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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하이 김대표 Feb 22. 2020

해마다 투호를 던지다

감성 에세이

 방 정리를 하다가 구석에 모아둔 해 지난 다이어리들을 봤다. 20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스타벅스의 다이어리. 내 과거가 가득할 다이어리를 펼쳐보고 싶었다. 그날 뭐했는지 문장이 아닌 단어로 표시한 게 대부분이라 일기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끄적임들이 빼곡했다. 읽어보니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하나도 짐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겠지? 그때 지금의 나를 알았더라면 나는 이렇게 살고 있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2010년의 나는 꿈이 없었다. 그저 하루가 주는 즐거움에 취해 비틀거렸다. 2011년의 나는 꿈을 찾아가려 했다. 미지의 세계가 준 감동에 빚을 갚느라 허덕였다. 2012년의 나는 도전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도전에 좌충우돌했다. 2013년의 나는 아팠다. 도전이라는 달에 발을 디딘 순간 허우적거리다가 다쳤다. 몸도. 마음도. 2014년의 나는 노력했다. 디오게네스처럼 등불을 들고 돌아다녔다. 낮에도. 밤에도. 2015년의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떨어질 듯 가까스로 매달려있는 과일 아래 입을 벌리고 서있었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고, 뉴턴의 사과는 존재하지 않았다. 2016년의 나는 조급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서 오는 압박감과 아직 뭔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합해져서 이 곳 저곳을 두리번거렸다. 2017년의 나는 발이 닫지 않는 심연으로 몸을 던졌다. 지금까지는 발이 닿아서 그나마 안심이 됐지만 이젠 온전히 나의 부력과 추진력으로 버텨야 했다. 그동안 몇 번의 사랑을 했고, 몇 번의 이별을 했다. 약간의 성취감을 맛봤고, 꽤 많은 실패를 느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사이 몸은 미지근해졌다. 그렇게 뭔가 뚜렷한 게 없이 미적지근하고 흐릿흐릿한 안개를 헤쳐 나오니 2018년이 되었다. 2018년의 나는 약간의 희망을 봤다. 금전적으로는 점점 쌓여가는 적자에 버거워했지만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옴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물론 내 인생 최고의 사기꾼도 한 명 잘못 만나 뜨겁다 못해 온 몸에 화상을 입힐 정도의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그래도 새로운 도전으로 함께 하는 식구가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공격적이 되었다. 일에 있어서는 공격적으로 일을 벌였고, 관계에 있어서는 냉철함을 가장한 채 날이 선 날카로운 칼날로 나와 맺어진 모든 관계에 상처를 줬다. 공격적으로 일을 한 덕분에 성과도 많았지만 피곤함은 끝 간 데 모르고 쌓여만 갔고, 이내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체감하게 되었다. 내 인생 가장 열심히 산 두 번째 시기를 지나자 다가온 건 어감도 독특하고, 글자로 귀여운 2020년이었고,  그 2020년도 슬슬 외투를 벗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매 순간에 후회가 남고, 아쉬움이 묻어난다. 10년 동안 내가 열심히 던진 투호는 항아리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거나, 테두리를 맞고 튕겨져 나오거나, 심지어 미처 항아리에 닿지도 못하고 근처에 몸을 던져 먼지만 풀풀 남기기 일쑤였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그렇지 않은 순간보다 많았다. 다이어리 속 활자들이 말해준다. 그때 왜 그랬냐고. 지금의 나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때의 나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무수히 많은 시간들이 강남대로 인파처럼 점점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진부한 상상이지만 지금의 내 마음으로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레버를 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아졌을까? 나아졌겠지. 그런데 그런 상상은 이내 좌절의 구렁텅이로 나를 밀어 넣는다. 다이어리의 수많은 활자가 나를 보며 비웃는 듯하다. 


  그럴 수 없으니 지금을 살아간다. 그럴 수 없으니 상상을 끝내고 지금을 견딘다. 그럴 수 없으니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향해간다. 앞으로도 분명 나는 후회할 거고 아쉬워할 거다. 이제는 손 때가 조금씩 묻어나는 2020년의 다이어리를 보면서 몇 년 뒤 어느 날 다시 한번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후회와 아쉬움이 점철된 활자들의 향연에 초대되어 불안한 춤사위를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상상을 끝내고 지금을 견딜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를 향해갈 수밖에 없다.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과거가 될 오늘을 기억하고, 후회하고, 아쉬워하고, 오늘이 될 미래를 기꺼이 기다린다, 오늘도 다이어리 안에 마련된 항아리에 열심히 투호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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