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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머리 Oct 22. 2019

세상 끝에 선 고3의 오늘

좀 늦게 펴도 꽃인 것을~~

5시 수업이니 30분 정도 남았다.

분주하게 고등어를 프라이팬에 올려 굽고

사과와 단감을 깎아 담고

새우장과 김치, 밥까지 담는 사이,

고등어는 노릇하게 다 구워졌다.

급히 준비하느라 미처 열어두진 못한 창문들 때문에

집안이 온통 고등어 비린내로 가득하다.

집을 나서며 앞 뒤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고등어 구운 소문이 아파트 건너 동까지 날지경이다.

10여 분 만에 뚝딱 싼 도시락을 고3 딸아이에게 전하러 학교를 갔더니......

“차라리 운동을 시키지 왜 안 시켜서 날 이렇게

고생시키는데, 왜 공부하게 했는데...ㅠㅠ”


답은 간단했다.

“ 네가 공부를 잘하니까...

  다들 그렇게 면접 봤다더라 괜찮아,

  다음 면접 준비하지 뭐”

이렇게 말해주고는 얼른 돌아서 왔다.


딸은 지난 주말 보고 온 면접 때문에 많이 속상해하고 있다.

반응이 느린 성향이라 5분 만에 제시문을 읽고

답안까지 준비하기에는 내가 봐도 무리였다.

진득하게 앉아 책을 파먹는 공부법을 가진 딸의 방법에 맞지 않는 시험이었다.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답을 정리해서 말하니... 무슨 소용이야

더구나 핑계를 대자면 기존의 그래프 형식에서 지문 형식으로 바뀐 것이 더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1차 합격소식을 듣고 기쁨도 잠시 1주일 만에 면접을 준비해야 하고 그 시간만큼은 고스란히 수능 공부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 된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공부를 할수록 해야 할 분량은 늘어나고 시험날은 촉박하게 다가오고 중간중간 면접 봐가며...

허걱 허걱 그렇게 10월의 막바지에 들어섰다.


이상하게 그런데 난, 그런 딸을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그렇게 수능이 지구의 종말처럼 자신에게 다가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저 살아가는 삶의 과정 중에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나 역시 첫아이가 아니라

두 번째니 조급함이 한참이나 덜하고,

더구나 직업이 수학공부방 선생이라 수없이 지나간

제자들을 보아왔으니 대학입시가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되지 않음을 잘 안다.

나까지 딸의 조급함과 불안함을 부추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아! 왠 도시락?

여고에 다니는 딸의 학교는 여자들의 특성상 다이어트를 빙자해 저녁 급식 신청인원이 너무 적어서

아예 석식이 없어졌다.

사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집밥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기꺼이 저녁 도시락을 싸서 나르고 있는 자칭 대단한 엄마다.

힘들다 생각하면 짜증이 커지겠지만,

이렇게 도시락 싸주며 엄마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음이 딱 이때뿐이라 생각하니 이 일들과 시간들이 되려 감사해진다.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피지 않는 꽃은

없다더라....

천천히 가도 괜찮아,

엄마는 늘 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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