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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Mar 06. 2019

콩트로 떠나는 유럽여행

여섯 번째 여행- 노르웨이 

   세상 공평한 기라~  1


  “혹시, 문경중학교 안 나오셨습니꺼?”


  브라운 치즈를 얹은 빵을 막 베어 먹으려던 순간이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던 남자가, 우리 북유럽 패키지 투어 멤버 중에서 제일 밉상이던 그가 빙글빙글 눈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날렸다.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났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 입술이 두툼한 그의 얼굴 위로 ‘문경중학교’가 오버랩되며, 쓰디쓴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이런 젠장. 평화로운 노르웨이 피오르 마을 레이 캉 에르 호텔에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을 즐기려던 계획은 물 건너갔다. 

  ‘니 맞제?’ 확인 사살이라도 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 남자는… 아,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김창석 일 것 같다. 아니 그가 분명하다.       



  35년 전, 나는 아주 잠깐 문경에서 중학교에 다녔다.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외갓집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문경중학교에 다녔다. 우울한 시절이었다. 유일한 희망이라곤 전학과 동시에 전교 1등을 차지한 성적표가 전부였다. 서울에서도 늘 1등을 놓치지 않던 내겐 당연한 일이었지만, 전학생이 전교 1등을 차지한 것은 시골 중학교에서 대단한 사건이었다. 나는 단숨에 전교생이 주목하는 스타로 등극했다. 선생님들의 귀여움도 독차지했고, 담임은 반장보다 나를 더 편애했다. 추운 거리를 헤매다 겨우 따뜻한 안식처를 만난 듯, 모처럼 행복했다. 겸손의 미덕을 잘 알고 있던 나는 ‘공부 좀 잘한다고 잘난 척’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최고였다. 

  반면에 김창석은 존재감조차 없었다. 까까머리에 얼굴 가득 버짐이 퍼져있던 공부도 지질히 못하는 아이였다. 솔직히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나는 그가 우리 반이라는 것도 몰랐다.     



  “선생님, 등록금이 없어졌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외할머니가 어렵게 마련해준 등록금을 잃어버린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침에 분명히 책가방에 넣어왔는데, 돈이 없어졌다. 하늘이 노래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등록금을 못 내면 학교를 못 다닌다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쳤다. 눈물 콧물이 쏟아졌다. 담임의 눈꼬리가 무섭게 올라갔다. 교실에서 발생한 ‘절도’는 학주였던 담임에겐 치욕 같은 사건이었다. 당장 도둑 색출 명령이 떨어졌다. 쉬는 시간에 내 자리 근처를 어슬렁거렸던 김창석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아니라고, 절대로 자신은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결백을 외치는 김창석의 주장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비참하게 묵살됐다. “감히 전교 1등의 등록금을 훔쳐?” 무죄를 외치던 그는 ‘괘씸죄’까지 보태져 정학을 당했다. 

  문제는 사흘 후에 벌어졌다. 돈 씀씀이가 헤퍼진 사촌 형이 외숙모한테 덜미를 잡혔다. 내가 방바닥에 떨어트린 등록금을 사촌 형이 주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반 친구를 도둑으로 몰아버린 나는 학교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 용기도 없었다. 긴급 가족회의가 열렸고, 나는 비겁하게 도망치듯 서울로 컴백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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