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녀를 사랑한 시간
피지악을 떠난 지 50분. 도르도뉴 강과 어우러진 랄주 계곡에 살며시 자리 잡고 앉은 마을 로카마두르에 도착했다. 로스피타레 구시가지 마을에 주차를 마친 태주의 시선이 거대한 협곡으로 향한다. 깎아지른 듯 아슬아슬한 절벽 사이로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돌집들이 붙어있다. 동화마을 같던 콩크와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른,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다.
“와, 이 마을은 사진보다 그림으로 담아야겠어.”
절벽에 아슬아슬 붙어있는 집들을 바라보던 은서가 푸조 트렁크를 열고 스케치북을 꺼낸다. 색연필 통을 챙기는 그녀의 표정에 지중해 햇살 같은 생기가 감돈다. 샹송을 부르며 환하게 미소 짓던 스무 살의 그녀를 보는 것 같다.
“내가 들어줄게.”
스케치북을 받아 든 태주가 살갑게 은서의 손을 잡는다. 손길에 묻은 그의 마음이 전해진 것인가. 처음 손을 잡은 연인처럼 은서의 뺨이 발그레 물든다. 주차장을 나선 두 사람은 마을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선다. 가이드북에서 일반적으로 소개하는 순례자의 길을 거꾸로 거슬러 내려가는 길이다.
“저기도 순례자들이 보이네?”
은서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마을 길을 오르고 있는 순례자들을 가리킨다.
“이 마을도 유명한 순례지래.”
“로카마두르에 대해서도 자료조사를 한 거야?”
“당연하지. 들어봐! 1166년에 이곳 로카마두르의 오래된 무덤에서 썩지 않은 시체가 발견됐대.”
“미라?”
“그렇지. 기독교 초기 은둔자 생 아마두르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발견된 다음부터 여러 가지 기적이 일어났다는 거야. 그래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거고.”
“그럼 우리가 걷는 이 길도 순례길이겠네?”
“맞아. 가이드북에서 보니까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중세의 순례자들이 죄를 회개하며 양 무릎으로 올라갔다는 216개의 순례자의 계단을 만날 수 있대. 물론 지금 그 계단에는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 가득하겠지만.”
“그렇구나. 근데, 우리가 같이 여행하는 거 처음이지?”
갑작스러운 은서의 질문에 순례길을 내려오던 태주의 발걸음이 굳어진다.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이 풀리는 것과 동시에 오래되고 부끄러운 기억들이 단거리 선수처럼 빠르게 달려든다.
그에게도 그녀와의 여행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등록금 걱정을 등에 지고 생활비와 용돈을 벌어야 했던 시절이었으나, 그 역시 또래 남자들처럼 여자 친구와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었다.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미안했지만, 그는 은서와 여행을 가기 위해 평소보다 과외를 하나 더 맡았다. 차곡차곡 돈을 모아 설악산이라도 다녀올 계획이었다. 어머니가 그의 등록금을 꾸러 다닌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면, 은서에게 자랑스레 여행비를 보여주며 어깨를 으쓱였을지 모른다. 힘겹게 모은 돈을 어머니에게 드리던 날, 그는 강소주를 마시고 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인지 영문 모르는 그녀에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바보같이 울던 기억. 그날의 기억이 울컥 그의 목울대를 타고 올라온다. 여전히 못났다. 태주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끝을 바라본다. 작년에 산 구두코가 벌써 다 까졌다.
“바보처럼 왜 나를 좋아했어?”
태주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은서가 조용히 태주를 쳐다본다. 부끄러운 태주의 기억을 보듬는 바다처럼 온화한 눈빛이다.
“그냥……”
은서가 싱겁게 웃었다. 그 웃음이 바보야, 그냥 너라서 좋았고 너라서 사랑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도 그랬다. 그녀를 사랑하는데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운명처럼 은서를 사랑했다. 하루도 그녀를 보지 못하면 죽을 것처럼 아팠고, 그녀를 만나는 순간에도 헤어짐이 두려워서 가슴이 미어졌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사로잡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다 좋았다. 하나하나 알게 되는 그녀의 모든 것이, 알면 알수록 좋았다. 솔직하고 당당한 그녀, 순한 양처럼 그를 따르다가도 불같은 정열로 그를 압도하던 그녀, 수시로 그를 도발하고 자극하던 그녀의 모든 것이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와! 더는 못 참겠다.”
타박타박 굽이진 순례길을 내려오던 은서가 성벽 앞에 멈춰 선다. 단단하게 쌓아 올린 성벽 아래로 보이는 마을. 기차 행렬처럼 이어진 붉은 지붕들이 짙푸른 초록 나무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은서는 태주에게서 스케치북을 뺏어 들고, 성벽에 걸터앉는다. 빠른 손놀림으로 마을 전경을 스케치북에 담는 동안에도 그녀의 입에서는 신음 같은 감탄이 흘러나온다.
