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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짱ㅣ원시인 Apr 29. 2022

왕트럴파크 로드러너의 풀마 일기

다신 안할 거라 다짐 하지만 또 다시 그 순간을 그리워하는 치명적 중독성

2022 서울 마라톤 참가 신청을 했다. 바쁜 3월을 보내던 중 동료가 툭 던진 문자메시지를 보고 참가신청을 해볼까? 라며 고민할 틈도 없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바이러스 놈과 싸우며 재택을 병행하는 나에게 마라톤 참가 메시지는 그저 사치와 같은 것이었다. 겨우겨우 바이러스를 때려 눕히고 다시 출근하여 하루살이처럼 하루를 보내다 업무 관련 문자를 보았는데 폰에 남겨진 2022년 서울 마라톤 신청 관련 문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에잇 지금 아니면 또 그냥 놓치겠다 싶어서 우선 참가신청을 하고 보았다. 참가 신청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대회 경품이 나쁘지 않다. 아디다스 반팔티와 각종 에너지 보충제, 라면 용기 그리고 완주하면 메달과 또 완주 기념 아디다스 반팔티, 에라 모르겠다 늘 달리던 것이니 하는 데까지 해보자. 올해도 직장에서 달리기 동아리를 하니 어차피 참가비의 일부도 지원받고 식비도 지원받으니 밑져야 본전의 마음으로 참가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하프만 뛰었봤을 뿐인데 자꾸 풀코스 도전해봐?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보통 대회와는 달리 코스를 정하지 않고 원하는 거리를 달리고 인증만 하면 되는 언텍트 시스템이어서 그냥 머릿속으로만 생각해보고 그때 컨디션 봐서 하프 할지, 풀코스로 할지 한 달 후를 기약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자주는 못하지만 그래도 다른 러너처럼 열심히 마일리지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3월에 130여 km 겨우 채우며 어떻게든 월 120km는 넘겨보려고 억지를 쓰고 있었다. 평소 12km를 뛰니 한 달에 10번 정도의 목표로 월 마일리지를 꾹꾹 담으려고 했다. 그러다 어느덧 대회 전주 주말이 다가왔다. 음~ 다음 주면 2022 서울마라톤 대회날인데 평소 숙제처럼 남겨졌던 풀코스 한번 테스트를 해보자. 계획은 평소 뛰던 하프코스 연속 두 번 찍기를 목표로 했다. 우선 테스팅을 위해 이번 주 하프를 뛰었다. 완연한 봄기운을 넘어 벚꽃은 만개하여 상춘객이 넘쳐나는 주말, 거기에 기온은 역대 최고로 올라 날이 꽤나 더웠다. 그런 상황도 모르고 나름 몇 달 만에 하프를 하기 위해 집 밖을 뛰쳐나갔다. 평소 12km 달리던 페이스대로 쭉쭉 치고 나갔다. 초반에 페이스를 뽑자 후반은 나중에 생각하고 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역시 초반 페이스는 나쁘지 않았다. 중반까지는 말이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날은 더워지고 그늘이 그리운 날씨로 변해가고 있었다. 뭐야 이거 4월 초 날씨 맞아? 혼자 구시렁 걸이며 페이스를 잃지 않기 위해 온몸을 재촉하며 죽죽 달려 나갔다. 후반부에 들어올수록 역시 페이스는 5분대 중반으로 가기 시작하며 집 앞 20km 지점에서는 페이스고 뭐고 빨리 집에 들어가서 시원한 복분자 원액 드링크를 마시며 소모했던 당과 수분을 마구마구 보충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오래간만에 여름같이 온몸에 땀을 범벅으로 하고 집에 들어와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풀코스는 무슨 하프만 뛰면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한 주를 다시 시작했다.


어느 직장이던 늘 그렇듯 파란만장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 업무 중에서 수년 전 확정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잘못된 것을 직감하고 이를 수습하는 중에 일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부서가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는 내게 점점 스트레스와 부담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 아픈 마음을 추스르고 수요일 하루 달리기를 했다. 역시 달리는 순간에는 좋은 기억 그렇지 않은 기억 등 온갖 잡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뛰고 나면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그렇게 주중을 보내다 잘못된 업무를 해결해야 하는 결정의 그날이 왔다. 그날은 한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었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담당자 회의는 긍정적으로 풀렸다. 이렇게 나에게 행복한 주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무리 단계에서 팀장님이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결과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수습을 하려고 해도 먼가 좋지 않게 변해갔다. 그렇게 회의는 끝났고 세상 꿀꿀한 마음으로 금요일을 맞이하며, 월요일 수습을 위한 방법만이 한가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채 난 주말을 맞이해야 했다.


