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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하이 김대표 May 17. 2020

부안 바닷가의 한 카페에서

초보 대표의 좌충우돌 사업 일기 - 2월 28일 금요일

  얼마 만에 여유인지 모르겠다. 비 오는 금요일. 난 전라남도 부안에 있다. 한국건축 보물찾기 촬영을 핑계로 나름의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라 해봤자 어차피 조카 보러 가는 거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발생한 혼자만의 시간은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부안의 한 카페. 오늘은 반나절 내내 비오는 바다를 향긋한 커피와 노트북, 책과 함께 바라보려한다. 책은 내가 좋아하는 미우라 시온의 신작 소설, 노트북은 내일까지 올려야 할 영상 편집용, 그리고 커피는 뭐 그냥 공기 같은. 책 한 장 읽고 바다 보고, 영상 편집 살짝 하다 바다 보고, 커피 한 모금 홀짝 하고 바다 보고. 그야말로 여유로 도배된 하루다.


  그러다 바다를 바라보는 내 눈은 초점을 잃고 시공간을 이동한다. 이번엔 며칠 전 학교 선배와의 미팅 자리로 간다. 한 학번 선배이지만 나이는 같은 선배 U는 알고 보니 사업을 하고 있었다. 투자도 받고 직원도 십 수 명 될 정도로 나름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지금 우리 이상으로 휘청이고 있다. U가 하고 있는 사업 분야는 여행이다.


  미팅의 목적은 콜라보였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 중 여행업계랑 협업해서 할 수 있는 내용이 두 개가 있었고 오랜만에 인사 겸 제안 겸 겸사겸사 만난 자리. 하지만 이내 주제는 하소연으로 변했다. 나도 U도 앓는 소리. 그런데 이게 그냥 겸손해서 잘 안 된다고 앓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발끝부터 저려오게 만드는 통증이 이내 우리를 잠식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고통에서 오는 앓는 소리였다.


  공연도 공연인데 여행은 정말 타격이 크다. 특히 U가 하는 사업은 한국으로 여행을 오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주타겟이다. 한국은 지금 절정이고, 외국도 상황이 점점 심각해진다. 지금은 그저 버티는 게 목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린 뭐라도 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의 협업은 절실하다. 공감대가 형성됐다. 물론 풀어야 할 것도 여럿 있지만 사피엔스가 세상의 지배자가 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집단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각자도생보다는 협업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U와 함께 사업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선 나도 U도 서로가 그리고 자신이 사업을 할 줄 몰랐다. 1학년 때 한 학번 위 선배니까 나름 친하게 지냈다. 밥도 여러 번 먹고. 그래도 우리가 사업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U는 또 다른 학교 선배 K와 함께 동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놀랄 노자다. 생각보다 선배들 중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시 한번 인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우린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만날지 모른다. 서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이가 되려면 언제 어디에서나 최소한 미운 털 박히지 않게 해야 한다. 감정의 호를 플러스, 불호를 마이너스의 범주에 넣었을 때 적어도 감정을 0에는 맞춰놔야 한다. 마이너스로는 가지 않게. 기본만 하면 되는데 우린 기본도 못 할 때가 많다.


  다시 부안의 한 카페로 돌아왔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린다. 빗소리가 참 좋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몇 번을 시공간을 이동한 뒤에야 난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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