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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부터 안전하게 집 꾸미기

공습경보가 울렸을 때, 나는 20층에 있었다

by 이워너

공동주택은 기본적으로 화재에 취약하다. 여러 세대가 각각 벽이나 천장 하나를 경계로 조밀하게 붙어있다. 각 세대 내부에서는 주방에서 화기를 다루며, 소비전력이 큰 전열기구를 사용한다. 연소에 의한 것이든 전기 합선에 의한 것이든 언제 화재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연료, 의류, 침구류, 가구 등 불에 타기 좋은 재료들을 상비하고 있다. 불꽃이 옮겨 붙어 화재가 커지기 쉬운 환경이다. 한번 화재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확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공동주택에는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 로 [건축법]과 [건축물의 피난ㆍ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해당 규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건축물의 구조체는 화재 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벌어줘야 하는지, 불길을 막는 방화문은 어떤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이 법과 기술 기준 등으로 촘촘하게 엮여있다. 이 규정들이 잘 지켜진 건축물은 화재 시에도 꽤 안전하다. 2025년 1월에 발생한 분당 야탑동 복합상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 중인 시간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잘 닫혀있던 방화문, 배연설비와 스프링클러의 적절한 작동만으로도 큰 인명 피해 없이 화재가 진압되었다.


그렇다면 아파트에는 어떤 화재 예방 조치가 되어있을까? 우선 이 글이 전제하는 2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에 대해서는 1992년부터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었다. 또한 각 세대의 현관문은 2시간 이상 불길을 막을 수 있는 방화문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또한 각 세대는 방화구획으로 나뉘어 불길이 번지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하지만 각 세대 내에서의 화재 예방 조치는 강제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부터 비상시를 대비하기 위해 이 글을 읽고 있다. 소화기 비치 같은 기본 적인 사항 외에 화재에서 안전한 집 꾸미기에 대해 알아보자.


1. 인테리어는 방염 자재로

벽지, 인테리어 필름, 커튼 등은 특수한 처리를 하지 않는 한 불에 잘 타는 소재다. 작은 불씨도 집으로 옮겨 붙으면 크게 번지게 되는 주원인이다. 특히 벽지 시공용 접착제, 우레탄 폼 단열재 등의 충진재들은 불에 더 쉽게 탄다. 따라서 인테리어 시점부터 방염성능을 인증받은 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숙박 업소나 대형 판매시설의 인테리어를 보면 벽 한가운데 [방염]이라는 작은 스티커들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커튼도 마찬가지다.



이 [방염] 스티커는 불에 잘 타지 않음을 인증받은 벽지, 필름, 패브릭, 장판 등의 인테리어 자재에 붙일 수 있다. 개인 주거 인테리어를 할 때에는 이 방염 자재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비용 문제도 있고 개인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인테리어 자재는 방염 인증을 통과한 상태일 것이다. 인테리어 자재를 선정할 때 방염 자재를 사용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의 업체에서는 제품군을 추천해 줄 것이다.


2. 목재 가구보다는 석재, 금속 가구

가정용 가구들은 대부분 원목, 합판이나 집성목으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가구들은 방염 의무 대상이 아니므로 화재에 얼마나 안전한지 알기가 어렵다. 목재 가구에도 방염처리를 하는 방법은 있다고 하지만 집에서 사용할 가구에 소량으로 처리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래도 화재로부터는 그러한 목재 가구들보다는 금속가구, 석재 가구가 안전한 편이다.


인테리어에는 패브릭도 빼놓기 어렵다. 사람의 몸이 닿는 소파, 침대는 필수적이고 바닥에도 러그를 까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에도 드물게 방염 처리가 되어있는 제품이 있지만 대부분은 불길에 취약하다. 그렇다면 그 주변이라도 불이 잘 붙지 않는 소재들로 꾸며두는 것이 안전하다. 열원을 자주 취급하는 공간이나 불이 붙기 쉬운 패브릭 가구 근처에는 가정용 소화기를 비치해 두는 것도 좋다. 이는 인테리어 자재도 마찬가지다. 가격대는 높지만 타일, 석재, 세라믹 등으로 인테리어를 한다면 화재가 번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의 맨 처음에 '공습경보 시 화장실로 대피하라'는 주장을 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타일로 마감된 화장실은 그나마 벽과 바닥이 불타는 일은 적을 것이다.


3. 발코니는 미니멀하게

많은 아파트에 있는 발코니 공간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불길을 차단하는 것이다. 보통 아파트 발코니의 폭은 1.5m이며 발코니는 외창, 내창으로 실내를 격리하고 있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불길이 위층의 실내까지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발코니에 가연성 물질이 많다면 오히려 불길을 전달하는 불쏘시개 공간이 된다. 노는 공간인 발코니에 빨래를 넌다든지, 블라인드를 단다든지 하고 싶은 게 거주자의 당연한 마음이지만 어지간하면 발코니는 깨끗하게 비워두는 게 주거 환경에도 좋고 비상시에도 안전하다.


하지만 최근의 아파트에는 한 가지 변수가 있다. 발코니 확장이 보편화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때에도 사실은 지켜야 할 규정들이 있다. 높이 900㎜ 이상의 방판을 시공하거나, 방화유리와 방화창호를 설치해야 한다. 층간의 화재 전이를 막기 위해서다. 마땅히 법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안전시설물이지만, 시공비용 때문에 혹은 시각적인 이유로 꺼려지고 있다. 내 집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꼭 시공하시기를 권해드린다.

아파트 대형 화재시마다 발코니 방화판 누락이 문제가 되고 있다.


화재에서 안전한 집 꾸미기는 지진에서 안전한 집 꾸미기와 놀랍게도 닮아있다. 벽이나 선반에 많은 물건을 놓지 않거나, 전시가 필요할 경우에는 금속제 장식장에 도어를 설치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미니멀한 인테리어가 곧 안전한 인테리어다. 머리 위로 떨어지거나 불에 붙을 수 있는 물건 자체가 없다면 그 집은 재난으로부터 꽤 안전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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