어제 일이 꼬인 것 때문에 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 눈이 번쩍 떠졌다. 시간을 보니 아침 7시쯤이었다. 침대에서 그냥 뒤척거리다 문득 오늘 마라톤 대회날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지난주 더웠던 것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서늘한 아침에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주섬주섬 대회 준비를 했다. 우선 대회 티셔츠를 입고 경품으로 준 각종 파워젤을 챙기고 물도 미리 배속에 보충해 주었다. 이렇게 준비하며 문득 드는 생각이 하프 할까? 풀코스를 뛸까?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고민 중 내린 결론은 우선 풀코스를 뛰기로 마음먹고 하프 뛰고 힘들면 풀코스는 포기하자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잠깐 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럼 보급은 하프 뛰고 한다. 물, 사은품 파워젤, 자작 복분자 원액 에너지 드링크를 집 앞 화단에 살포시 던져 놓고, 그렇게 나의 첫 풀코스 뜀박질은 시작되었다.

늘 그렇듯 처음에는 가볍게 발걸음이 떨어진다. 늘 뛰는 길이니 초반의 경쾌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미 한 번도 뛰지 않은 거리를 가야 하기에 무리하지 않았다. 천천히 나만의 페이스를 찾으며 가뿐하게 발을 옮기며 달렸다. 처음 1킬로까지 페이스는 4분 49초로 생각보다 빠르게 페이스가 나와 5분대 초반으로 천천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숨이 가쁘지 않을 만큼 속도 조절을 했다.


역시 왕숙천의 봄 빛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신선한 왕숙천 바람은 장거리 마라톤의 긴장감을 조금씩 달래주고 있었다. 5분 초반 페이스로 그렇게 다리고 있는데 3.5km 지점 50m 앞에 한분에 러너가 뛰는 모습이 보였다. 사이클을 오래 타서인지 누군가 앞에 있으면 쫓아가 붙는 특성이 있다. 사이클은 공기저항과 지면의 마찰력과 싸우는 운동이어서 누군가의 뒤에 숨어 공기저항을 피하면 힘을 아껴 페달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사이클 용어로 드래프팅이라고 하며 라이더 전문용어로는 피 빨기라 한다.


어쨌든 그런 습상 때문인지 누군가 앞에 있으면 따라붙거나 추월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페이스가 나보다 조금 느려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아니야 무리하지 말자!" 저분 페이스에 맞추어 거리를 유지하며 무리하지 않게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만의 페이스메이커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달렸다. 앞에 뛰는 분이 인식하지 못한 거리의 차이를 두고 말이다. 그분이 물을 마시며 페이스가 조금 느려지면 나도 페이스를 늦추고 본격적으로 힘을 내어 달리면 나도 따라 달렸다. 같이 달리는 동안만큼은 그분이 내 페이스메이커였다. 그렇게 그분을 따라 달리며 심박을 높이지 않고 내가 몰래 정한 페이스메이커 뒤를 약 7km 정도 같이 뛰었다. 10.5km 지점에서 나는 다시 방향을 돌려야 하기에 페이스메이커와 같이 뛰지 못할 것 같다는 아쉬움이 생길 때쯤 역시나 그분은 서울 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난 함께한 동료를 잃은 듯한 마음을 간직한 채 반환점을 돌아 내가 달렸던 거리를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12km를 넘어섰다. 여기까지는 늘 매일 달리는 거리다. 집에서 한강 찍고 돌아오면 12km이므로 내게 12km는 매우 익숙한 거리이자 달리기의 스탠다드다. 평소 페이스보다 속도가 높지 않았으니 현재까지는 베스트 컨디션이었다. 12km 넘어서부터는 자주 뛰지 않은 거리이다. 가끔 15km 아주 더 가끔 하프 정도 뛸 때나 12km를 넘어선다. 이제 그 지점을 지나 15km 지점을 향해 간다. 누군가 같이 달리다 혼자 달리니 무료함이 몰려온다. 다시금 혼자만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제 직장에서의 일이 떠오르면 걱정과 짜증이 막 올라오지만, 잠깐의 생각들이 육체의 고통을 잊게 해 준다. 아주 일시적으로 말이다. 인스턴트 하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덧 15km 구간을 지나고 집까지 남은 거리 6km를 해결하기 위해 달린다. 음 이때부터 몸에서 고통의 시그널을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심장과 폐가 다리와 연합하여 적절한 타협을 하자고 뇌에게 시그널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뇌에서는 이미 풀코스 42.195km 라는 우리의 목표가 있기에 이를 달성하려면 아직 많이 남았으니 참으라고 몸뚱이 친구들에게 도파민을 뿌려가면 달래준다. 마음과 의지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평소 하프를 뛸 때는 도착하기 3~4km 지점부터 조금 있으면 도착한다는 안주감 때문인지 마지막 거리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근데 풀코스를 도전하고 있는 지금의 하프 전 3~4km 지점은 원래 목표(풀코스)에 반도 안 왔으니, 하프 마지막 지점처럼 힘든 느낌이 하나도 안 들었다. 이미 넌 하프를 뛰어도 반이나 남았어라는 것을 지휘부(뇌)가 끊임없이 알려줘서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무난히 21km 하프를 마무리 하며 반환점(아파트 놀이터)에 도착하였고, 바로 화단에 숨겨 놓았던 파워젤, 자작 복분자 원액 드링크를 벌컥 마시고 영양 젤리를 씹지도 않은 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바로 체리맛 가득한 젤리 하나와 파워젤 하나를 허리춤에 차고 다시 달린다. 랜 도너스와 같은 장거리 사이클링을 할 때처럼 위기가 오는 시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지점(달리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지점, 하프 이후 그 언젠가)이 오기 전 미리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짐하며 말이다.


