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여행- 스페인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떠나 마드리드로 가는 길. 윤은 차창 밖의 건조한 경치를 흘끔거리며 사막을 떠올렸다. 스페인과 사막이라... 전혀 어울리지 않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데 저 멀리 흰모래 사막이 나타났다.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평소 같으면 환호성이라도 질렀을 풍경이었지만,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2월의 사막에는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냥 파리로 돌아갈까? 호텔비고 뭐고 다 포기하고 말이야.”
침울한 표정으로 운전하던 남편이 불쑥 침묵을 깼다. 그녀는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이미 카드결제를 끝낸 거금의 숙박비도 아깝지만, 호텔을 예약하면서 그녀가 느꼈던 희열 때문이었다. 마드리드 노보텔과 안도라의 고풍스러운 호텔 그리고 카르카손의 고성 호텔을 예약할 때 그녀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남편은 짐작도 못할 것이다. 비록 바르셀로나에서 여행의 브레이크가 걸렸더라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 스페인 여행은 변덕스러운 윤의 성격만큼 충동적이었다. 윤 부부가 프랑스에 사는 오빠를 만나러 파리에 놀러 왔고, 오빠가 갑자기 미국으로 출장을 가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더 정확하게는 윤이 모닝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크리스마스를 마드리드에서 보낸 블로거의 글을 읽던 순간이었다.
“와, 스페인에서 크리스마스를? 이거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난데...”
“버킷리스트라고? 그럼 당장 가야지.”
파리 여행에 들떠있던 윤의 남편이 즉흥적으로 스페인 여행에 동의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인터넷을 검색해 호텔을 예약했다. 그 어렵다는 크리스마스 성수기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으며 보르도 1박, 바르셀로나 2박, 마드리드 2박, 안도라 1박, 카르카손 고성 호텔 1박까지 예약을 끝냈다. 자연스럽게 여행 일정도 정해졌다. 프랑스에 올 때마다 빌려 타던 오빠의 자동차를 몰고, 그들은 파리를 떠나 보르도를 거쳐 바르셀로나에 입성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첫날은 환상이었다. 싸그리다 파밀리아 성당과 구엘 별장을 둘러보며 가우디의 건축세계를 찬양했고, 람블라스 거리의 레스토랑에서 로맨틱한 식사도 즐겼다. 왕의 광장을 바라보며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몬주익 언덕에 올라 황영조 선수의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거대한 몬주익 성을 산책한 뒤에는 다시 항구로 내려와 지중해를 바라보며 와인을 마셨다. 바르셀로나의 따뜻한 겨울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그녀는 진정 행복했다.
사고는 둘째 날 터졌다. 부부는 국립 카탈루나 미술관을 관람하고 람브라스 거리로 차를 몰았다. 유료주차장에 안전하게 차를 세운 다음, 맛집으로 소문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2시간 가까이 스페인 정식을 즐기며 행복해했던 것 같다. 그리고 부부는 가우디의 풍부한 상상력과 상식을 초월한 건축기법을 보러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까사 밀라를 지나는데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그들의 차로 다가와 뒷바퀴를 가리켰다. 왜 저러지? 윤과 눈이 마주 지차 남자가 적극적으로 자동차 뒷바퀴를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타이어가 펑크 났다는 소리 같았다. 길 한쪽으로 차를 세운 뒤 부부는 밖으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뒷바퀴가 납작해져 있었다.
허걱, 어디서 펑크가 났을까? 윤과 남편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떡하지? 윤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짧은 순간, 윤은 오빠 차를 몰고 스페인 여행을 감행한 그들의 무모함을 후회했다. 이미 엎어진 물을 어떻게 주워 담을까 고심할 때였다. 우왕좌왕하는 부부에게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다가와 뭐라 뭐라 스페인어로 떠들었다. 도움을 주려는 것 같은데, 대체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번역기가 필요했다. 윤은 차 안에 둔 번역기를 꺼내려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검은 라이드 재킷을 입은 남자가 자동차 뒷좌석에서 작은 가방을 꺼내다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저, 저건 뭐지?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