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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삘릴리 Apr 30. 2019

콩트로 떠나는 유럽여행

열세 번째 여행-영국, 런던

 런던을 걷다가 2


<1편에서 계속>


 런던탑을 나선다. 런던의 상징, 타워브리지가 보인다. 타박타박 타워브리지를 건너며 애써 너를 잊는 연습을 한다. 너를 잊어야 나를 찾을 수 있다며 입술을 앙다문다. 너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지우는 지난한 작업을 이어간다. 더 이상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너의 기억을 지운다.  



  2층 버스에 올라 시내로 들어간다. 너와 함께 버스에 앉아 재잘거리던 기억이 나를 미행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내셔널 갤러리로 향한다. 회화 부분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에 결코 뒤지지 않는 곳이라며, 네가 좋아했던 곳이다. 내 발길이 저절로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와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로 향한다. 네가 좋아하던 작품들이다. 내가 좋아하던 고흐의 <해바라기> 앞에서 너는 기념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었다. 아쉽게도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모든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었지만.      



  런던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거리 곳곳에서 보물을 찾듯, 너와 함께 했던 흔적을 찾아 지워내던 시간은 형벌처럼 고통스러웠다. 

  너와 함께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다 목이 메었고, 뮤지컬 <팬텀 오브 오페라>를 보았던 극장 앞을 서성이다 서럽게 솟구치는 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주적주적 비가 내리던 날에는 기억을 지워내기가 더 힘들었다. 

  트라팔가 광장 분수 앞에서 멍하니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이곳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기억을 지웠다. 그날의 보드랍고 따사한 햇살 속에서 까르르 터지던 웃음도 함께 지웠다. 



  내 마음에서 너를 비워내자, 몸이 너무 가벼워졌다.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우지 않으면 둥둥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순간 내 존재의 가벼움을 참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하염없이 런던을 걸었다.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또 걸었다.       

  길을 잃은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디로 가던 길이었는지, 너를 찾아왔는지 너를 떠나온 것인지 모를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런던을 걸으며 그렇게 미로를 헤맬 때였다. 저 멀리 대영박물관이 보였던 것 같다. 애써 그곳을 외면했다. 너와의 추억을 비워낸 그곳을 다시 돌아볼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렇게 왼쪽으로 난 골목길로 접어들 때였다.  


  저쪽에서 네가, 네가 길모퉁이를 돌아 나오고 있었다. 서른 걸음쯤 떨어진 거리었을까. 담담하게 골목길을 돌아 나오던 너와 나의 시선이 아프게 부딪쳤다. 너도 나처럼 런던의 미로를 헤매고 있었나 보다. 속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헛헛한 웃음이 차올랐다. 망부석처럼 서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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