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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하이 김대표 Feb 25. 2020

공연기획사에 침투한 코로나바이러스

초보대표의 좌충우돌 사업일기 - 2월 24일 월요일

  3년 가까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과 가장 슬픈 순간엔 모두 돈이 개입되어 있다. 당연 가장 기쁜 순간은 전자세금계산서가 발행됐다는 이메일이 오고 얼마 후 통장에 돈이 꽂힐 때이다. 국세청에서 오는 이메일만 받으면 올 걸 알고 있었는데도 설렌다. 또 통장의 입금 알림음은 어쩜 그렇게 경쾌한지. 반대로 당연 가장 슬픈 순간은 돈이 들어올 계획이 전면 백지화될 때이다. 물론 계획이 진행되어 일을 하고 그 대가를 당연히 받아야 하는데 돈을 줘야 하는 곳에서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슬프다기보다는 화가 나는 거고, 내 성격상 어떻게든 받아내기 때문에, 역시 가장 슬픈 순간은 돈이 홀로그램에서 실물로 변하는 형상화 과정을 거치는 도중 연기처럼 사라지는 경우이다. 그럴 때면 마치 VR기기를 꽂고 앞에 나타난 보스를 완벽하게 무너뜨리려는 찰나 배터리가 다해서 기기가 꺼졌을 때 느끼는 허무함을 가득 느끼게 된다. 배터리가 나간 VR기기는 새 배터리를 넣으면 되지만 돈이 들어올 계획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 답이 없다. 그냥 앉아서 손가락만 빨던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돈이 들어올 구멍을 찾던지 할 수밖에 없다. 난 후자를 선택했다.  


  지난 주말 신용보증재단에서 사무실로 실사를 왔고, 큰 문제가 없는 우리는 코로나19 피해 업종에 속한 피해업체로 선정이 되어 신용보증재단에서 보증서를 발급받고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의 덕을 볼 줄이야. 그런데 덕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로 ‘그 놈’을 대하기엔 ‘그 놈’이 가져다주는 피해가 막심하다. 우리 회사는 공연기획과 매니지먼트가 주 업종이다. 우리는 사람이 모여야 돈이 되는 회사인데, 코로나19는 어쩜 그렇게 냉정한지 사람이 모이는 꼴을 못 보고, 모이기만 하면 이 사람 저 사람 몸에 기생하려고 안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일 수가 없고, 자연히 1월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행사는 제로이다. 정확히 제로. 즉 매출이 소속 뮤지션의 음원 수익 말고는 전무하다는 말이다. 음원 수익으로 회사 운영이 되냐고? 그랬으면 신용보증재단에 갈 일도 없었다. 정확한 액수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루네와 싱크로니시티를 합친 월간 음원 수익은 여섯 자리이다. 그리고 당연히 끝은 원이다. 달러가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급감하여 나라에서 긴급 수혈을 해줘야 하는 업체로 선정이 되었고, 오늘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애로확인서를 전달하고, 보증서가 발급되는데 필요한 여러 서류들에 서명을 하고 왔다. 빠르면 이번 주, 늦으면 다음 주 정도에 보증서가 승인이 된다고 한다. 절차는 간단하다. 보증서가 승인이 되면 바로 은행에 가서 당당하게 “보증서가 발급되었으니 돈 빌려주소”하면 된다. 생각할수록 슬프다. 전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는 바이러스 덕을 보다니. 돈이 웬수다.


  우리 회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월간회의를 한다. 월간회의의 구성원은 대표인 나와, 제작이사인 A, 그리고 기획이사인 Y, 이렇게 셋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고, 우린 만나자마자 서로 하소연을 시작했다. 역시 주제는 코로나19. 그렇게 바이러스 따위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A는 회사 월급 말고도 기타 레슨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학생수가 반토막이 났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기타 세션으로 참여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콘서트들이 모조리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그냥 곧 잠잠해지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정체였던 확진자수가 어떤 요인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나라는 심각단계를 발령했으며, 이에 나라 전체가 비상에 걸렸다. 마스크 쓴 사람보다 쓰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았던 시간이 언제였나 싶게 사람들의 입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손소독제나 열감지기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공연을 진행했던 한 기획사는 공연에 오지 않았던 대중들에게 질타를 받고, 법적 소송까지 휘말렸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을 걸고 장사를 했다는 이유로. 이런 마당이니 공연이고 행사고 축제고 원활히 진행될 리가 없다. 아니, 진행이라는 단어도 사치. 모두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취소된 행사의 매출 규모만 천만 원 단위 이상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 보다 앞으로이다. 이 사태가 지속될 경우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부터 행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4월과 5월에도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도 있다. 실로 회사의 존폐가 걸린 순간이다.


  정치? 잘 모른다. 종교? 역시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고,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야 했는지, 금지 안 해도 됐는지, 이단이라 일컬어지는 신천지도 관심도 없고, 수련회를 간 교회를 욕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냥 바이러스에 크게 당하고 있는, 사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난 점을 적어본다.


  업종의 다양화를 꿈꿔봤다. 사실 우리 회사가 속한 업종은 평소에도 시기를 많이 타는 업종이었다. 특히 나라를 뒤흔드는 사건에 취약하다. 아나운서로 일할 때 간접적으로 체험해봐서 알지만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공연기획 및 매니지먼트 쪽 회사들은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중 하나였고, 여전히 추모의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회사들은 힘들었을 것이다. 거의 그 해 행사들이 모두 끊겼었다고 들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연기획 및 매니지먼트 업종은 바이러스에 취약했다고 한다. 메르스, 사스, 조류독감 등 전 세계를 뒤흔든 질병이 기승을 부릴 때마다 그 시기에는 우리 업종의 회사들이 모두 힘들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돈이 들어올 수 있는 창구가 대출이 아닌 내 노동의 대가로 만들어진 곳이라면 정말 든든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요새 ‘딴짓’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튜브 영상을 많이 만들고, 책을 내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바이러스 따위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회사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피해기업 지원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피해기업 안정자금을 지원받는 상황에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가 고개를 내밀 무렵부터 중소벤처기업부를 중심으로 한 기업 관련 국가 기관 및 부서에서는 코로나19 관련 대책을 내놨고, 이는 시기적으로 절대 느리지 않았다고 본다. 규모가 크든 작든 피해업종에 속한 기업들은 나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힘든 시기 약간의 힘이 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두렵다. 부동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일희일비하는 성격은 아닌데, 매일 부정적으로 변하는 상황에 두렵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를 믿고 함께 하는 직원들, 뮤지션들이 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혹자는 이 사태가 올 하반기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도 한다. 이 사태가 더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공연기획사들은 하나 둘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그런 사라짐을 경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두려움을 회사에도 투영해서 회사가 견딜 수 있는 기초체력을 계속해서 만들고 다져나가야 될 것이다. 어서 빨리 코로나19가 절멸하길 바란다. 조류독감이나 사스, 메르스처럼 활자를 통해서나 코로나19를 접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내 곧 괜찮아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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