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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하이 김대표 Mar 23. 2020

N번방이라는 바이러스가 있었다

감성 에세이

  담양에 다녀왔다. 코로나19가 무색하게 죽녹원과 관방제림에는 꽤 많은 관광객들이 봄을 즐기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있어도 개방된 곳이라 괜찮다는 심리가 작용해서인지, 담양뿐만 아니라 꽃이 피는 온 동네 이름 있는 곳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상춘객과 함께 물들어간다고 한다. 나 역시 같은 심리로 쇼핑몰이나 시내 사람이 붐빌만한 곳보다는 야외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아름다운 시간에 방해물이 되는 코로나19가 야속하다.


  WHO는 코로나19를 펜데믹으로 선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확진자가 줄고, 완치자가 늘어가면서 조금은 잠잠해지는 것 같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이제 시작인 듯하다. 초기 발병지인 중국과 그 다음 피해국가인 우리나라는 소강상태인데 반해 유럽과 미국은 코로나19가 휩쓴 상처가 꽤 깊고, 오래 갈 것 같다는 기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종식되기도 전에 우리나라에 또 다른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창궐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존재했던 바이러스가 밝혀진 셈이다. 어쨌든 코로나19보다도 더 지독한 바이러스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바이러스의 이름은 ‘N번방’이다. ‘박사’라는 칭호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더러운 존재로 여겨지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바이러스 덩어리가 수많은 공범 바이러스들과 함께 이 사회에 기생하고 있었다. 실제로 텔레그램에서 입에 담기도 힘든 일들을 저지른 공범들은 당연하고, 경찰추산 1만명이나 되는 동조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창궐보다도 더 충격적이다.


  엄연한 범죄 현장을 보고도 오히려 즐겼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만큼이나 역겹다. 남자로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욕을 먹는 소수의 교회들에 부끄러워하고 사과하는 다수의 선량한 기독교인처럼 그 방에 있으면서 그 영상을 보고 즐거워했던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N번방 주도자 처벌 및 신상공개 청원이 2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포르노 사이트에 ‘N번방 영상’, ‘박사방 영상’등의 검색어가 인기 검색어로 올라와 있다고 한다. 인기 검색어라니. 200만명의 간절한 염원이 무색할 정도로 역겨움의 연속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내내 보여준 우리나라 국민들의 훌륭한 국민성이 온라인이라는 탈을 쓰면 무서울 정도로 변질되어간다.


  메르스 이후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전염병에 대한 매뉴얼을 제대로 갖춰 놓았고, 병원들도 관련 병상을 준비하는 등 이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전염병에 대한 대처 준비를 잘 해놨고, 이게 이번 코로나19에서 긍정적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한다. 메르스 이후 코로나19가 찾아왔다. 분명 이번 N번방 사건 이후에도 또 이런 극악무도한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다. 정부에서 이 N번방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해서 유사한 일이 또 터졌을 때 상처받는 사람들이 최소화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남자들이 각성해야 된다. ‘절대다수의 선량한 남자들이 극소수의 바이러스 때문에 욕먹네’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런 바이러스들이 생겨나지 않게 주변을 철저히 진단하고 방역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그 정도면 뭐 어때?’에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기준과는 사뭇 다른 상향되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내 어머니, 내 동생, 내 누나, 내 여자친구, 내 딸, 내 조카, 내 지인은 안 되는데, 내가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는 괜찮다는 표리부동하고 야누스적인 가면을 벗어버려야 한다.   


  봄이 한 가득 달려왔지만 세상은 여러 바이러스로 인해서 여전히 무섭다. 언제쯤이면 이 모든 바이러스가 사라져 모두가 행복하게 봄을 만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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