다시 출발이다. 풀코스를 완성하기 위해 반환점을 넘었으니 나머지 하프를 채워야 했다. 자~ 이제부터는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영역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랬듯, 한 번도 안 뛰어본 그곳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설렘과 두려움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제부터 한발, 한 발이 나에게 기네스북이다. 지금부터는 개인 기록(PR: private record) 갱신이라는 기쁨을 안고 달려온 길을 또다시 달렸다. 나에게 풀코스 마라톤은 평소 달리던 하프코스의 연타였기에 같은 길을 다시 달린다라는 장점이 있다. 익숙한 거리이므로 어느 포인트가 몇 km 지점인지 정확히 안다는 것이고 단점은 뭐 알다시피 같은 길에 대한 지루함 정도다. 그렇게 뛰어나가며 다시 한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힘을 내어 달렸다. 그때까지 페이스는 계속 5분 12초 때 오 나쁘지 않아 하프 때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다리가 조금 무거워졌지만 페이스는 유지됨에 안도하며 30km 지점까지 달렸다. 드디어 30km를 찍었다. 아! 30km 영역을 내가 달리다니 내심 스스로를 칭찬하며 지금부터는 내가 평소에 매번 달리던 12km 코스만 주파하면 난 풀코스 완주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호흡은 거칠어지며 가끔 불규칙하게 호흡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래도 달릴만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페이스가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나는 5분 12초대 페이스였지만 1km, 1km 지날 때마다 점점 페이스가 늘어지기 시작했다. 애플워치가 페이스 알림으로 나의 몸상태를 알려주었다. 거리가 늘아남에 따라 5분 17초, 5분 20초 페이스가 늘어남을 알려주며, 당신은 점점 지쳐가고 있어요.라고 외치는 듯했다. 응원하는 사람 하나도 없다. 누군가가 응원을 해주고 관중이라도 있다면 애써 힘들지 않은 척, 아니면 그 응원의 힘을 받아 더 쥐어 짤 수 있었을 텐데 아무도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저기 저 친구가 혼자서 묵묵히 자기 자신과 싸우며, 42.195km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쳐다보며 지친 다리를 이끌고 달리고 달렸다. 나는 지쳐갔고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가던 길을 걷거나 달렸으며, 자전거로 빠르게 지나가는 라이더만 있을 뿐! 32km 지점을 지나면서부터 발이 점점 안 떨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10km가 남았는데 페이스는 계속 늘어지고 무릎과 종아리에 데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릎 옆쪽 장경인대가 당기고 종아리 근육통이 심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지금 상태로만 유지한다면 그래도 3시간대로 충분히 들어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힘을 냈다. 더없이 느려진 하체를 이끌며 완주의 기쁨을 생각하며 그렇게 묵묵히 달리고 달렸다.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고통을 잊기 위해 머릿속으로 온갖 잡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달리다 보니 한강 코스가 끝나고 왕숙천 코스로 접어들어갔다. 왕숙천을 접어드는 36킬로 지점부터가 최고 고비의 시작이었다. 우선 조금만 가면 완주라는 안도감이 육체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고 육체는 점점 정신과 타협하려는 협상 테이블을 내어 놓기 시작했다. 자꾸 이쯤에서 만족하자는 메시지를 지휘부에 보내기 시작했다. 무릎의 장경인대 쪽이 또 심하게 당겼다. 허벅지와 종아리는 더 이상 내 몸이 아니었다. 울트라마라톤(100km)에 나갔던 하루키가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을 때 팔을 앞뒤로 힘껏 휘저어 그 반동으로 달렸다고 했다. 나도 그처럼 팔을 앞뒤로 있는 힘껏 흔들며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재촉했다. 이쯤에서 챙겨 왔던 파워젤과 젤리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물이 없기에 아마 먹고 나면 단맛으로 인해 입이 더 마를 것이라 예상은 했으나, 우선 내 몸의 에너지 고갈(봉크)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기에 미리 칼로리를 보충하자라고 판단했다. 예상대로 여지없이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 젠장! 무식하게 물도 없이 달리고 있으니 나도 참! 우선 후덥지근한 여름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그렇게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갈길을 달리고 달렸다.


