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의 역사

by 어거스트


나는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80년대 후반의 강남은 지금과 비교하면 훨씬 덜 화려한 곳이었다. 삼성동 무역센터 앞의 왕복 16차선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아서 친구들과 나는 그곳에서 무단횡단 달리기를 하곤 했다.

풍족한 유년기였지만, 같은 반의 소현이가 늘 부러웠다. 소현이는 아빠가 사다 주셨다는 미제 크레용이나 일제 볼펜을 다발로 가져와서는 친구들에게 곧잘 나누어주었다. MBTI가 E로 시작할 것이 확실한 소현이는 우리 반 최고의 인싸였다. 나는 소현이의 인기가 부러웠고, 그 아이의 오동통한 볼과 곱실거리는 머리카락도 부러워했다. 소현이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는 분이었을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음대생들이 부러웠다. 중고등학교 내내 나의 사복센스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으나, 검은 정장 차림에 머리에 큐빅 핀을 꼽고 바이올린이나 첼로 케이스를 들고 다니던 예고 출신 음대생들의 우아하고 부내 나는 아우라는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다.

엄마를 조르고 과외한 돈을 보태서 유명 브랜드의 정장에 명품 가방을 여럿 들고 다녔지만,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싱그러울 나이에 징그러울 정도로 노티 나는 차림새였다. 아! 입술도 거무죽죽하게 칠했던 것 같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소유에 대한 부러움이 능력에 대한 부러움으로 넘어갔다.

나의 네 번째 직장은 시리얼을 세상에 선보인 켈로그였는데 (한국 법인명은 농심켈로그), 강남구 삼성동 현대백화점 바로 건너편의 건물에 사무실이 있었다.

그곳은 다소 어둑한 느낌이 나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신세계였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끼리 영어로 말을 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조사와 어미만 한국어, 명사와 동사는 영어를 섞어 쓰는 방식이었다. 요즘에는 그런 말투를 보그체 (VOGUE 패션 잡지에 많이 나오는 허세스러운 언어)라고 비꼬아 조롱하기도 하지만, 당시 보그체의 세계에 막 입문한 나에게 그들의 능력은 신기하고 엄청 멋져 보였다.

상사와 동료들이 대부분이 유년 시절을 해외에서 보낸 사실을 알고 나서는 (스페인 교포도 있었음) 막연히 내 자식을 해외에서 키워내리라는 다짐을 했었다. 흠.. 꿈이 이루어진 것인가.




네덜란드에 온 지 어언 9년 차.

남들에게 보이는 물건에 대한 소유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진 게 많아져서라거나 나의 영혼이 성숙해서가 아니라 (조금은 그런 것이길 바라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유명 브랜드의 옷이나 가방을 걸치는 모습이 여기에서는 놀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사힌 (Sahin, 가명, 터키 출신의 스위스인)이 경영진의 일원으로 우리 사업부에 합류하는 것을 환영하는 저녁 식사 자리였다. 그는 한눈에도 좋아 보이는 슈트를 입고, 루이뷔통 가방을 들고 롤렉스 시계를 차고 윤기가 차르르르 흐르는 캐시미어 코트를 손에 걸치고 등장했다. 식당에 미리 와있던 대여섯 명의 유럽인들이 한꺼번에 박장대소를 하고 웃었다. 어리둥절해하던 사힌에게 프랑스인 보스가 넌지시 알려줬다. ‘사힌, 그러니까 나도 시계를 좋아하고 롤렉스 컬렉션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집에 두고 나와. 대신 이렇게 애플 워치를 차지. 여기서는 이게 훨씬 쿨 해 보이거든.’




물욕에서 저만치 멀어진 요즘 내가 진짜 너무나 부러운 것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나답게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이다.

처음에는 영어에 능숙해지는 데에 온 신경을 썼다. 시간이 흐르고 온갖 수치스러운 경험들이 쌓여 이제는 영어가 꽤 편안하다.

그러자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복병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나의 고유한 생각”.


우리나라에서 서른 해가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말센스’가 있다고 칭찬받는 편이었다. ‘척하면 어’하고 ‘개떡같이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 눈치가 백 단인 그런 부류.

사회생활의 연차가 쌓이면서 나의 언어 신경은 온통 밖을 향해서 발달했다. 지금 저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해야 할 말은 무엇인가. 나의 지금 이 말이 저 사람 (A)을 통해서 다른 사람 (B)에게 전달되었을 때 일이 꼬일 것인가 풀릴 것인가. 무슨 초능력 마냥, 입을 열어서 말을 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두세 개의 시나리오가 동시에 돌아갔다.


