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여행-프랑스 콩크
<1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라는 그녀는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말을 못해서 한국말이 많이 고팠다며 수다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의 소재와 주제도 들쑥날쑥 중구난방이었지만 소소하니 재미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구수하기도 했습니다. 제일 좋았던 건, 그녀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수다 꽃을 피우며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셨습니다. 와인 한 병을 다 비웠을 땐 저도 죽은 아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아팠지만 모처럼 가슴이 시원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저도 모르게 과음을 했나 봅니다.
다음 날 아침, 낭랑한 새소리에 눈을 뜨자 옆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습니다. 그녀였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서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녀와 저의 옷차림을 보니 다행히 별 일은 없던 것 같습니다. 어젯밤 술이 과했던지 그녀는 아직 한밤중이더군요. 민망해진 저는 도망치듯 순례자 호텔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아침을 먹기 무섭게 콩크를 떠났습니다. 컨디션을 조절할 틈도 없이, 죽어라 걸었습니다. 카오르를 지나 무와삭까지 한걸음에 달려갈 기세로, 저를 향한 분노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대체 무엇이 잘못됐을까 돌이켜보았습니다.
산티아고 프랑스 순례길은 아내와 함께 했던 추억을 털어내는 여정입니다. 영영 아내와 이별하겠다는 독한 결심으로 나선 길입니다. 아내를 떠나보내려고 나선 길에서 제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화를 삭이느라 발걸음이 자꾸 거칠어졌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요?
발가락에 욱신욱신 통증이 느껴지는 가 싶더니, 발이 띵띵 부어올랐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뾰족한 가시가 찔러대는 고통이 엄습했습니다. 나중에는 쇠못으로 발을 후벼 파는 아픔이 전해졌습니다. 발가락에서 시작된 통증이 발목까지 올라왔습니다. 자꾸 걸음이 느려지더니, 결국 무릎이 꺾여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서러운 눈물이 솟았습니다. 이런 저질 체력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어떻게 완주할지 제 자신이 한심해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침에 발가락에 잡힌 물집을 치료해드리려고 했는데, 왜 그냥 가셨어요?”
언제 왔는지, 그녀가 와락 저를 붙잡아 일으켰습니다. 깡마른 몸과 달리 힘이 장사였습니다. 그녀의 호의를 사양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녀는 싫다는 저를 근처 바위로 데려가 앉히더니,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능숙하게 발가락에 잡힌 물집을 터트려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스르르 통증이 가라앉더군요. 새삼 그녀에게 고맙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여행길에 만나 좋은 친구가 되어준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는커녕 도망치듯 떠났는데, 그녀는 어쩌자고 저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물수건으로 발을 닦아주고, 약을 발라주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제의 수다쟁이 그녀와 같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치료를 끝내고 아픈 발을 조물조물 주물러주는 그녀의 손길이 어딘지 익숙합니다. 제가 발바닥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릴 때마다 발마사지를 해주던 아내의 손길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눈에서 툭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저는 아무 말 못 하고 얼음처럼 굳어버렸습니다.
“저는 먼저 갈게요. 천천히 오세요.”
그녀가 조용히 일어나더니, 먼저 가겠다며 길을 나섭니다. 순간, 제 눈에 왈칵 눈물이 고입니다. 아, 왜 저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눈물로 뿌옇게 흐려진 시야 속으로 30년 전 아내와 꼭 닮은 그녀가 점점 멀어집니다. 아프게 멀어지는 그녀를 붙잡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더 아픈 순례길입니다.
도보여행은 홀로 가야 한다. 자유가 이 여행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가고 싶을 때 가고, 마음 내키는 대로 이 길 저 길로 갈 수 있어야 한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오든 소리를 내는 풍금, 당신은 바로 풍금이 되어야 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도보여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