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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원 May 22. 2020

세상에서 제일 예쁜 다홍... 떡볶이

떡볶이를 찾는 순간

아차산역 신토불이떡볶이 : 1인 1핫도그에 만두 추가는 필수


나는 생각보다 폐쇄적이다. 혼자의 시간이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다. MBTI 검사 시 ISTJ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들 통해 에너지를 얻는 부류가 있다면, 나는 반대에 가깝다. 평일 간 회사 사람들과 부대끼며 에너지를 쓰고 주말에 혼자 우두커니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서 월요병도 없다. 주말 간 풀로 충전한 에너지를 월요일부터 야금야금 쓰면, 목요일쯤 거의 산 송장으로 출근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수요일의 기획안이 가장 좋다. 주말의 싱싱한 에너지를 집약한 기획안. 그런데 팀장이 목요일에 일을 시킨다. 불행의 서막이다. 자료를 서치하고 개요를 짜고 기획을 한다. 최소한 두 가지 안은 있어야 하니 내가 하고 싶은 안과 그냥저냥 무난한 안을 만들어 금요일쯤 들고 간다. 팀장은 이틀간 고작 이거 했냐고 타박을 준다. "팀장님이 월요일에 시켰으면 좋았을걸요?"란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꾹 참는다. 팀장한테 깨진 금요일 오후, 팀원들은 나의 등을 쓸어내리며 위로하지만 사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냥 빨리 집에 가서 맵고 짠 떡볶이를 먹고 싶다. 떡볶이를 먹고 12시간쯤 자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짠 양념과 함께 팀장의 타박도 같이 흡수했는지 퉁퉁 부어있지만, 그의 마음도 십분 이해하게 된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고 팀장이 내 몸의 바이오리듬을 알 리가 없으니 당연한 타박이었으리라.


팀장이 팀원 누구에게라도 싫은 소리를 하면 나는 그 팀원을 데리고 또보겠지 떡볶이에 간다. 라면사리를 추가한 떡볶이에 버터갈릭 감자튀김을 먹고 밥도 볶아 먹는다. "형환씨가 이해해, 팀장님이 은선씨 잘되라고 하는 얘기일 거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친구들에게도 그랬다. 이별을 한 친구와는 아차산역의 신토불이 떡볶이와 핫도그를 먹으며 함께 땀을 흘렸다. 실연의 이유나 이별의 아픔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당사자에게 어떻게 닿을지 모르는 얘기를 하는 건 늘 조심스럽다. 그만큼 내가 사람을 대하는데 서툰 초보라는 방증이겠지.


사람을 대하고 위로를 주고받는 일은 쉬운 적이 없었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잊어버려야 하는 폐쇄적인 성격 탓이다. 나도 인간관계에 능숙하고 한 마디 말로도 천 냥의 위로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지만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늘 서툴 것만 같다. 그래서 항상 떡볶이로 위로를 대신하곤 한다. 거의 매주 떡볶이를 먹기에 다이어트는 매번 실패하지만 위로가 필요한 누구든 이 맵고 짠 밀가루와 함께 슬픈 일을 떨쳐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떡볶이는 입에도 댈 것 같지 않은 어떤 배우의 대사를 빌리며 이 글을 마친다. 나의 다이어트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 나의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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