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으로 컬러풀하게 감사하면서
지난여름 비행기 안에서 '오토라는 남자'를 봤다. 외국 항공기이고 한글은 물론 영어 자막도 없는 덕에 대사를 반절 정도만 알아들었는데 오토의 아내 소냐의 대사 한 줄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삶을 살아요. We have to keep living."
소냐가 없는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해 매번 자살을 시도하던 오토에게 소냐의 환영이 나타나서 해준 말이다. "삶을 살아요."
그 후에 오토는 끊임없이 오토의 문을 두드리던 이웃 마리솔과 오랜 친구들과 함께 진짜 삶을 살아내기 시작한다. 소란스럽고 행복하고 컬러풀하게.
생기를 찾은 오토의 모습과 그 인생의 따뜻한 마무리가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영화를 봤다.
지난 한 주를 심적으로 요란하게 보냈다. 한 주의 닷새 동안 감정의 업다운이 요동을 쳤다.
그 한가운데의 수요일은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제대로 바닥을 친 날이었다.
팀장/디렉터 중 한 명이 사직서를 냈다. 네덜란드에서 근무한 8년 동안 내 팀원들을 대부분 성장시켰고, 수 차례 구조조정의 칼바람 속에서도 전부 다 지켜냈다. 성과 부진으로 내보낸 극소수의 직원을 제외하고 내가 아끼던 직원이 사직서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잊고 있었나 보다. 사람을 잃는 일이 나에게 많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해당 직원과 점심시간 무렵 면담을 한 후에 피로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오후에 있던 중요한 회의들을 모두 취소하고 저녁에 체크인 예정이었던 스키폴 공항 내 호텔에 미리 가서 쓰러지듯 낮잠을 잤다.
잠을 깨고 나니 이른 저녁 시간. 다음 날 새벽 출장에 동행하는 직원들이 도착해서 함께 저녁을 먹고, 회의를 하고, 슬로베니아로 출장을 다녀왔다.
협력사와의 미팅은 성공적이었다. 8시간 동안의 회의와 식사, 공장의 시설 방문 동안 나는 내내 웃고 농담을 받아치고 열정적으로 대화했다. 해내야 하는 일은 어떻게는 해내고야 마는 책임감으로 가라앉는 몸과 마음을 쥐어짜서 주어진 역할을 전부 해냈다. 그리곤 기진맥진.
금요일 아침, 슬로베니아에서 네덜란드로 돌아오는 작은 비행기 안. 또다시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느라 이틀 째 수면 부족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시달리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맨 앞에서 두 번째 줄 좌석을 예약했는데 (빨리 타고 빨리 내릴 수 있음) 이럴 수가, 내 옆자리에 젊은 커플이 돌 무렵의 인형같이 작은 아기를 데리고 앉아있었다. 아... 조용한 비행은 글렀구나. 내 마음에는 '세상은 왜 나한테만 이래'의 테마로 오만 가지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오토와 소냐 생각이 났다.
삶을 (충만하게) 살아요. We have to keep living (in full).
잠시 심호흡.
공갈 젖꼭지를 뱉어내면서 칭얼대기 시작한 아기를 안절부절 달래는 엄마에게 아기가 너무 예쁘다면서 몇 개월이냐고 물었다. 14개월이랜다. 약간 곱실거리는 금발에 파란 눈을 하고, 볼이 발간 아기가 정말 예쁘기는 했다. (코는 약간 들창코..)
나는 아이 셋을 기른 엄마이니, 비행하는 동안 아기 때문에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동시에 한국 엄마의 스킬을 발휘해서 들고 있던 책을 가지고 까꿍을 두어 번 해주었더니 아기가 활짝 웃었다. 아랫니만 삐죽 두 개. 아! 귀엽다...
이후 100여분 간의 비행은 뭐 예상한 대로였다. 잠은 포기, 책 읽는 것도 포기.
만나서 반가웠다고, 남은 여행 즐겁게 하라고 서로 인사를 하면서 아기와 부모와 헤어지고 나니 그래도 기분이 한결 산뜻했다. 내가 약간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토요일인 오늘 하루를 쉬고, 나는 다시 짐을 싸고 있다. 일요일인 내일 오전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간다. 세계 각국의 지사에서 모인 사업부의 마케팅 리더들을 만나서 4박 5일 동안 성공 사례를 공유하고 내년 사업 전략과 예산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주말에 온전히 쉬지 못하고 또다시 출장길에 오르려니 불만스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번에는 지나영 교수의 영상을 보면서 마음을 다스려본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것들로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건지를 생각해 보세요. What are you doing with what you've been given?"
넵!!
마음 수양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