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로 떠나는 유럽여행

여섯 번째 여행- 노르웨이

by 소심한 삘릴리

세상 공평한 기라~ 1


“혹시, 문경중학교 안 나오셨습니꺼?”


브라운 치즈를 얹은 빵을 막 베어 먹으려던 순간이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던 남자가, 우리 북유럽 패키지 투어 멤버 중에서 제일 밉상이던 그가 빙글빙글 눈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날렸다.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났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 입술이 두툼한 그의 얼굴 위로 ‘문경중학교’가 오버랩되며, 쓰디쓴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이런 젠장. 평화로운 노르웨이 피오르 마을 레이 캉 에르 호텔에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을 즐기려던 계획은 물 건너갔다.

‘니 맞제?’ 확인 사살이라도 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 남자는… 아,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김창석 일 것 같다. 아니 그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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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나는 아주 잠깐 문경에서 중학교에 다녔다.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외갓집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문경중학교에 다녔다. 우울한 시절이었다. 유일한 희망이라곤 전학과 동시에 전교 1등을 차지한 성적표가 전부였다. 서울에서도 늘 1등을 놓치지 않던 내겐 당연한 일이었지만, 전학생이 전교 1등을 차지한 것은 시골 중학교에서 대단한 사건이었다. 나는 단숨에 전교생이 주목하는 스타로 등극했다. 선생님들의 귀여움도 독차지했고, 담임은 반장보다 나를 더 편애했다. 추운 거리를 헤매다 겨우 따뜻한 안식처를 만난 듯, 모처럼 행복했다. 겸손의 미덕을 잘 알고 있던 나는 ‘공부 좀 잘한다고 잘난 척’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최고였다.

반면에 김창석은 존재감조차 없었다. 까까머리에 얼굴 가득 버짐이 퍼져있던 공부도 지질히 못하는 아이였다. 솔직히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나는 그가 우리 반이라는 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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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등록금이 없어졌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외할머니가 어렵게 마련해준 등록금을 잃어버린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침에 분명히 책가방에 넣어왔는데, 돈이 없어졌다. 하늘이 노래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등록금을 못 내면 학교를 못 다닌다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쳤다. 눈물 콧물이 쏟아졌다. 담임의 눈꼬리가 무섭게 올라갔다. 교실에서 발생한 ‘절도’는 학주였던 담임에겐 치욕 같은 사건이었다. 당장 도둑 색출 명령이 떨어졌다. 쉬는 시간에 내 자리 근처를 어슬렁거렸던 김창석이 범인으로 지목됐다.

아니라고, 절대로 자신은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결백을 외치는 김창석의 주장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비참하게 묵살됐다. “감히 전교 1등의 등록금을 훔쳐?” 무죄를 외치던 그는 ‘괘씸죄’까지 보태져 정학을 당했다.

문제는 사흘 후에 벌어졌다. 돈 씀씀이가 헤퍼진 사촌 형이 외숙모한테 덜미를 잡혔다. 내가 방바닥에 떨어트린 등록금을 사촌 형이 주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같은 반 친구를 도둑으로 몰아버린 나는 학교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 용기도 없었다. 긴급 가족회의가 열렸고, 나는 비겁하게 도망치듯 서울로 컴백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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