회사 내에서 소위 리더십의 포지션에 오르기 전까지 이런 나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센스가 뛰어나고 외교적 수완이 좋음’이라는 피드백과 함께 연말 평가의 최고점을 곧잘 찍어냈다. 덕분인지 내 보스는 나를 중요한 회의 자리에 줄곧 데리고 다녔고 회사 내에서 좋은 평판을 쌓아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문제는 그다음에 생겼다. 어느 순간 나의 화법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부풀어진 솜사탕 같았다. 모두를 기분 좋게 하지만 알맹이가 빠진 공허함. 그런 즈음에 “갈등을 피하는 경향이 있음”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선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리더의 포지션에서 나의 ‘발린 말’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난 한 주를 터키 이스탄불에서 보내고 어제저녁 늦게 네덜란드의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중동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라틴 아메리카 (브라질, 멕시코), 인도의 마케팅 리더들과 우리 사업부의 제품 팀장들이 한데 모여서 올해의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사업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갈등은 인도의 마케팅팀과 내가 데려간 제품 팀장과의 사이에서 불거졌다. 인도에서 주도한 아이디어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우리 팀에서 제시한 판매 가격과 인도에서 원하는 가격 사이에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났다.

인도에서 온 미라(Mira, 가명)가 열변을 토했다. “현재 제품 개발팀에서 제안한 아이디어는 이미 마켓에 나와 있는 제품들과 근본적인 차별점이 부족하고, 소비자를 만족시킬만한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미 이 프로젝트에 대여섣달을 매달려온 제품 팀장의 눈에 초점이 흐려지더니, 이내 반격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인도팀과의 긴밀한 협의 하에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데, 이제 와서 제품의 콘셉트를 재 논의하자는 건가요?”


지켜보던 내 머릿속이 바빠졌다.

인도 지사의 사장과 지역 (region) 사장은 모두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기 원했다.

나는 마뜩지 않았다. 하지만 사업부의 리더로 오자 마자 프로젝트를 엎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제 내가 한 마디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기는 한데 나의 속내 (이참에 엎어버려!)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합리적으로 마무리시킬 말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하리카 (Harika, 가명, 터키 여성)가 입을 열었다. 하리카는 그동안 터키의 비즈니스를 키워낸 성과를 인정받아서 얼마 전에 지역(region)의 마케팅 리더가 되었다.

“우리 같은 글로벌 회사에서 인도 한 나라만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는 건 효율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지난 두어 달 동안 이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다른 나라들을 알아보았지만 큰 성과가 없었어요. 게다가 가격 차이 때문에 인도에서도 이 제품의 가능성에 회의적이라면 이 프로젝트를 접어야 할 것으로 보이네요.”

브라보.


인도팀의 의도는 해당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하도록 승인받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결론에 당황한 인도 팀에서는 급히 온라인으로 지사의 사장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지사의 사장은 즉시 내 직원인 제품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역시 당황한 제품 팀장은 “여기에서 이러지 말고, 이 주제는 일단 접어둔 후 향후 재 논의하도록 하자”라고 제안했다.


때가 되었군. 내가 나섰다. “첫 번째, 미라의 솔직한 발언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품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런 제품을 만들어내야 할 이유가 없겠죠. 둘째, 하리카가 잘 정리한 것처럼 이 프로젝트는 중단하는 것이 옳아 보이네요. 지금까지 투자한 내용과 시장 가능성에 대한 숫자를 정리해서 하리카가 지역 사장에게 결론을 전달해 주세요. 인도 팀과 우리 제품팀은 하리카를 도와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 주기 바랍니다.”


원하던 결론에 도달했지만 나는 뛸듯이 기쁘거나 하진 않았다.

그보다는 양 팀의 갈등이 고조되었을 때 이것저것 계산하느라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한 그 순간이 마음에 걸렸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꽂힌 부러움은 여기에 있다.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나의 고유한 생각을 갖는 힘’, 그리고 ‘그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로 옮기는 용기’.


회사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정치판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유럽에 위치한 글로벌 회사 헤드쿼터(본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내용의 알맹이보다 누가 누구를 지지하고 지지하지 않는지가 더 중요해 보이는 상황들이 목격되곤 한다.

그래서 자기 알맹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욱 귀하고 돋보인다. 그들이 오해를 사는 것도 보고, 비난받는 것도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 그들이 조직에서 가장 신뢰받고 존중받게 되는 과정도 함께 보았다.


다음 달부터 나의 동료이자 “눈치는 1도 없는 독한 발언자”로 악명(?)이 높은 스테픈 (Stefen, 가명, 나보다 대여섯 살 가량 많은 독일인 같은 네덜란드인)에게 코칭을 받아보기로 했다.

따지자면, 그리고 특히나 스테픈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꾼’ 부류로 인식되는 내가 그에게 코치가 되어달라고 하다니.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몇 초간 무표정하게 침묵을 가진 후 이렇게 말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네. 나에게 믿음을 주어서 고마워. 그래, 해보자.”


나의 고민을 들은 그가 내민 코칭의 주제는 “소신 있는 생각하기, 그리고 그 생각을 지켜내기 Autonomous thinking and how to stick to it”이다.

마음에 든다.


시작.


keyword
이전 26화삶을 살아요 We have to keep l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