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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Nee Jan 05. 2022

21년 10월 <기적>

21년도의 멜로영화란 뭘까?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고인물은 썩는다?

<기적>  (2021, 이장훈 감독, 메가박스 극장)

이제 멜로 영화를 예전처럼 정공법으로만 구성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모두가 분열적이기 때문에 분열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서스펜스 + 로맨스 + 귀신 판타지가 뒤섞인 이 영화는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저 세 가지를 다 갖추고나서, 결국은 ‘아버지-아들’의 사랑을 중심으로 끝내려다 보니, 임윤아와 박정민의 러브라인이 힘이 빠질 수 밖에. 윤아배우가 초반에 재미를 다 끌어줬는데 소비되면서 끝나버린 인상이다.

이 영화는 젠더적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구시대적이긴 하다.

소년의 성장을 위해, 여자가 셋이나 죽는다. 엄마, 누나, 여친(은 상징적으로).

결국 세 여자를 죽이고 화해는 아버지와 하다니…

그럼에도, 보는 내내 박정민이 잘되길 바라는 나와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이 정도 만들면 진짜 잘한거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86년을 배경으로, 1970년대 생들의 러브라인을 깔고, 2021년도의 관객들을 끌여들이는 방법은 쉽지 않아 보인다.

70년대 생들의 첫사랑을 정공법으로 구성했다면, 지금의 관객들은 오글거려서 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첫사랑 문법을 여자인 라희가 먼저 움직이는 방식으로 해서 21년 관객들을 잡는 것은 성공적이다. 그런데 ‘뮤즈’라니… 너의 성공을 푸쉬하고 보필하는 역할이라… 감독님이 귀신과 같이 아직 70년대 갇혀있어서 ..? 하긴 그래야 성립가능한 스토리이긴 한데.. 관객인 나는 라희라는 여성을 자꾸만 현 시점의 관점으로 보게될 수 밖에.

그리고, 뮤즈가 둘이나 되어야 했을까..


뮤즈 얘기가 나와서, 어제 밤에 <워터 릴리스> (셀린 시아마 감독, 2007)를 보고 아델 에넬의 인터뷰를 찾아보던 중, 어느 질문자의  ‘뮤즈’란 단어에 답하는 그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TIFF 영화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상영 후 GV시간이었던 것 같다. 관객 중 한명이 감독에게 '아델이 감독의 뮤즈인가? 콜라보레이터인가?' 류의 질문을 했는지 ( 마이크가 없어서 관객의 질문은 들을 수 없다.) .. 대뜸 아델 배우가 나는 항상 ‘collaboator’였다고 한다.  

감독의 덧붙인 얘기는, 18세기에 항상 여성들은 협력자로 일을 해왔어도 ‘아름다움’으로 그녀의 노력과 성과를 다 덮어 버리는 말이 ‘뮤즈’인 것 같다고. 상당히 흥미로운 얘기였다.

감독과 아델의 태도와 인터뷰가 흥미로워 이것 저것 찾아보니, 그녀들은 스스로를 분명히 아티스트로 정체화하고 있다. 그래서 매번의 작업, 특히 컨템포레리 아트로서 영화를 선택하고 수행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작업은 아트였고, 그 연속선상에서 작업방식이 창작된다.

그렇기에 세자르 영화제 시상식에서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고, 인터뷰 내내 평소하던 대로 건들거리고, 태도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일 수도 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료 아티스트들이 있을때만 느낄수 있는 안정감과 힘, 자신감.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에게는 …누가 있는가.

물론 저들도 겉보기에만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각개전투의 시간이 길면 누구에도 좋지 않은 것 같다.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작업에게도.


또 다른 차원에서 ..아델같은 배우랑은 작업을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루 하루 기가 빨릴까? 아니면 신이나고 재밌을까? 그런 경험은 어떨까 궁금하다.  

프랑스 배우라 다른 느낌인 걸까? 한국에도 아델같은 배우들이 분명히 많은 것 같다. 어떤 삶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될 수 있을까?

고인 썩는다. 고인 물은 썩는다.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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