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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Nee Jan 24. 2022

2021년 6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210630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20, 셀린 시아마 감독)

감상한 지 2주가 넘어서 느낌이 많이 날아갔지만..

카메라 워킹이 화려하지 않아서 지루한 인상도 있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강점이 있다. 은유와 상징적 연출이 많아서일 수도 있다.

이상하게 인상적인 것은 엘로이즈의 엄마다. 그녀는 마리안느에게 자신이 도착하기 전에 초상화가 먼저 이 집에 와있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을 토대로 추정해보면, 그녀는 이태리의 밀라노, 그 패션과 문화의 중심지에서 이 섬마을 깡촌으로 시집을 온 것이다. 여기서 얼마나 외로웠으면, 자신의 딸을 밀라노에 보내어 문화를 향유하게 하겠다고, 자신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지금까지 버텨냈을까.  

하지만, 그녀는 딸 엘로이즈의 고향이 이곳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엘로이즈는 고향에서 버티고 싶다. 밀라노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생각이 좁을 수도 있지만, 그녀는 남편의 아내가 되어서 속박되느니 수녀로 살기를 원한다.

‘평등’이란 키워드를 강박적으로 지켜내기 위해 눈높이 아이레벨을 유지하고.

두 주인공들의 키도 같고. 시선을 주고받을 때도, 누구 한 명이 시선의 주도권을 갖는다.

에우리디케의 신화에서 에우리디케가 남편보다 주도권을 갖고 ‘뒤돌아봐!’란 말을 해서 남편 오르페우스가 돌아봤다고 해석한다. 가부장적 세계가 파멸될지언정 에우리디케가 주도권을 가졌다는 것은 상당히 전복적이다. 그래서 영화의 끝부분에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에게 ‘뒤돌아봐’라는 말을 했을 때, 엘로이즈는 결혼식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하얀 소복(?) 같다. 신기하게도 진짜 한국 전통 소복의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는 전통혼례 때 화려한 색상을 입는 반면, 상복이 하얗다. 영화 간간히 마리안느의 환상 속 엘로이즈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는 것이 섬뜩한 것은 결혼을 상징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둘의 마음이 정확히 교감되는 순간은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을 통해 표현된다.

여름은 사계에서도 가장 파워풀한 부분이고, 그중에서 3악장은 한여름 폭풍이 밀어닥침을 연상시킨다.

그녀들의 사랑은 한여름 폭풍같이 밀어 치는 감정과 같다. 마리안느의 연주는 중간에서 끊어지고 나머지는 밀라노에 가서 직접 들으라고 한다.

그리고 엘로이즈는 영화 마지막에 밀라노에서 3악장의 뒷부분을 모두 들으며 눈물을 쏟아낸다.

낙태를 하는 공간에 어린아이가 있고, 그 아이의 손을 잡으며 고통을 참는 하녀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것이 실제 삶의 재현이다. 이런 부분은 다큐적으로 느껴진다. 역사 속에서 여성의 출산과 낙태, 육아는 여성 홀로 그렇게 감당했을 것이라는 표현을 한 컷으로 살려냈다.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을..



추가로 20211008)

2000년대 프랑스 영화들을 찾아보면서 Adele Haenel 배우 관련한 유튜브 인터뷰들을 찾아봤다. 대부분 ‘타여초’의 인터뷰로 겹쳐지는데 TIFF  상영 후 무대 인터뷰가 상당히 재밌다.

일단 아델의 자유로운 몸 움직임. 건들거리는 그녀의 태도가 자연스럽고, 질문의 내용과 대답이 재밌었다.


셀린 감독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집중했던 것은 ‘patience’라고 한다. 참는다는 것. 여기서 두 여성은 그들이 서로에 대한 갈증을 참지만, 내면적으로 'impatience'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비발디의 summer가 그것을 은유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감독은 이 영화는 Desire에 대한 영화라고 한다.

아티스트 되기를 향한 욕망과 서로를 향한 욕망.

아델의 연기 방법에 대해 물었을 때, 그녀는 from  being objective to  being subjective in the someone’s point of view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의 layer를 찾았다고.  그녀 스스로 자신을 아티스트이자 콜러보레이터라 칭한 이유를 너무 잘 알 것 같다.

그리고 주연 배우 둘이 영화 리허설 때 만나서 서로의 gaze를 스스로 찾았다고. 그건 진심이었다고 말한다.

이 둘이 gaze를 말하면서 서로를 바라볼 때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리고 사이가 상당히 좋아 보인다.  이 영화 상영 후 인터뷰 영상들을 보면 상당히 편안해 보이고 서로를 신뢰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델의 다른 영화 시상식 인터뷰 영상들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정말로 한 때 사랑에 빠졌다가 그 시간을 지나 온 두 배우와 감독과 크루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아델이 셀린 감독과 한때 사랑하는 관계였다가 그 시간을 지나온 후 신뢰로 이 작품을 같이 한 것과 비슷한 인상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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