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대표의 좌충우돌 사업 이야기 - 3월 19일 목요일
사람과의 관계를 보다 친밀하게 하는데 식사만한 게 없다. 특히 누군가의 집에서 먹는 식사는 더할 나위 없는 친분의 표현이다. 그만큼 핵심까지 보여주고 싶다는 것. 친해지자는 말의 다른 언어이다. 주무관들의 터전인 구청에 출입하게 된 지도 두어 달. 조셉 콘래드가 암흑의 핵심에 들어갔다면 난 오늘 구청의 핵심에 들어갔다. 구청의 핵심이 어디냐고? 난 오늘 처음으로 구내식당에 입성했다.
열심히 오전 미팅을 끝낸 뒤 찾은 구내식당은 사람으로 분주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가 해서 물어보니 오늘 유독 많은 거란다. 이유는 역시 메뉴. 학창시절이나 성인이 되어서나 똑같구나 싶다.
갑자기 주변이 일순 조용. 밥 먹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구청장님이 보인다. 구청의 다른 직원들의 얼굴은 몰라도 구청장님만큼은 안다. 구청장님이 와서 식사를 할 정도로 오늘의 메뉴는 훌륭했나보다.
식사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구청 옥상에 입성했다. 옥상에 출입하려면 비밀번호를 알아야 한다.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공간에 날 데려간다는 건 역시 친분의 표시. 8층에서 올려다 보이는 하늘과 내려다 보이는 건물숲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지금 내 눈이 이미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져있어서 일수도.
미팅과 식사를 끝내고 출차하는 길. 주무관이 준 주차권은 세 시간짜리라 시간이 초과되어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그 역시 기분 좋다. 그만큼 구청에서 우리에게 볼 일이 많아졌다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지도 못한 지출에 기분 좋긴 실로 오랜만이다.
처음 들어간 구내식당과 옥상, 그리고 예상치 못한 주차비 모두 신뢰가 축적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라 생각한다. 기분이 좋다. 그만큼 우리를 믿어간다는 거니까.
다만 조금 두렵기도 하다. 신뢰는 쌓는데 굉장한 시간과 공을 필요로 하지만 무너지는데에는 큰 노력도 긴 시간도 필요 없다. 순식간이다. 조금씩 쌓아가는 신뢰에 금이 가지 않게 이 관계에 양질의 시멘트를 발라야겠다.
조금씩 계약 이야기가 구체화되어간다. 물론 도장 찍기 전엔 언제 엎어질지 모르는 게 이 바닥의 생리이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그만큼 우리를 파트너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거니까.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