태주는 그림 속으로 빠져드는 은서를 바라보며 언제부터 그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궁금해진다. 갤러리를 운영한다더니 프랑스로 유학 와서 그림 공부를 했을까. 아, 정말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나마 함께했던 3년의 세월도 아득한 기억 속으로 풍화되어 버렸다. 그녀를 사랑한 시간만 외롭게 그를 지탱해주고 있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어?”
“유학 와서 진로를 바꿨으니까, 20년도 넘었지. 기억 안 나?”
“뭐가?”
“네가 그랬잖아.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태주의 콧등이 시큰해진다. 왜 기억을 못 하겠는가. 가난한 시인의 아내로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좌우명을. 어머니는 가녀린 어깨에 생계를 짊어지고도 늘 행복해하셨다. 아버지의 시를 사랑했고, 아버지가 쓴 시를 제일 처음 읽던 순간의 가슴 떨림을 즐기셨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는 태주에게 버릇처럼‘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당부하셨다. 그 말은 가진 것 없는 태주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용기의 말이기도 했다.
스케치북에 담긴 은서의 그림이 호방하다. 여린 그녀의 손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태주는 그림과 하나가 된 은서를 카메라에 담으며 잠시 시간이 멈춘 작은 마을을 내려다본다. 일정을 서두른 탓에 아직 태양 빛이 찬란하다. 콩크에서 보지 못한 석양을 이곳에서 보기로 했으니, 예정보다 호텔 도착이 늦어질 것 같다. 그는 스마트폰을 뒤적거려 호텔 전화번호를 찾는다. 아무래도 체크인이 늦어진다는 연락을 해야 할 것 같다.
성소로 가는 좁은 길을 지나자 투명한 햇살이 반짝이는 광장이 나타난다. 생 소뵈르 바실리크 성당과 노트르담 성당 그리고 생 미셸 예배당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광장이다. 예배당에 몸을 기대고 서서 마을을 내려다본다. 옹기종기 모여선 마을이 다정한 친구들처럼 정겨워 보인다. 태주는 광장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눈을 돌린다. 중세의 순례자들이 죄를 회개하며 양 무릎으로 기어올랐다는 216개의 순례자 계단이다. 노트르담 안을 천천히 둘러보고 검은 성모상을 알현한 태주가 시계를 흘끔거린다. 서둘러 마을 구경을 해야 석양을 보고, 호텔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을로 내려오니 완전히 딴 세상이야.”
순례자의 계단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던 은서가 어린아이처럼 들뜬다. 마을은 성당과 예배당의 엄숙함에서 벗어난 풍경이다. 마을 길 양옆으로 알록달록 화려한 기념품 가게가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다. 은서의 걸음이 빨라진다. 과자로 된 집을 발견하고 잔뜩 신이 난 아이처럼 작은 상점들을 이리저리 돌아보더니 가장 화려해 보이는 가게로 쏙 들어가 버린다. 머쓱해진 태주가 그녀의 뒤를 따른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의 눈에는 그저 그런 물건인데, 은서는 그것들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여행 중의 쇼핑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복병이다. 그의 여행에서 쇼핑은 거의 없었다. 아내와 여행을 할 때도, 여행지 기념 마그네틱을 사러 잠깐 가게에 들른 것이 전부였다. 쇼핑할 시간에 유적지 한 곳을 더 둘러보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뭘 살 건데?”
은서 주위를 맴돌던 그가 어정쩡한 목소리로 묻는다.
방해를 받은 사람처럼 은서의 미간에 짜증을 감춘 주름이 잡힌다.
“미안. 지루하면 저기 카페에 가서 기다릴래?”
태주의 표정이 파지처럼 구겨진다.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시큰둥한 은서의 말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포르르 아내의 기억이 비집고 들어선다. 아내와 아비뇽으로 나들이를 갔을 때였던가. 아내가 기념품 가게 앞을 못내 못내 서성였다. 알록달록 화려한 프로방스 스타일 식탁보에 넋을 빼앗긴 표정이었다. 몇 번이고 식탁보를 만져보던 아내가 가격표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식탁보를 또 사려고?”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그의 표정을 눈치챈 아내는 얼른 만지작거리던 식탁보를 내려놓았다. 아쉬움이 가득한 아내 얼굴이 마음에 걸렸으나, 여행지에서 쓸데없는 쇼핑이 싫었던 그는 보란 듯이 가게를 나왔다. 하긴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그는 아내가 쇼핑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른다. 언제 어디서건 그의 생각과 취향이 우선이었으니까.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따라주던 아내가 그립다. 아내라면 은서처럼 여행지에서 쇼핑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다. 카페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한심한 짓도 요구하지 않았을 거다. 그를 존중하고 배려해주었던 아내의 기억이 맑은 온천수처럼 새록새록 솟아난다.
말없이 부티크를 나와 카페로 향하던 태주의 걸음이 느려진다. 발뒤꿈치로 찌릿한 통증이 퍼진다. 평소보다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아, 라벤더 오일로 그의 발을 마사지해주던 아내의 손길이 그리워진다. 자꾸 이러면 안 된다. 어서 아내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태주는 세차게 도리질을 하며 카페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