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아파트에서 결국 이렇게 살아남는다.

공습경보가 울렸을 때, 나는 20층에 있었다

앞선 글에서 대한민국 상공에 공습경보가 울려 퍼지는 시나리오부터 살펴보았다. 특히 고층아파트에서 피난을 갈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어떤 장소에 어떻게 피난해야 하는 지부터 생각해 보았다. 희망적으로 5분여의 시간이 주어진다. 우선 모든 창문을 걸어 잠근다. 그리고 가스 밸브를 잠그고 전기 차단 스위치를 내린다. 창문에서 멀고 코어에 가까운 곳, 즉 욕실 가장 깊숙한 곳에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재난방송을 청취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욕실의 모든 용기에 물을 받으면서.

이때 불안하다면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는 꽤 안전하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짐을 가득 실은 1톤 트럭이 시속 100km 속도로 부딪혀도 안전하다고. 미사일에 직격 당하지 않는 이상 이 아파트의 코어는 안전하다고 말이다. 미사일들은 주요 시설을 타격하느라 바쁠 것이라고. 특히 창문만 잘 닫아뒀다면 고층아파트는 화학병기나 생물학 병기에서도 꽤 안전한 편임을 떠올려야 한다. 핵무기는 조금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머물고 있는 곳이 폭심지에서 멀고, 철근콘크리트가 두께가 30cm가 넘는다면 초기 방사능에서도 어느 정도는 안심할 수 있다.

공습경보 상황에서 절대로 발코니 피난공간으로 피난해서는 안된다. 화재 시 피난 대피공간은 외기와 접하고 소방관의 접근이 쉬운 공간에 마련된다. 이는 반대로 외부의 공격에 쉽게 노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상식적으로 결코 피난해서는 안될 공간이다. 다만 발코니 대피공간에는 수직 피난 사다리가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해당 공간은 항상 비워놓아야 한다.

공습을 대비할 때는 최소한 세 가지에 대비해야 한다. 외부에 대한 은폐와 엄폐, 폭격으로 인한 충격과 진동, 공격에 의한 화재이다. 이 세 가지는 시간이 닥쳐서는 대비할 수 없다. 건축물의 내진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 또한 수납장과 가구를 배치할 때에도 신경을 써야만 안전한 실내를 만들 수 있다.

외부로부터 안전한 집을 꾸밀 때 생각할 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1. 모든 외부 창호는 이중창호로 설치하여 단열, 기밀, 외부 충격에 대비할 것.

2. 모든 창에 암막커튼을 설치하여 내부의 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할 것.

3. 단열 또는 강화필름을 설치하여 유리창을 강화할 것.

충격과 진동에 안전한 집은 우선 구조체가 내진설계 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한국의 고층아파트들은 오래전부터 내진설계 대상이었으므로 다소 안심할 수 있다.

그 외에 생각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키 큰 가구는 별도 부품을 사용하여 벽에 고정할 것.

2. 수납장에는 슬라이딩 문을 달거나 잠글 수 있는 양개도어를 설치할 것

3. 압축봉 타입의 행거 사용을 되도록 줄일 것

화재에 대비할 경우에는 최대한 법규를 준수하면서 개별 세대의 인테리어에도 신경 써야 한다.

1. 인테리어 자재는 최대한 방염 자재로 선택할 것.

2. 석재, 금속 가구를 택하고 목재가구는 방염 여부를 확인할 것.

3. 발코니 방화판은 꼭 설치하고 불이 옮겨 붙을 수 있는 물건은 발코니에 보관하지 말 것.

앞선 내용들을 명심하면서 평소 인테리어에 안전을 신경 쓴다면 위급상황이 닥쳤을 때도 당황하지 않고 당분간 집에서 사태를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대비된 집이라 하더라도 장기간의 상황에는 대비하기 어렵다. 위급상황이 종료되면 관계기관이나 군경의 통제에 따라 지정된 대피소로 피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때는 아무리 고층이라고 하더라도 꼭 계단을 사용해 대피해야 한다. 문제는 이 부분에 있다. 정말로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이동 약자, 혹은 환자는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장기간의 농성에 평소부터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