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진동으로부터 안전한 집 꾸미기

공습경보가 울렸을 때, 나는 20층에 있었다

공습경보는 해당지역에 인명살상을 위한 충격이 원거리로부터 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술적으로 보자면 아군에게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적에게 그보다 큰 손실을 입히기 위해 감행한다. 즉, 이 역시 경제성을 따질 수밖에 없고 결국은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려면 군사시설이나 주요 기간시설을 타격해야 한다. 주거지역은 유효하지 않은 타깃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주거지역이 직접적인 타깃은 아니더라도 주변의 시설이 폭발할 경우 충격파와 지진파는 고스란히 전해진다. 군에서 수류탄 폭발이나 TNT, 지뢰 위력시범을 본 경험이 있다면 그 강력함을 기억할 것이다. 단 몇 킬로그램의 TNT도 주변 수십 미터가 흔들리는 위력을 보인다. 수백 킬로그램의 미사일이라도 폭발한다면 그 주변은 지형이 바뀐다. 폭발 범위 밖에 있다 해도 강력한 진동으로 인한 피해에는 노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진동과 충격에서 안전한 집의 조건은 무엇일까?

1. 대전제: 내진설계가 된 철근콘크리트 건물

지진이 많은 일본은 흔들림에 대비하기 위해 나무로 짜 맞춰진 구조를 채택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24년 1월에 일어난 이시카와현 노토 지방 지진의 사상자 80%는 건물의 붕괴로 인해 발생하였다고 한다. 가벼운 지진에는 목구조가 경제적인 대안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진동에는 견고하고 자중이 무거운 구조체가 유리하다. 현재까지는 내진설계가 적용된 철근콘크리크 또는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 가장 유리하다고 보아도 좋다. 다행히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고층아파트 대부분에는 내진설계가 적용되어 있다.

출처: 우리집 내진설계 간편조회 서비스

당신의 아파트가 1988년 9월 이후에 건축허가를 받은 6층 이상의 아파트라면 내진설계 적용 대상이므로 일단은 안심해도 좋다. 하지만 정확한 적용 여부를 알고 싶다면 우리 집 내진설계 간편 조회 서비스 ( https://www.aurum.re.kr/KoreaEqk/SelfChkStart )를 이용해 볼 수 있다.

간편하게 주소를 입력하면 된다

해당 건축물의 인허가 일정에 따라 내진설계 여부를 손쉽게 조회할 수 있다.

본인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내진설계 대상에 해당된다면 우선은 일정 수준 따지는 주변의 충격과 진동에 구조물이 무너질 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단, 이 사이트는 설계의 적용 대상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얼마나 적용되었고 적합하게 시공되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므로 구조물에 이상징후가 있다면 신속하게 대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키 큰 가구는 벽에 고정하자

세장비라는 개념이 있다. 밑변의 길이 대비 높이가 얼마나 높은가를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다. 세장비가 클수록 길고 늘씬한 모양을 하고 있고 세장비가 작을수록 낮고 단단한 모양새다. 세장비가 작을수록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으므로 단단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도 그렇다. 무게중심의 높이가 밑변의 길이보다 짧다면 그 물체는 잘 넘어지지 않는다. 오뚝이가 그 좋은 예시다.

하지만 일상의 가구 중에 세장비가 1보다 낮은 가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의자나 식탁, 침대 외의 대부분의 수납장은 그 깊이가 보통은 30㎝ 내외다. 반면에 책상과 비슷한 높이를 위해 가구의 높이는 70㎝를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한 진동이 오면 넘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4~5단이 넘는 키 큰 책장은 지진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도 넘어져서 안전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대부분의 키 큰 가구는 벽체 고정용 L자형 금속 부품이 가구에 포함되어 있다. 한쪽은 가구에 나사로 고정하고, 다른 한쪽은 벽에 고정해서 가구의 넘어짐을 방지한다. 유사시뿐만 아니라 일상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치다.

3. 수납장에는 꼭 잠기는 문을 달자

보통의 수납장은 경첩의 힘과 가구 자재 사이의 마찰력으로 문이 닫힌 상태를 유지한다. 그 힘이 부족하다면 문 끝에 자석을 달아 가구가 닫혀있도록 한다. 하지만 다들 겪어보았듯 수납장 문을 닫아놓고 있는 힘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구가 뒤틀리거나 수납장 내부 물건이 가득 차면 문이 스스로 열리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다.

평소에도 그런데 지진이나 충격파가 오면 어떨까? 지진 CCTV를 보면 수납장 문들이 일제히 열려 펄럭거리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수납되어 있던 물건이 튀어나오며 아찔한 광경을 연출한다. 이 또한 평소부터 수납장의 한쪽 문이 잠기는 타입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한쪽 문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으면 그 반대쪽 문도 보통의 경우보다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잠기는 타입이 불편하다면 튼튼한 슬라이딩 미닫이문이 달린 수납장도 좋다. 특히 유사시 피난장소가 될 욕실 수납장에는 슬라이딩 도어가 튼튼하면서 공간도 절약된다.

4. 행거가 없는 심플한 인테리어를 추구하자

바닥과 천장, 또는 벽과 벽 사이에 압축봉을 통해 고정되는 행거 타입의 가구는 인기가 많다. 설치와 고정이 간단하고 못이 없이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렴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압축봉 행거 사용자 치고 행거가 쓰러지거나 추락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은 하중을 싣지 않더라도 내부의 스프링이 낡으면 장력을 잃고 느슨해져 가구 전체가 쓰러지고 만다. 보통 때도 그런데 유사시 압축봉 행거는 가장 믿기 어려운 가구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하루빨리 실내에서 퇴출시키시길 권한다.

요즘은 일반 수납장도 가격이 많이 떨어져 행거를 대신할 장점이 분명히 있다. 행거형 수납선반 등을 사용하고 있다면 중고마켓에서 그보다 저렴하고 튼튼한 수납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수집품을 늘어놓는 인테리어는 유사시뿐만 아니라 평소의 관리도 어렵다. 수집품이 있다면 튼튼한 수납장에 넣어서 보관하자. 특히 대피장소가 될 수 있는 욕실은 더욱 신경 써두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