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여행 -프랑스/ 르와르 고성 지대
흠, 차림새를 보니 샹보르 성 홍보도우미쯤 되는 것 같다.
“봉주르~ 무슈. 파리에서 오셨어요?”
“네. 정치학을 공부하는 유학생입니다.”
“저기 블라블라 떠드는 사람이 당신네 보슨 가요?”
“하하, 보스는 아니고 가이드예요. 르와르 고성 투어를 하는 중이거든요.”
“다른 성들도 구경하셨어요?”
“아직. 샹보르성이 처음이에요.”
“그럼. 지금부터 나랑 같이 다녀요. 특별안내를 해줄게요.”
그녀는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나를 이끌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일행보다 그녀와 성을 구경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녀를 따라나섰다. 그녀의 이름은 까멜라, 자신을 한때 샹보르 성에 살았던 공주라고 소개했다. 역할극에 충실한 건지, 허언증이 심한 건지 모르겠다. 어쨌건 그녀는 예뻤고 쾌활했다. 농담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 보였다.
까멜라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했다고 소문난 이중 나선형 계단 위에 서더니,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쓴 공주 뽀단(Peau D'Ane)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샤를 페로의 동화라는 <뽀단>은 프랑스판 신데렐라 이야기였다. 그녀를 따라 성을 돌아다니는 일이 즐거웠다. 샹보르성은 볼수록 매력이 넘쳤고, 까멜라의 샹보르성 투어는 정말 재미있었다. 뺀질이 가이드와 차원이 다른 투어였다. 구석구석 성 안에 새겨진 전설을 듣노라니, 내가 진짜 이 성에 살았던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까멜라가 성에서 제일 멋진 곳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지붕으로 데려갔다. 우와, 루프탑에 발을 딛는 순간, 잘 가꿔진 정원과 숲이 한눈에 보였다. 화려한 왕관 같은 지붕장식과 원형 탑을 바라보는데,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전생에 나라를 얼마나 많이 구해야 이런 좋은 성에 살 수 있을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프랑스식 정원의 정갈함에 또 한 번 감탄할 때였다.
우르르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정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 일행이었다. 어느새 샹보르성 투어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인가 보다. 어휴, 까멜라와 노느라 하마터면 일행을 놓칠 뻔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서둘러 까멜라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녀의 특별 투어를 잊지 못할 거라고,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데 그녀가 나를 붙잡았다.
“가지 말아요.”
“죄송해요. 일행이 있어서 가야 해요.”
“네? 일행이라뇨? 누가요?”
눈이 동그래져 한동안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갑자기 까르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성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아직 모르세요? 우리, 사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