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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하이 김대표 Mar 19. 2020

나는 ‘확찐자’라는 단어가 불편하다

장애인식개선에세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제목의 책이 꽤 인기를 끌었다. 우리는 차별을 의도로 하지 않거나 심지어 선량한 의도를 가지고 한 말과 행위인데 그 말과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차별적 요소로 작용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이다. 이 책의 사례로 많이 나오는 사람들은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소수민족, 흑인 등으로 이들은 누가 봐도 차별적 시선을 쉽게 만나는 사람들이다. 대놓고 이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선량한 의도를 갖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 이들에게 차별의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이 책의 풍부한 사례들은 참 흥미로웠다.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중 그 친구가 “요새 나 집에만 있더니 확찐자가 됐어”라는 말을 했다. 장애인식개선사업을 하기 전이라면 나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던 말이 괜히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불편했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 단어도 선량한 차별주의자 속 사례들처럼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차별적 단어 아닐까?


  요새 ‘확찐자’라는 말이 유행이다. SNS에서도 그렇고, 미디어에서도 그렇고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자라는 단어를 패러디한 말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집에서 나가지 않고, 그러다보니 운동량이 줄고 많이 먹게 되어 살이 찌는 자신을 자조적으로 혹은 약간의 우스개가 섞인 감정을 표현한 단어이다. 어감도 재밌고, 직관적이어서 너도나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단어가 불편하다. 어떻게 보면 이 단어도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한 사례이지 않을까?


  자신의 셀카를 올리며 ‘확찐자’가 되었다는 글을 쓰는 행위는 분명 코로나19 확진자들을 의식하면서 한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선량한 그들은 코로나19가 하루 빨리 종식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들에게 심적으로 응원을 보내거나 물질적인 기부까지 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확찐자’라는 단어를 쓴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냥 사람들이 ‘확찐자’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코로나19 확진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확찐자’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장애인들이 SNS에서 친구의 실수를 보고 “너 장애인이냐?”라고 말하는 글을 본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분명 그 말을 한 사람은 장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를 갖고 그 말을 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걸 본 장애인들의 기분은 화창하진 않을 것이다. 흑인들이 누군가가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이 아닌 사람에게 “너 흑인 같아”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역시 그 말을 한 사람은 흑인을 무시하려고 그 말을 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걸 들은 흑인들의 감정은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확진자들도 SNS에서 “너 장애인이냐?”라고 말하는 글을 본 장애인들과, “너 흑인 같아”라고 말하는 걸 들은 흑인들과 비슷한 마음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위 내가 친구에게 한 말에 대한 친구의 대답. “오 그렇게 보니 정말 ‘확찐자’라는 단어가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은 말일 수도 있겠네.” 시각장애를 가진 그 친구도 그렇게 인정하는 걸 보니 ‘확찐자’라는 말이 그저 편하고 재미있는 말만은 아닐 듯 싶다. 결론은, 조금 센 척해서 말하면, ‘확찐자’라는 말을 쓰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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