표현한다.
얼핏 이 작품은 뮤직비디오 같은 지점이 있다.
초반에 군인들이 등장하고, 바닥에 누인 꿩을 밟을 듯 밟을 듯 비껴가는 차바퀴들. 너무나 선명하게 꿩에 빗댄 자신의 처지를 되새기는 다이애나의 내면 심리다.
이야기의 메인 플롯이 크리스마스 시즌 3일 동안 윈저 왕가에서 살아남는 미션이라면, 서브플롯은 윈저 별장에 붙어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집에 들어가 자신의 자아와 대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 자아는 앤불린의 모습과 겹쳐지기도 하고, 성인인 현재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지점이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집에 들어가려고 할 때마다 가로막히고 들켜서 방해를 받지만, 결국 폐가의 집에 도착한다. 그 집의 계단에서 자살하려고 할 때 앤 불린(이자 자신)이 자신을 구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냥을 나가 있는 아들들을 구해 도시로 향한다.
다이애나의 심리를 중심으로 구성된 샷 사이즈와 렌즈 선택이 <더 페이버릿>과는 대조적이다.
본 작품의 복도 장면은 그녀를 가둬놓는 이중 프레임 같은 느낌이라면, < 더 페이버릿>은 광각렌즈로 왜곡되어 펼쳐진 휑하면서도 끝없는 미로 같은 공간이다.
영국 왕실 가문을 다룬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면, 역사적 정보를 전달하거나 스캔들 중심으로 다룬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이 시리즈는 관점이 좀 독특하다.
윈저 가문이 매 위기 때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매 에피소드마다 윈저 가문을 위협하는 캐릭터가 하나씩 등장한다. 그러나 결국 윈저 가문은 어떻게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와 살아남았는지 보여준다.
윈저 가문이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은 것도 처음 알았고, 그 시초가 조지 5세이고 그때가 1917년 1차 세계대전 중이라는 것도 신선한 사실이다. 독일계 출신인 조지 5세가 국제적 혁명 분위기에서 군주제를 없애고 싶어 하는 유럽 시민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독일 정서를 일으키지 않는 성 Family name을 찾다가 ‘윈저’에 도달하였다.
그 윈저가 대영제국을 상징하는 ‘빅토리아 여왕’의 성이기 때문에, 정말 그 가문인 줄 착각하게 만들기 좋은 지점이 있다.
세계 최초로 왕실 기록보관소를 촬영하여 과거 왕족들이 서로 어떤 내용의 서신을 주고받았는지 공개되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내가 아는 필립 공이 현 엘리자베스 여왕 남편을 넘어, 얼마나 마초적이고 야심가였는지,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인 버티가 왕이 되고 나서 자신의 피를 이어나가기 위해 왕좌를 내어준 형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현 찰스 왕세자가 몇십 년 동안 얼마나 셀럽으로 인기를 이어가면서 엄마 엘리자베스 여왕과 다른 정치력을 갖추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윈저 가문을 위협하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를 윈저 가문이 어떻게 잘라버리는지.
이 모든 것은 마치 ‘윈저’라는 생명체의 살아남는 긴 여정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 시리즈의 다음 시즌에는 윌리엄과 해리 왕손 얘기도 나오겠지? 대체 언제 나오는 것인가…ㅜㅜ
해리가 다음 에피소드의 윈저 적대자인가..? 아님 매건 마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