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I love my job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원 Jun 27. 2021

나만 기분나빠? 어, 너두?

망망대해와 같은 회사에서 만나는 감정의 동반자

회사는 망망대해다. 하해와 같은 회사 속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행운이 따라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만나면 좋겠지만 우리네 삶에 그런 행운은 쉽게 오지 않는다. 대체 왜 저런 사람과 같은 팀에 묶였을까, 저 사람을 회사 밖에서 만난다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 일이라는 핑계로 엮이곤 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알고 있다. 그래서 망망대해 속 한 마리 멸치 같은 나는 비슷하게 상어를 무서워하고, 플랑크톤을 좋아하는 또 다른 멸치를 찾는다. 그렇게 함께 잘 버텨간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찾을 때 주로 따지는 요소는 ‘같은 공기’를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잘생긴 거래처 사람이 왔을 때 재빨리 메신저 창을 켠다던가, 본인의 연인을 폄하하는 얘기를 너무도 자랑스럽게 하는 팀장을 보고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치는 사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를 파악하는 사람이 바로 같은 공기를 읽는 사람이다. 이렇게 같은 처지의 멸치를 찾았을 때, 외로운 망망대해를 버티는 힘이 생겨난다.


K는 내게 감정의 동반자 같은 사람이었다. 제 손으로는 결재판에 볼펜 하나도 끼워놓지 않는 팀장과 얘기를 하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분명 나랑 같은 직급인데 자꾸 상위에서 상황을 지휘하려 하는 사람과 부딪힐 때 K는 흥분한 나를 데리고 회의실에 들어갔다. 붉으락푸르락하는 나를 진정시키고 본인도 역시 기분이 상했다며 이해해줬다. 행여나 내가 멘탈이 좋지 않던 날엔 오늘 일은 화낼 일이 아니라며, 지금 화를 내면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나를 다잡아 주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화를 낸 일이 몇 번 있었고 K는 우려스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결국 내 별명은 말티즈가 됐다. 말티즈는 참지 않으니까.

K가 붙여 준 별명, 말티즈... 말티즈도 하루에 두 번은 참을 거라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공기가 바뀌는 사무실에서 내가 감정의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요동칠 때 K는 이성을 잃지 않고 나를 붙잡아줬다. K는 ‘요즘 애들’ 답지 않게 이성적이고 침착해서, 나는 나이와 경력에 비해 가볍고 감정적이라서 우리는 서른 살 언저리에서 만났다. 함께 같은 부서에서 일한 2년 반 동안 서로의 업무를 고민하고 여러 차례 공동 업무를 해치웠다. 그렇게 차근차근 호흡을 맞추며 업무와 개인적인 계획을 공유했다. K는 회사에서 만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동반자였다.


지난봄, 감정의 동반자 K는 고향으로 떠났다. 소모적인 회사에서의 삶에 대해 고민한 바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귀향을 응원했다. K는 마지막까지 하던 일을 마무리했으며 그 책임감을 보고 다시 한번 K에게 배웠다. 물론 배운 책임감을 실현으로 잘 옮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K는 편지를 건네며 ‘우리의 인연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다소 비관적인 나는 지금은 영원할 것 같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 관계는 소원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말티즈처럼 그른 선택을 했던 그때와 같이 이번에도 현명한 K가 옳기를 바란다. 회사라는 망망대해 속 감정을 공유했던 K와의 인연이 계속되도록 진심을 다해 보겠다. 결국 내 판단이 틀리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계획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소박하리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