드디어 하루키와 수많은 러너가 말했던 고난의 지점이 나에게도 나타났다.  마지막 5km 지점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머리는 들기 어렵고 다리는 지구의 중력에 무한히 끌려 달리며 짓눌려질 것 같았다. 완주 3km 지점에서부터는 다리를 들고뛰는 것조차 힘들어 운동화가 질질 끌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억지로 다리를 붙잡고 끌고 가는 형태였다. 1km, 1km 지날 때마다 알려주는 페이스는 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오로지 내가 완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 관건인 상황이었고, 3시간 내에 완주는 나에게 이미 의미가 없었다. 그냥 완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인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계속 다리는 지휘부에게 협상 테이블을 펼치고 타협을 속삭였다. 그렇게 버티던 때 애플워치가 40km를 달렸다고 외쳤다. 이제 진자 2km 남았는데 고통을 이기지 못한 머릿속에서 40km면 거의 완주 아냐? 이쯤에서 포기하자! 포기하는 것 어때?라고 계속 외쳤다. 발 끝은 점점 더 우레탄 바닥을 질질 긁었다.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겨우 고개를 들어 앞으로 내가 달려야 할 2km 구간을 힘없이 쳐다보았다. 남은 길이 이렇게 먼 길이었는지 한탄하며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갑자기 내눈 앞에 여신이 나타나 2km 남았는데 포기라니요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요 라는 말을 해주는 듯 했다.신기루 여신의 응원빨에 가쁜 심장과 다리를 달래고 달래며 육체와 정신력을 다시 재정비하였다. 그래 40 이라는 숫자와 완주라는 것은 다르지.. 그래도 버티자 하며 마지막까지 힘을 쏟는다. 왕숙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겨우 올라타고 다리 밑으로 반짝이며 흐르는 왕숙천을 바라보며 그래 다 왔다 힘내자라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그렇게 달리다 보니 마지막 골인 지점이 보인다. 골인 지점에 다 왔다. 다 왔어 겨우겨우 도착한 순간 나는 그대로 무너진다. 무거워진 다리와 함께 나도 함께 무너졌다. 그렇게 바닥에 쓰러졌고 누가 보던 말던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내가 완주했음에 깊은 감격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래 내가 해냈다. 쓰러져 고통스러웠지만 완주의 기쁨에 미소가 지어졌다. 해냈구나 그것도 내가! 그런데 문득 이대로 있다가는 더 퍼진다는 생각이 들어 끊어질 것 같은 다리를 이끌고 거의 네발로 집을 향해 기어올라 갔다. 집에 들어가 물 한 통을 꿀떡꿀떡 다 마시고 그대로 땀에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씻으러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밀려오는 고통을 참아가며 기분 좋게 씻었지만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샤워꼭지를 겨우 붙잡고 씻은 다음 바로 침대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그렇게 미소 지으며 꿈나라로 나는 사라졌다. 꿈을 꾸며 나의 풀코스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난 해냈다. 3시간 대  3시간 56분 44초로 기록으로 말이다.


 풀코스 마라톤 서브4 달성

#2022서울마라톤(동아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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