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의 MZ오피스가 너무 재밌다. MZ세대 신입사원인 맑눈광 아영님이 나의 최애 캐릭터인데 눈치 따윈 멍뭉이나 줘 버린 패기로 직장 생활을 한다. 팀 회식 자리에서 수저통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선배와 팀장의 수저를 깔지 않고, 고기도 굽지 않는다. 피꺼솟은 선배들의 몫.
*맑눈광: 맑은 눈의 광인, 피꺼솟: 피가 거꾸로 솟는다.
7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오피스에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회사가 스마트 오피스 컨셉이라 직급 무관하게 지정석이 없고, 누구나 오는 대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느 날 우리 사업부의 헤드 (Executive Vice President 고위 임원)인 셀리나 Selina가 회의실에서 컨퍼런스를 마치고 나왔는데 사무실에 빈자리가 마침 하나도 없었다.
"Oh, there is no seat left! 어, 빈자리가 하나도 없네?!"
그녀의 목소리를 나를 포함 최소 30명은 들었을 것이다. 자동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공중에 10센티쯤 띄우고 'please take my seat 여기 앉으세요' 하려고 그녀를 향해 뒤를 돌아봤는데, 와우, 아무도 1도 신경 안 쓰고 하던 일들을 그냥 하고 있었다.
"Our office is very full today 오늘 사무실 꽉 찼구만!"
셀리나의 두 번째 말에 어느 구석에선가 한 명이 고개도 안내밀고 대꾸했다. "Yah ~ You've got to fire someone~ 그러게 ~ 누구 하나 잘라야겠네~"
그 말에 셀리나 포함, 다들 빵 터져 웃고, 셀리나는 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보러 다른 쪽으로 떠났다. 나는 허공에서 두둠칫 하던 내 엉덩이를 조용히 내려놓고 생각했다. '뭐지? 이 사람들?!'
눈치.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개념이라서 영어 사전에도 고유명사 Nunchi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뜻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알아채고 행동하여 상대방의 웰빙 wellbeing에 기여함. (Collinsdictionary.com)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척하면 척'. 유럽인 친구들에게 이 개념을 설명하면 wow, that's a super power! 와, 완전 초능력이네! 이런다. 모두가 초능력을 가진 우리 사회에서 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피꺼솟의 대상이 된다.
유럽 생활 7년 차에 접어드니 나의 눈치는 그 쓸모를 잃고 소실되는 중이다. 개념의 존재도 모르는 유럽인들이 눈치껏 내 기분을 맞춰주길 기대하지 않는 대신, 나 또한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대신 부탁의 기술을 연마 중이다. "데니스, 이것 좀 도와줄래?", "이고르, 이 일은 네가 맡아 줄래?"
변해가는 아내를 감당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남편의 몫이다.
어느 금요일 저녁. "오빠, 저 내일 친구들과 북클럽 모임하러 나가요". "응? 내일 할아버지 제사야."
......
나는 우리 아이들 기준으로 고조부까지 제사를 지내는 보수적인 가문의 남자과 결혼했다. 지난 18년 동안나는 새벽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페이스 타임을 켜고 아이들과 제사에 참여하던 며느리였다. 그런 내가 시할아버님의 제삿날 친구를 만난다고 사라진 것이다.
남편이 나를 시댁에 어떻게 커버 쳐주었는지 모른 채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해명의 기회를 얻었다. "오빠가 나한테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잖아, 그냥 제사가 있다고만 했지. 나한테 약속 바꾸고 제사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으면 Okay! 했을걸?"
그동안 당연히 눈치껏 우선순위로 삼아온 시댁의 각종 행사를 이제는 부탁받고 참여하겠노라는 나의 선언은 의외로 싱겁게 받아들여졌다. 부탁을 부탁드립니다. OK, no problem.
MZ 오피스에서 선배들이 '아영 씨, 거기 수저통에서 수저 좀 나눠줄래요?' '아영 씨, 우리 함께 고기를 구워봐요'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청하지도 않은 부탁을 상대방이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건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13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도 무수히 많은 수저와 냅킨을 깔았지만 (수저 껍데기를 접어서 수저받침으로 만들기는 기본) 후배들은 이제 그만 눈치의 초능력을 내려놓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