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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Apr 23. 2019

콩트로 떠나는 유럽여행

열두 번째 여행-스페인 마드리드

크리스마스를 마드리드에서 2


<1부에서 계속>


  “도, 도둑이야.”


  윤이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스페인 도둑이 얼마나 악명 높은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맞닥뜨릴 줄은 정말 몰랐다. 윤의 비명소리와 함께 가방을 움켜 쥔 도둑이 빛의 속도로 달아났다. 오토바이 남자도 어느새 사라졌다. 후들후들 몸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쭈욱 빠진 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뜨고 코 베어 간다’는 말이 눈물 나게 실감 났다. 

  그렇게 그들의 바르셀로나 여행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변했다. 감탄사를 연발하던 바르셀로나의 풍경과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한순간에 시들해졌다. 그나마 도둑이 훔쳐간 가방에 귀중품이 없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큰 손실은 없었지만 구정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파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문제는 펑크 난 타이어. 스페어타이어로 갈아 끼우고 호텔까지는 조심조심 돌아왔지만, 파리까지 장거리를 뛰려면 타이어를 교체해야 하는데,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타이어 수리점들이 모두 문을 닫아버렸다. 



  “있잖아. 만약에 내일 타이어 수리점을 찾으면, 여행을 계속하는 걸로 하자.”


  밤새 고민하던 부부는 내기하듯 결론을 내렸다. 크리스마스이브에 기적처럼 문을 연 타이어 수리점을 찾는다면, 여행을 계속하라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자고. 타이어 교체를 못하면 어차피 꼼짝 못 하고 바르셀로나에 갇혀있게 될 터였다. 예약해 놓은 호텔비도 날릴게 뻔했다. 기적인지, 운명인지, 그들은 바르셀로나 외곽에서 문을 연 타이어 전문점을 발견했고, 거금을 들여 타이어를 교체한 뒤 마드리드를 향해 떠났다. 마드리드에 도착할 때까지 윤은 남편을 붙잡고 다짐에 다짐을 했다. 바르셀로나의 악몽은 모두 잊고, 마드리드에서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자고.      



  그들이 마드리드에 도착했을 때, 짧은 겨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구시가지로 들어선 부부는 주차장을 찾아 헤맸다. 마드리드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만큼 주차장도 만원사례였다. 어렵게 찾은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나왔을 때, 크리스마스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부의 가슴이 말랑말랑 두근거렸다. 스페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던 윤의 버킷리스트가 드디어 이루어졌다는 기쁨도 몰려왔다. 부부의 발길이 저절로 마요르 광장을 향했다.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의 설계로 1619년에 조성됐다는 마요르 광장은 인산인해였다. 



  이상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빛나는 마드리드 풍경에 가슴 떨리면서도 윤은 선뜻 사람들 사이로 들어서지 못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중에 강도와 소매치기가 숨어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윤은 얼른 남편의 팔짱을 끼고 광장을 빠져나와 왕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조명을 바라보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때, 윤의 남편이 마주 오던 남자와 어깨를 부딪쳤다. 사람 많은 거리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윤은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더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곳에 있기 싫었다.   


 

  “우리, 마드리드는 그냥 차로 둘러보자. 저녁은 호텔에서 먹고.”


  윤은 시내 관광을 포기하고, 안전한 호텔을 선택했다. 노보텔을 예약할 때, 호텔이 치안 좋은 신흥주택가에 있다는 문구를 읽었던 것 같았다. 마드리드를 떠나기 전, 부부는 자동차로 시내를 돌았다. 차 안에서 크리스마스 조명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마드리드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마드리드의 개선문이라는 알깔라문, 조명 장식이 유난히 화려한 문을 몇 바퀴쯤 돈 다음, 그들은 시내를 빠져나왔다.  



  “뭐야, 여기도 아닌가 봐.”


  도로를 빠져나온 윤의 남편이 운전대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쳤다. 벌써 몇 번째 헛걸음인지 모른다. 호텔을 눈앞에 두고 그들은 30분째 뱅글뱅글 호텔 주위를 맴도는 중이다. 조명이 거의 없는 도로는 어두웠고, 스페인어로 된 표지판은 판독 불가능이었다. 네비가 알려주는 길은 대부분 엉터리였다. 호텔을 눈앞에 두고 진출로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미로에 갇힌 것 같았다. 

  윤은 길게 한숨을 쉬며 호텔을 바라보았다. 화려하고 당당한 노보텔이 그들을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승자의 미소로 만연한 노보텔은 다가설 수 없는 신기루 같았다. 그럴수록 오기가 났다. 죽어라 노보텔을 향해 차를 몰았지만 번번이 길은 다른 곳으로 이어졌다. 의문의 1패를 당한 그들은 침몰하기 시작했다. 


  윤은 몰려오는 허기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눈앞에 있으나 갈 수 없는 호텔을 바라보며 그녀는 이번 여행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을까 생각했다. 여행길에 강도를 당한 것인가? 아니면 강도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아, 모르겠다. 윤은 점점 멀어지는 호텔을 바라보며 여행이 그녀에게 알려준, 인생의 쓴 맛을 곱씹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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